리더십과 팀워크, 깨지면서 정신을 차린다
컨퍼런스 오프닝보다 며칠 먼저 도착한 기획단에게 덴마크 조직위에서 제공한 숙소는 여름 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모두 정리하고 잠시 떠난 대학교 기숙사였다. 새파란 나무들이 가득한 캠퍼스의 정원을 통과해 기숙사에 도착했다. 중정이 커다랗고 바닥엔 오래된 벽돌이 운치있게 깔려 있었다. 지금은 텅 비어있는 대학 캠퍼스의 강당에서 우리는 다음주에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캠퍼스 곳곳을 훑어보고 행사 동선을 확인했다. 2백명 이상이 참가하는 이벤트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하루 이틀 지나면 여기저기 아프다는 사람이 등장하고 온갖 돌발 상황이 튀어 나온다. 의연한 마음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만전을 기하자. 지금껏 준비해 온 일이 현실화 된다는 생각에 다소 긴장이 되었다.
막판 준비와 현장 점검을 위해 며칠 일찍 당도한 나에게 건네온 방 키는 대학 기숙사의 꼭대기층 방이었다. 천장과 기둥이 온통 오래 된 나무로 되어 있는 커다란 방에 짐을 풀었다. 곧이어 차례차례 도착한 기획단의 멤버들은 모두들 옆 건물의 같은 층 심지어 옆방에 숙소들을 제공받았는데, 의아하게도 나 홀로 외딴방을 배정 받았다. 다락방처럼 천장이 세모꼴로 내려져 서까래의 높은 모서리에는 창문이 나 있었다. 여름 덴마크의 밤을 거의 뜬눈으로 샜다. 창문을 열어 놓은채 침대에 눕는 바람에 새벽에 모기가 들어왔다.
모기가 윙-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외딴방에서 나는 그동안의 과오를 집약적으로 회상하고 정리해 보았다.
‘그래, 모기야, 나를 물어 뜯어라.’ 곧이어 머리가 뜨거워졌다. 모기 때문이 아니라, 미리 바로 잡지 못한 나의 결정적 순간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7개월 전으로 기억을 돌려본다.
일은 산적해 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제때 순환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당시 답답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이바Ivar의 이메일, 덴마크 조직위에서 본인들의 업무를 숙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은근히 화가 나 있던 나. 당시 사무총장 롤란도의 조언대로 상황을 세심히 알아보기 위해 로즈Rose에게 이메일을 적었다. Rose의 이메일은 곧이어 도착했다. 자세한 배경 설명과 함께.
[.. 아버지 Ivar는 당신의 이메일을 모두 매우 꼼꼼히 읽고 있다. 요청한 다양한 사안들과 질문들을 모두 취합하여 검토하고 관련 인물들과 상의를 하고 있다. 그는 영어로 대화하는 데엔 아무 거리낌이 없다. 허나 영어 작문은 원활하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이메일 답장을 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또 한가지 양측이 서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 우리 커뮤니티는 평소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공식 모임을 하고 있는데, 컨퍼런스 조직위를 갖추게 되면서 2주에 한번씩 정기 회의를 하도록 일정을 결정했다...
즉, 당신이 보낸 요청들은 이 회의에서 모두의 의견을 듣고 역할을 나누어 결정을 하게 되어 있어서 Ivar가 독단적으로 가부 결정을 할 수 있지 않다.
조금만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면 하나씩 대답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메일의 말미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덧붙였다. 연락이 늦어져 염려하는 부분은 개선하겠다. 시의적절히 답변을 해야 하는 문의 사안은 Ivar를 대신해 조직위의 회계를 맡은 잉가Inger가 앞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돕기로 했다.]
Rose의 메일을 읽으며 속이 찌릿했다. ‘내가 놓친 부분이 어떻게 이렇게 적나라하게 반영되어 있는가.’
마음이 조급했던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NGO의 기능은 어디까지나 자원한 인물들이 이끌어가는 동력이 있어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이들 ‘모두’를 포함하여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논의하고 역할을 공평히 나누고 함께 결정을 거쳐 실행한다. 그들이 NGO의 기둥이고 그들이 곧 바퀴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부에 있던 나는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고 책상 앞에 앉아 숱한 이메일을 허공으로 보내며 재촉만 하고 있었으니 상대방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창피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 당시 나는 내 자신의 역할을 착각하고 있었다. 리더로서 이끌어 가야 한다는 책임감에 스스로의 자리를 잘못 판단하고 만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나는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어려움을 채워주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절차와 과정' 속에서 스스로 자율성이 갖추어진다는 것도,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도, 결국 사람이 결과를 좌우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같은 목표를 갖고 함께 하는 이들이 혹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파악할 생각조차 못했다.
