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처음으로 유엔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일단 그 찰라를 기억한다

by Aeree Baik 애리백

책상 앞에 앉아있던 내게 제임스가 서류 파일을 내밀었다. 덴마크 컨퍼런스를 정신없이 준비하던 어느날이었다. 호주에서 교사를 했던 제임스는 꼼꼼하고 단정한 성품의 동료이다. 그가 내게 건넨 것은 차곡차곡 잘 정리된 몇장의 서류였다. 내 이름이 써있었다. 서류 첫장에는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uncil (UN ECOSOC)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문도 모르던 나는 서류를 받아들었다.
“이게 다 무슨 자료야?”

UN ECOSOC에는 각 국제기구와 함께 전세계를 아울러 약 3천 NGO들이 시민사회를 대표하여 이름을 함께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우리 NGO를 대표해 나와 제임스가 UN ECOSOC 회의에 가도록 정해져 있었다. 내가 첫출근을 하기 전에 결정이 되어 있던 사안이었다. NGO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제임스가 내 이름으로 마감 일자에 맞춰 나를 대신하여 몇달 전 미리 등록을 해 놓았던 것이다.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uncil (UN ECOSOC), 한국어로 번역하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이다. 내용을 펼쳐보니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의 이름으로 단체들에게 초대 공문을 보냈고, 그가 참석할 거라고도 했다. 장소는 제네바 유엔 Palais des Nations 불어 이름이었다.


드디어 유엔 제네바 본부 Assembly Hall을 들어가 보는구나. 막연히 훑고 오는 건물 구경이 아니라 NGO의 대표로서 대규모 회의를 참가하러 그곳에.




컨퍼런스 기획자로서 근무를 시작하기 위해 제네바에 도착한 첫 주,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러 갈 교회를 찾아보았다. 아직은 불어로 종교 활동을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검색 결과 딱 한 군데의 한인 교회가 등장했다. <제네바 한인교회>였다. 드디어 일요일에 나도 할 일이 생겼다. 수퍼마켓도 빵집도 모두 문을 닫는 따분한 일요일에 기숙사 방을 떠나 어딘가 갈 곳이 정해졌다.
‘가만있자, 혹시 교회에서 점심 식사도 줄까? 김치도 있을까? 한국 사람들이 많을까’ 예배보다는 다른 게 더 궁금했다.

기숙사 방에는 젓가락 한짝도 전기밥솥도 없었기에 슬슬 한식이 생각나던 시점이었다. 그날 오전, 모르는 이름의 길을 겨우 찾아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회중석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예배를 드렸다. 오르간의 연주가 가만히 들려오고 마무리가 되었다. 예배가 끝난 직후 조용히 자리를 일어나려고 가방을 챙기던 찰라였다. 내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던 여성분이 조용히 뒤를 돌아 내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내심 은근히 반가웠다. 스위스에 온 지 일주일이 넘도록 거리에서 한국어를 들을 일도 말을 할 일도 없었으니. 그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는 이같이 말했다. “앞자리에서 들으니까 노래하는 목소리가 너무 좋은데, 우리 교회 성가대 해봐요.”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몇년간 제네바 생활을 하고 있던 내또래의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다. 그의 눈은 정확했다.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늘 성가대를 했던 사람이지 않은가.


첫주부터 시작한 제네바 한인교회 성가대의 면모는 어마어마했다. 풍채를 자랑하는 지휘자 선생님은 제네바 그랑 떼아트르 Grand Théâtre de Genève의 성악가셨고, 구성원들은 거의 모두가 국제 공무원이거나 파견을 나온 대한민국 정부 부처의 고위공직자, 혹은 그들의 배우자들이었던 것이다. 베이스 파트의 누군가는 세계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WHO))에서 근무하고 있고 테너 파트의 누군가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WIPO))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 성가대원들은 다들 절대 음악이거나 상대 음감으로 음악성이 뛰어났고 당장 피아노 앞에 앉으면 베토벤을 연주해도 놀라지 않을 실력자들이었다. 피아니스트는 심지어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신 마성의 연주자였다. 반면 남자 파트에서는 삑사리 대마왕들이 사이좋게 속출했다. 알토에 계신 분은 세계의사협회 (World Medical Association (WMA))에서 일한다고 했다. 음역대가 높아 맨앞줄 소프라노 자리에 앉은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주위를 둘러보며 무척이나 생소한 공기를 맛보았다. ‘응? 박사님들이라고?’ 다들 음을 못 맞춰서 악보에 코를 박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신선해보이기까지 했다. 이 사람들이 죄다 박사님이라니!


뒤늦게 겪어보니 알 것도 같았다. 교회에서 결정할 사안들을 놓고 한번 회의를 시작하면 면면이 드러난다. 금방 결정하고 바로 분담하여 끝날 일도 모두들 점잖게 외교적인 수사를 구사하며 ‘돌려까기’를 하는 바람에 회의가 끝날듯 안 끝날듯 제자리를 돌며 도통 안 끝난다는 특징이 명징했기 때문이랄까?
(..관계자 여러분 죄송해요!)

