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로 찾아보면 꿰어지는 실마리가 있을까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어도 그곳에 도달할 자원과 채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불특정하다. 국제 기구에 입사 하기를 원한다고 해도 나는 마음만 먹었다 뿐이지 이에 대한 실무 지식이 전무했다. 그저 현재의 내게는 당장 눈 앞에 막연하고 막막한 백지 계획이라는 것이 놓여있다는 사실만이 확실했다.
그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거다. 단지 특정하지 못 할 뿐이야.
어떤 지식을 가지고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은 뭔지. 기구마다 언제 리크루트를 하는지. 맡은 미션별로 전문 분야가 구획이 되어 있는 각기 다른 수많은 국제 기구가 각자 원하는 인재상은 무엇인지. 일단 알아보자. 막무가내로 찾아보면 꿰어지는 실마리가 있겠지..
내게는 소스와 채널이 없고 방법을 특정하기 힘들다고 했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게 아닐 것이라 어슴프레 생각했다. 먼저 시작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다들 어떠한 경로를 통해 현재 국제 기구에서 근무하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목표가 생긴 그날부터 나는 이삭 줍기를 시작해야 했다.
모두들 수확을 마치고 떠난 빈들에 혹시라도 남아 있는 이삭이 있는지 훑어가며 뭐든 유효한 정보들을 줏어보자.
일단 이름이 알려진 국제 기구를 하나씩 검색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먼저 who.int와 ilo.org를 윈도우에 타이핑 해본다. About us라든지 Working with us는 각 기구마다 홈페이지 머릿말에 소개를 하고 있다. 형식적인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한번 더 들어가보면 리크루트에 관련한 페이지가 나왔다. 채용 공지가 몇건씩 리스트에 올라와 있었다. 공지 내용을 읽는 것조차 내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조직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조금씩 달랐고, 조직의 체계를 모르니 그 자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조차 해독이 불가능했다. 아, 그렇지! 기숙사 옆방의 미리암에게 물어보면 되겠네. 윗층의 알레시아와 안젤라에게도.
미리암은 유엔 제네바 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컨설턴트였다. 아버지는 튀니지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이라 두 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즉, 아랍어와 프랑스어가 모두 모국어이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친구다. 유엔 공식 언어 6가지 중 무려 세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부러운 인물이다. 어느 부서에서 일하는지 어떻게 유엔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지 기숙사 공동 주방에서 함께 저녁을 해 먹으며 심층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 다소 개인적인 질문을 받으면서도 그 모든 정보를 매우 자연스럽고 가볍게 다 풀어내 주었다. 여럿이 모여 공동 주방에서 저녁을 해 먹을 때 불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내 사정을 감안해 옆에서 통역을 해주며 나를 도와주던 성심이 참 친절한 친구다.
미리암이 근무하는 부서는 중동 지역 프로젝트를 맡아 하는 부서였다. 인턴십으로 유엔 커리어를 시작했고 유능한 인물이라는 것을 눈 밝은 보스가 알아보고 컨설턴트로 고용했다. 언어가 주요한 채용 조건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다. 그에 비해 난 제대로 구사하는 언어라곤 한국어밖에 없구나..
그동안 한국어를 갈고 닦았으면 무엇하나. 유엔 공식 언어가 아닌데. 그저 무용할 따름이었다. 미리암이 내게 물었다.
"너의 전문 분야는 어느 쪽인데?"
"난 커뮤니케이션, 홍보 그리고 컨퍼런스 기획이야."
NGO에서 근무하며 프로젝트 펀드 레이징을 위해 종종 글을 썼다. 뉴스 레터에 실린 소식들은 저마다 인쇄가 되어 전세계 지부에 우편으로 배달이 된다. 각나라별로는 소식지 번역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 주로 은퇴를 한 할아버지들이 자원하여 번역 활동을 하고 계시다. NGO의 회원들은 제네바 본부 사무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기에 나는 막내 활동가로서 작은 기쁨이나마 소소하게 전하고 싶었다.
한번은 NGO 본부 사무실 복도에 전시되어 있는 퀼트 작품에 대해 소개했다.