언젠가 선임자 제임스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상근 활동가이지만, 그들은 퇴근 후에 또는 주말에 본인 시간을 쪼개가며 NGO 활동을 하는 거야. 그들과 우리는 다른 시간표 속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시차도 다르고.”
조직위 구성원들은 모두 자원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고 다들 다년간 이 NGO 활동을 한 인물들이다. 이들을 닦달하는 것이 거의 무의미하다는 것을, 게다가 오히려 내가 그들의 흐름을 깨고 있다는 사실을 Rose의 이메일을 통해 파악하고 얼른 깨달았어야 했다. 당시의 강박을 뿌리쳤어야 했다. 이미 7개월 전에 이같은 한번의 계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독단적인 내 업무 스타일은 올바로 고쳐지지 않아 이 꼴을 보는구나.. 나는 오늘 컨퍼런스 현장에 와서 기어코 팀 구성원으로부터 이 컨퍼런스가 ‘너의 파티’냐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휴우, 단지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이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한다는 미션을 짊어지고 있었다. 이 역할을 위해 발탁된 사람이니. 하지만 그 미션이 ‘우리 모두의 미션’이었던 것에는 무지했다. 이 모든 생각이 자책감이 되어 다락방 안을 가득 채웠다. 새벽이 오고 있다. 누워있던 나는 허공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한 오케스트라의 음악회를 한달만에 또다시 관람하러 간 적이 있다. 두번의 음악회에 다녀오며 돌아오는 길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뭔가 이상하다...’ 빈틈 없이 훌륭한 연주는 지난번이나 이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의 표정이 전혀 달랐다. 분명 같은 단원들인데. 무언가 뿌듯해 하는 모습, 서로 둘러보며 웃어보이던 그 표정이 한달 전 음악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같은이들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무리 생각해도 생소했다. 가만 따져보니 차별점은 단 한가지, 지휘자가 다른 인물이었다. 연이 닿는 채널을 통해 후일담을 들었다. 상주하는 지휘자는 온통 자기애로 뭉쳐있는 나르시시스트라는..
덴마크에 도착하여 첫날 조직위와 점검 회의를 했다. 그동안 논의했던 무수히 많은 사안들, 기획단에서 요청한 모든 내용이 기대 이상으로, 150%이상 매우 꼼꼼하게 조직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조직위에 불신이 있던 기획단은 감탄했다. 행사 당일날 오프닝 시간보다 훨씬 전에 도착한 커뮤니티 자원활동가들은 요청한 숫자 이상으로 규모가 컸다. 조직위가 설득하고 모은 인원이다. 덴마크에 와서 직접 만난 조직위의 Ivar는 두말할 나위 없이 적극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원망해서 미안해요!)
나는 이같은 유기적인 조직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리더’라 칭하며 홀로 앞서가는 존재가 되어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이 깊은 회한으로 다가왔다. 이들에게 나는 탁상 위의 도라에몽 알람 시계마냥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라고 외쳐대는 소음이었구나..
수평적 관계를 맺기 원한다는 이상과는 달랐다.
역할을 명백히 잘못 알고 있었다. 각자의 몫을 기대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하며, 이들의 발언을 경청하며 길을 내주어야 하는 존재가 ‘리더’라는 동력자이다. 지휘하고 점검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를 파악하고 강점을 이끌어내는 에너지는 ‘관계’를 다져주고 서로를 감화시킨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힘껏 발휘하는 존재로 서로를 성장시킨다.
컨퍼런스는 주말 이후 3일 뒤에 시작한다. 덴마크의 백야를 경험하며 나는 기숙사 방에서 모기에 뜯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바로잡을 기회가 있을 거라고, 부디.. 화가 난 마음으로 Ivar의 이메일을 재촉하던 나의 모습은 오늘로 졸업이다..
이날, 나는 어려운 산등성이를 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리고는 결심한다. 최소한 현장에서는 나의 독선을 내려놓고 구성원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자. 기꺼이 동역자가 되어준 당신이 있어서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구성원들과 서로의 공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스스로를 바로 잡자. 이들을 믿자!
시작을 급하게 했어도 마감을 제대로 하면 된다고.. 그러면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부디.. 깊은 한숨이 다락방을 채우며 그렇게 새벽녘이 지나갔다.
일주일간의 컨퍼런스는 꽤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했다. 꾹꾹 눌러 담아 사전 기획하여, 매일같이 빽빽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았기에 이번 행사는 역대급으로 바빴고 지금까지의 기록 중 가장 큰 참가자 규모였다. 그와중에 덴마크는 또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롭던지.. 이렇게 나는 철저히 깨지며 또한번의 계기를 잘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