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관계를 맺어준 나의 멘토
제네바 근무 첫달, 첫 월급도 받기 전의 일이다. 나는 사무총장 롤란도와 그의 아내 글로리아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롤란도는 낯선 환경에 놓여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한 나를 최대한 배려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이 자리에 합격 후 근무를 시작하기 전, 나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롤란도의 평판을 들을 일이 있었다. 엄격하고 고집있는 인물. 제네바 본부에 와보니 롤란도의 부리부리한 눈과 강단있는 두꺼운 어깨가 내게도 그 평판에 대하여 확실성을 강화해 준 것이 사실이다. 일단 나는 몸을 사렸다.
저녁 초대 당일,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 꽃집에서 작은 부케를 샀다. 물가 비싼 제네바에서 늦가을에 사는 꽃은 무척이나 비쌌다. 장미꽃이 불과 몇줄기 들어있지 않은 꽃다발이 예상보다 초라하여 속상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불륨이 푹 꺼진 빈약한 꽃다발을 어떻게든 보완하기 위해 입고 있는 까만 자켓 위로 진한 핑크색 스카프를 휘휘 둘렀다. 부케를 품에 안고 롤란도의 아파트 현관벨을 눌렀다. 딩동!
장성한 두 아들들과 롤란도와 글로리아가 현관문을 열고 나를 환하게 맞아주었다. 네 명 모두와 차례차례 양쪽 볼을 마주대어 비쥬를 했다. “아름다운 꽃을 들고왔네요!” 내가 글로리아에게 꽃을 선사하는동안 첫째 아들 세바스찬이 자연스럽게 코멘트를 했고, 둘째 아들 니꼴라는 그사이 꽃병을 가지고 왔다.
인사를 마친 롤란도는 어쩐 일인지 주방에 도로 들어갔다. 미술을 하는 니꼴라가 본인이 직접 만든 꽃병과 몇개의 도자기를 들고와서 구경시켜주었고 글로리아는 나를 거실로 이끌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간단한 스낵을 서로에게 권하며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다. 예술을 즐기는 가족답게 벽면에는 오랜 유화나 이탈리아 베니스 등지에서 사온 멋진 가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롤란도가 거실로 나왔다. “저녁이 준비되었으니 식탁으로 오세요.” 나와 함께 앉아 손님(나) 접대를 하던 글로리아가 빙그레 웃으며 내게 얘기했다. “내가 음식을 다 조리해놓으면 롤란도는 마무리만 하는 거에요. 식탁이라도 차려야죠.”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장면을 목격하러 주방으로 달려갔다. ‘롤란도가 정말 서빙을?’ 아들 둘이 옆에서 롤란도의 서빙을 조금씩 거들었다.
NGO에 출근하기 시작한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까마득한 신참을 ‘귀한 손님’으로 모시고, 가족들이 모인 응접실에서 깍듯이 방문자로서 응대를 해준 것이 내게는 이미 신선하고도 기습적인 광경이었다. 그런데 내 보스인 롤란도가 저녁 식사를 준비해 준다니 이것은 내 기대와 매우 엇갈린 배치가 아닌가!
세 가지의 코스로 이어진 식사를 모두 나의 보스께서 근사한 접시에 담아 내 앞에 놓아주었다. 롤란도는 식사 중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고 나의 발언에 이따금씩 농담으로 응해주었다. 그 와중에 모두들 접시를 비웠는지 주변을 하나씩 확인하며 다음 코스를 준비했다. 디저트를 할 단계에서는 내가 마시는 커피의 취향을 물었고 ‘네, 저는 카페라테요.’ 곧이어 빵을 자르는 칼을 든채로 내게 원하는 케이크를 주문하라고 했다. 살구 케익? 혹은 라스베리 케익?
코스마다 연이어 서빙을 해주는 롤란도를 향해 마음 속으로 감탄이 나왔다. 이 광경이 너무 황송해서 인사가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나왔다. “아이고, 오, 고맙습니다, 롤란도.” 머리를 저절로 조아리게 되었다. 60세인 그가 까마득하게 어린 내 앞에 접시를 놓아주니 몸 둘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나를 빼고 모두들 식사 자리에서 자연스러웠다. 나라도 일어나서 거들어야 하나, 슬며시 불안감이 몰려와 전전긍긍하게 되었다.
내가 하도 고개를 조아리며 매차례 인사를 하니 케익을 한 입 뜨던 글로리아가 내게 설명했다. “편안하게 받아도 괜찮아요. 음식은 오후내내 내가 했어요. 롤란도는 함께 장 보는 걸 돕고, 마지막에 식사를 차리고 프리젠테이션을 돕는 것이 우리 부부가 30년을 지켜온 방식이에요. 어서 들어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가장 어린 내가 수저를 테이블에 놓지 않아 꾸지람을 듣거나, 식사 후 설거지를 하겠다고 자청하며 남의 주방을 서성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혹시 누군가 젊은 사람이 참 눈치가 없다고. 내게 엉덩이가 무겁다고 눈총을 주지 않을까?' 식사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염려하던 마음이 곧 풀렸다.