‘NGO에 속한 노르웨이의 커뮤니티에서 협동 작업으로 한땀한땀 만든 이 컬러풀한 퀼트는 약 9년 전 본부에 기증을 받은 귀한 작품이다. 이 퀼트 작품 한 칸을 차지하는 직경 12cm의 네모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서명이 적혀 있다. 이름을 적은 한 칸을 내어주는 것은 그날 배고픈 이들을 생각하며 금식을 하는 비용으로 NGO에 100달러를 기부하는 펀드 레이징의 장치이다. 본부 사무실에 방문객이 올 때마다, 경영 회의가 있어서 세계 간부들이 올 때 나는 내 사무실 문 앞 복도에 걸려 있는 이 퀼트 작품을 꼭 소개한다. 이윽고 선의를 표시하기 원하거나 본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이들이 종종 등장한다. 얼른 우리는 벽에 전시되어 있던 커다란 담요를 떼어내 소중하게 테이블에 펼쳐 놓는다. 그들은 신중하게 서명을 하고 우리는 감사한 마음을 받는다. 모인 금액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육 기금으로 적립이 된다. Time of Fast라는 이름의 기금이다.’
뉴스 레터의 글을 마치며 나는 소회를 덧붙였다. ‘지난 9년간의 역사를 어렴풋이 이야기해 주고 있는 이 퀼트가 매일같이 내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한 칸씩의 몫을 하고 서로의 역할을 지탱하며 아름다운 퀼트를 함께 채워간다는 것을요. 며칠 전 다시 세어 본 퀼트 작품의 작은 네모칸들, 어느덧 거의 모두 채워져 현재 비어있는 네모는 단 8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곧 있으면 뿌듯한 매진 사례입니다.’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곧이어 뉴스 레터를 발행했다.
그리고 한달 뒤, 뉴스레터에 또 다른 에피소드를 전하기 위해 소재 헌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본부 사무실에 이메일이 도착했다. 노르웨이에서 온 이메일이었다. 9년 전 퀼트를 기증한 노르웨이의 커뮤니티에서 내가 쓴 글을 읽고 모두들 감명을 받았으며, 곧이어 새로운 퀼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지난주부터 벌써 바느질을 시작했다고!
나는 이같은 커뮤니케이션, 홍보 일이 좋았다. 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안젤라와 알레시아는 제네바 생활을 교환학생으로 시작한 경우였다. 알레시아는 프랑스인이고 안젤라는 스페인에서 왔다. 기본적으로 2개 이상의 주요 언어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안젤라는 문헌정보학과에서 공부를 했고 국제노동기구 (ILO)의 도서관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다. ILO는 타 기구와는 다르게 인턴들에게 기초 생활비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월급을 지급한다. 할머니가 영국인인 알레시아는 프랑스 정부의 유엔 대표부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알레시아는 인턴 신분에도 불구하고 허드렛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중요한 국제 기구 회의에 프랑스 정부가 모니터 해야 할 사안에 대해 커버하기 위해 외교관들과 함께 동석하고 회의록을 작성하느라 바쁜 친구였다.
이들을 가만히 보니 주로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European Union (EU) 안에서 교육 체계가 호환이 되니 교환학생으로 인접 국가에서 유학을 하는 것이 매우 용이하다. 그래서 이웃 나라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이 형성이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국제 기구에 대한 접근성이 월등히 높았다.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는 한반도는 심지어 두개로 쪼개져 있어 언어는커녕 육지 안의 국경을 넘는 것이 불가능한데 이것 참 안타까운 일이군.. 고립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새삼스레 참 서러운 일이었다. 주말이면 나와 함께 팝콘을 튀겨 먹으며 크게 떠들고 어울리던 이들은 기본적으로 모두들 언어 능력자였다.
애초에 미리암이 내게 물은 질문은 내게 무언가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너의 전문 분야는 어느 쪽인데?"
"난 커뮤니케이션, 홍보 그리고 컨퍼런스 기획이야."
커뮤니케이션과 홍보 분야는 '영어 모국어자'를 채용 조건에 명시한 공고문이 많았다. 그 특정 문구가 없다 해도 영어 모국어자를 명백히 선호했다. 이제와서 내 모국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번역가와 통역가들까지 합하면 영어 모국어자라는 조건 덕분에 채용 인원은 월등히 불어난다. 갑자기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한국인, 아빠도 한국인, 나는 한국어가 모국어인데, 영어 모국어자를 원한다는 채용 공고를 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영어 모국어자들을 모조리 미워하게 되었다.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제임스 포함. 이렇게 나의 열등감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제임스는 도대체 영문도 모르고 내 미움을 받게 되었다. 다시 한번 비뚤어지고 싶어졌다.
불똥은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다. 억울한 심정은 프랑스어 학원 선생님한테 항의를 하는 것으로 번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