흥미로운 지점은 내게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 오기 전까지 내게는 국제 기구에 대한 실제적 지식이 전무했다. 관심사가 아니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안전보장 이사회’나 ‘경제 제재’ 혹은 그 옛날의 ‘우루과이 라운드’ 같은 표현 이외에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들어본 이름이라고는 반기문 사무총장이나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전부이니, 일자무식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계 평화보다 내 주변의 평화가 시급했고, 그리하여 공부를 안 한 것 뿐이었지만 제네바에 도착해보니 눈에 펼쳐진 상황이 꽤 달랐다. 국제 기구 본부가 도처에 있을 줄이야!


세계노동기구 (International Labor Office (ILO))에, 세계무역기구 (World Trade Organization (WTO))부터 세계난민기구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까지 전부 스위스 제네바에 있었다니! 어느날은 하늘에서 헬리콥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고 길에서는 교통 통제를 하길래 주위에 물어보면 어느 국가의 대통령과 수상이 만나고 있거나 평화협약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조용하고 따분한 제네바는 작고 평화로운 규모와는 다르게 ‘국제 도시’였다!


United Nations Office of Geneva (UNOG)


나는 NGO에서 덴마크 컨퍼런스 기획을 하며 뉴스레터를 만들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었다. 유엔에서 평화협약이 성사되거나 파기가 되어도 나의 본업과는 크게 접점이 없었다. 아마도 이 현상이 다른 NGO들에게는 다르게 또는 다급하게 다가 올 수 있다. 분쟁 지역의 의료적 긴급구호를 맡은 International Committe of the Red Cross (ICRC) 적십자의 경우가 그렇다. 이같이 서로의 영역이 모두 다양하다.

어느 날은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다녀가고 또 어느날은 미국 부통령 존 케리가 다녀가는 곳이 스위스 제네바이다. 허나 그 사실이 현재의 나와 공통 분모가 없으니 저 하늘에 떠있는 헬리콥터만큼이나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함께 활동하는 성가대의 구성원 절반 이상이 박사님이고 어마어마한 학력의 엘리트라는 것이 놀라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치이며 박치인 성가대원은 학벌과는 상관없이 자주 등장하더라는 재밌는 관찰을 하며 그저 나름의 본업에 매진하던 그런 날이었다. 국제 기구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이들이 그저 남 얘기인 것마냥, 마치 바람이 흘려가는듯한 먼 사연으로 보여지던 그런 날이었다. 그러나 별안간 그게 바로 내 자신의 스토리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직관이 처음 생긴 날이 왔다. 제임스가 내게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uncil (UN ECOSOC) 참가 서류를 건네 준 그날이다.


Assembly Hall of UNOG


며칠 뒤 이것은 내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야 했다. 조직을 대표하여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UN ECOSOC)에 참가하기 위해 난 오랜만에 셔츠와 자켓을 꺼내 입었다. 신분증 검사를 하고 얼굴 사진을 찍어 출입증을 받은 후 유엔 제네바 사무소 Assembly Hall에 들어가던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저멀리 하늘에 떠있는 헬리콥터를 막연히 바라보는 것과 같은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투어리스트가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존재로서 입장했기에 그 감회가 특별했다. 내 눈에 들어온 유엔 회의장의 모습은 정장을 입고 나타난 몇백명의 사람들과 그 뜨거운 현장감으로 벅찼다. 나는 조직의 대표로 이곳에 참가한다. ‘이곳은 누군가의 직장이고 실제 협상이 벌어지는 곳이다.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두 눈에 각인된 그 장면이 있어서 이제는 발을 뺄 수가 없게 되었다. 일단 이 세계에 들어가 봐야겠다는 강력한 생각을 이날, 이 현장에서 떠올렸다. 이날 나는 회의장에 등장한 반기문 사무총장의 모습, 출입증을 받은 후 다시 내게 ECOSOC 서류를 건네던 제임스의 모습, 그리고 자켓을 입고 회의장에 서있던 나 자신에게서 접점을 만들고 회로를 바꾸기로 마음을 먹는다. 목표란 늘 변모하는 생물과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 방송국 입사 공채 시험을 보겠다던 애초의 계획은 그순간 Plan B로 바뀌었다.

내게 남은 각인과 자기 암시는 그날부터 사뭇 강력하게 작용했다. 관심이 강화되어 결심으로 바뀌었으니 오늘이 공식 Day-1 이다. 국제 기구 진출을 도전하겠다는 결심, 이 세계에 들어가겠다고, 일단 해보자 결심한 이상 뭔가 실행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나에게는 그 첫 번째가 이 찰라를 눈에 깊이 담아오자는 것이었다. 가슴에 꽉 채워가자. 지금 당장은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이라도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나는 한다. 일단, 그 소망을 마음 속에 한껏 담으면 된다고. UN ECOSOC 회의가 끝나고 건물을 나오는 길, 유엔 제네바 사무소를 빠져나오는 후문 앞에서 나는 대리석 건물의 벽면을 오른 손바닥으로 한번 쓰윽- 길게 쓰다듬었다.

각자의 동기부여 방식은 모두 상이하다. 이곳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다니, 내겐 이 현장성이 주효했다는 뜻이다.

마음 속에서 은밀한 소용돌이가 몰아쳤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는 것이 일단 내가 해야 할 첫번째 미션이었다. 그 다음은.. 앞으로 차분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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