여전히 눈 앞의 광경을 믿기 힘들었다. 그렇다. 나는 이토록 평등한 부부를 처음 본 것이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먼 한국에서 날아온 큰줄흰나비처럼 저녁 내내 나는 놀라움과 감탄 속에서 가볍게 날개를 팔랑거렸다.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에 이 부부가 보인 공평한 모습은 그를 보스로서 무한 신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식사 자리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이 나를 감화시켰다.
롤란도와 글로리아를 이때 이후로 명백히 존경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중요한 기준이다. 가정 안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과 평등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NGO 안에서 평등한 관계를 맺어가겠는가. 사회운동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못 동물성이 강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위계와 힘을 금세 알아차린다. 자신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다. 부부나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양자간의 관계에서는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존재가 늘 있다. 위계와 위력을 자신의 권세로 사용하는 것은 철저히 당사자의 인격의 문제이다.
하긴, 공평한 관계맺음을 눈치 챌만한 에피소드가 있긴 했다. 하루는 글로리아가 우리 사무실에 들렀던 날이다. 사무실 스태프들 중에 그날 차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염치 없게도 또 글로리아에게 부탁을 했던 날이다. 부탁받은 일을 해주러 흔쾌히 이른 오전에 사무실로 온 글로리아에게 우리는 커피를 한 잔 청하며 자리에 앉았다. 잘 하는 거라곤 네스프레소 머신에 캡슐을 넣는 것 이외엔 젬병이라 내가 커피를 내리겠다고 당당하게 자원했다.
쟁반에 찻잔을 올려 롤란도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자, 여기 설탕 안 넣은 에스프레소요” 하며 롤란도 앞에 제일 먼저 찻잔을 내려 놓았다. 롤란도는 곧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와이프에게 건내었다. 글로리아가 흥미롭다는듯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애리의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죠?”
무슨 뜻인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주변을 휘둥그레 둘러보는 나를 향해 제임스가 살며시 얘기를 해 주었다. “서브 레이디 퍼스트 lady first.” 나는 순간 난감한 표정으로 변명을 했다. “원래 나이 많은 사람이 제일 먼저 대접을 받는 것이 동양에서는 그러한 철학을 장유유서라고 하는데.. 어쩌구 저쩌구...” 여성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이곳은 살아가는 양식과 언어가 과연 내가 자란 곳과는 판이하다.
‘엄격하고 고집있는 인물’ 그의 평판은 함께 근무하기 시작한 초반 두달만에 곧 이해할 수 있었다.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고집하여 특정 지부의 미움을 사는 일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역 안에서 정치적인 내부 갈등이 있을 때도 양측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양측 모두의 원망을 받았다. 롤란도의 부리부리한 눈과 강단있는 두꺼운 어깨는 그가 ‘엄격하고 고집있는 인물’이라는 것에 충분히 강력한 이미지 메이킹을 도왔다. 설사 본부의 말단인 내가 실수를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보스의 두꺼운 어깨 뒤로 숨을 수가 있을만큼.
그와 동시에 그는 사람을 띄워줄 줄도 알았다. 수장으로서 자신이 대신 겪은 갈등 상황은 때때로 접어두고 ‘당신들이 우리 기관의 보배요.’ 라고 감사 인사를 넘겨주는 상사였기 때문이다.
어느날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또한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우루과이, 에콰도르, 스위스를 다니며 오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온 그에게도 한번은 파면 위기가 온 것이다. NGO의 특성상 매해 총재가 바뀌고 투표를 통해 이사회 멤버가 교체되는 일이 정기적으로 생긴다. 임기를 시작한 총재의 문화적 배경이나 살아온 환경에 따라 본부 스태프들도 갈등을 겪곤한다.
특히 계급 사회가 심한 나라이든, 유교적 사상이 강한 나라에서 총재가 선출될 경우가 그렇다. 막강한 통제력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못하거나 오히려 한껏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때는 NGO의 하모니 정신을 가르치는 것도 사무총장 롤란도의 몫이었다. 감히 본인을 길들이려는 사무총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해임 위기 당시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했었다는 롤란도,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제 보스가 못 될뻔 했잖아요!” 이렇게 반응하는 내게 부부는 모두 흐뭇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이들은 과연 대인배였다. 마음 아팠던 기억을 회상하며 후배에게 교훈을 알리고 싶어했다. 그것이 사회운동movement의 보람과 묘미이고, 사람이 만들어가는 근사한 결정체라는 것을.
식사를 서빙하는 보스의 모습은 전 스태프 부활절 식사 때도 크리스마스 식사 초대 때도 동일했다. 그때도 나는 “저는 카페 라테요.” 하며 커피를 주문했다. 롤란도는 여전히 커다란 앞치마를 하고 커피 주문자와 티 주문자를 차례차례 세어 나갔다.
언젠가 나도 이런 인물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일단 앞으로 주어진 일만이라도 잘 감당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