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나의 멘토 미스터 롤란도 달마스

“롤란도라고 불러요.”

by Aeree Baik 애리백

이쯤 되면 그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제네바 생활에는 롤란도의 존재가 강력히 자리 잡고 있다. 나의 멘토 미스터 롤란도 달마스.

NGO 근무를 시작하러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한 날, 나는 롤란도를 처음 만났다. 그동안 NGO 활동을 하며 이름만으로 익히 들어왔던 인물이다. 우루과이 출신으로 비정부 기관 운동을 시작하여 미대륙에서 그리고 유럽에 와서 본부 요직을 거친, 우리 NGO의 사무총장이다. 토요일 아침, 그가 공항으로 나를 마중 나왔다. 소형 자동차를 직접 몰고.
오, 미스터 달마스.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스터,라고 그를 존칭으로 깍듯하게 부르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롤란도’라고 불러요.”

그는 머리카락이 하얗고 눈이 부리부리한 할아버지였다. 눈빛이 매서웠다. 그는 전형적인 남미 남자의 체형이었다. 키는 작고 상체가 두꺼운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 같았다. 복부 비만인 롤란도는 고혈압이 있어서 항상 다이어트 중이었다. 아주 간소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는 꼭 단정히 머리를 빗었다. 그리고 퇴근 직전 아내 글로리아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머리를 빗었다.

롤란도는 긍정으로 가득한 농담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롤란도의 농담을 즐거워했고 그리고 나의 농담을 그도 즐겼다.

세상에, 롤란도! 어떻게 요거트 하나에 사과 한 알, 그리고 비스킷 세 조각을 먹고 하루를 버텨요? 수퍼 모델이에요?

점심 식사를 하려고 탕비실에서 사과 한 알을 씻어오고 있는 롤란도를 향해 내가 놀라움과 농담이 반반 섞인 코멘트를 쏟아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위아래가 없다.


근무 초기, 우루과이 출신의 롤란도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앤드류가 매일같이 NGO의 재무 회의를 스페인어로 하는 통에 장난기가 발동한 나도 한 번은 끼어들어 말을 건 적이 있다.
저도 스페인어 아는 단어 있어요! 베사메무초!”
얘기를 하자 일동이 모두 웃어댔다. 롤란도가 내게 물었다.
베사메무초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며 내가 해맑게 대답했다.
아뇨.”
키스를 많이 해주오, 라는 뜻이에요.”
“오 마이 갓. 쏘리.”


이사회 리셉션에서 오프닝 발언 중인 사무총장 롤란도 달마스


롤란도 달마스와 글로리아 달마스 부부는 우리집에서 ‘애리의 스위스 부모님’이라 일컫는다. 묵직한 바위 같은 존재가 되어준 분들이다. 외국에서 고군분투하는 나를 향해 애정을 가득 품어주었다. ‘사무총장’이라 불리는 하늘 같은 직장 상사가 말이다.

글로리아는 우리 모든 스태프의 좋은 친구이자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이사회 회의가 있어서 스태프 모두들 발이 묶여 있을 때 비행 편이 지연되어 예정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이사회 멤버를 우리를 대신해 공항에서 픽업해 주고,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중 돌발 상황이 생기면 글로리아의 지혜로 수습되는 일이 많았다.

글로리아와 롤란도는 혹시라도 내가 작은 기숙사에서 힘들게 지내지는 않는지 틈틈이 살펴봐주었다. 그 사이 순식간에 친구가 생기고 매일같이 기숙사에서 즐겁게 어울리며 맥주를 마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둘은 마음을 놓았다.

제네바 근무를 시작한 지 이틀째되던 날, 롤란도가 본인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혹시 첫 월급을 타기 전 한 달 동안 지낼 수 있는 생활비가 충분한지 물어왔다.
아, 그러믄요. 저 이백 불 있어요. 그거면 한 달 충분히 삽니다.
큰소리를 떵떵 치는 나를 향해 그는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스위스 물가가 비싸서 모자랄 거예요. 혹시 필요한 비품은 회사를 통해 청구하고, 월급은 30% 가불 해줄 테니 자, 여기 받아요.”
한사코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그가 몹시 고마웠다. 어제 다녀온 마트에서 가격표를 확인하고 어마어마한 물가에 한 차례 충격받은 터라 회사에서 가불을 먼저 제안해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 번은 토요일 오후에 사무실에 나가 맥주를 한 캔 따 마시며 회사 컴퓨터로 <무한도전>을 찾아보고 있던 참이었다. 가난한 내게는 노트북 컴퓨터 한 대도 없어 그 어딜 가든 가는 장소마다 여기저기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어학연수를 미국에서 마치고 통장을 탈탈 털어먹은 나는 가진 재산이 그렇게 전무했다. 첫 월급을 받고 겨우 숨통이 트였다.

마침 <무한도전>에서 ‘댄스스포츠 특집’을 하던 회차였다. 박자도 스텝도 포즈도 모르는 못난이들이 왈츠와 룸바를 겨우 연습해 스포츠댄스 대회에 나갔다. 어떻게든 배워보겠다고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해 가며. 꽤 처절해 보였다. ‘저봐,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애쓰는 거.’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감동에 사로잡혀 나는 사무실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다 비운 맥주캔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그때였다. ‘딸깍’ 사무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엄청난 긴장이 몰려왔다. 두런두런 대화하는 음성이 들리고, 토요일 오후에 이케아에서 사무실 비품을 구매해온 롤란도와 글로리아가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맙소사.’ 그들은 퉁퉁 부어 빨간 얼굴로 회사 컴퓨터에 한국 TV를 틀어놓은 말단 스태프를 본 것이다.


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책상에 편안히 올린 두 다리를 황급히 내려놓으며 당황해하는 나를 향해 “어제 얘기한 작은 서랍장을 사 왔어.”하며 별말 없이 인사를 하고 조용히 나갔다. 주말에 왜 여기 있느냐. 회사에서 이 꼬락서니로 뭘 하고 있느냐 나무라지도, 꼬치꼬치 채근하지도 않고 말이다.


사무실에서 불과 10분 거리의 제네바 올드 타운, 음악 학교와 오페라 극장이 있다.


NGO에서는 모든 회원들이 동등하게 목소리를 갖는다. 때로는 문화적 차이로 기인하게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나 무리한 요구를 담고 있는 이메일이 이따금씩 본부에 오기도 한다. NGO의 스태프를 함부로 대하는 언설이 담겨 있기도 하다. 회원이 본부 스태프의 근무 방식이나 태도를 지도하고, 감시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운영 비용을 허투루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견제한다. 모든 것이 보고서에 투명히 적혀 있어도 비싼 스위스 물가 때문에 사무실 유지 비용이 단위가 크다는 것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어느 날 나는 NGO 회원으로부터 항의가 담긴 무례한 이메일을 받고 성질이 폭발하여 사무실을 쿵쿵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수신한 이메일을 한 장 프린트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표현이 담긴 그 문장에 형광펜으로 라인을 쭉- 그었다. 자, 롤란도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저요, 이번엔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이거, 여기 이 표현을 보세요. 용납 못 합니다.”

잔뜩 성질이 나있는 나를 향해 롤란도가 대답했다.

잠시 멈추길 바랍니다. 이렇게 화가 나있을 때는 절대 답장을 하지 말아요. 대응하지 말고 정확히 24시간을 넘겨요.” 공격적으로 대응했다가 내가 오히려 실수를 하거나 문제를 더 키울 가능성을 묵직하게 눌러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화선지만큼이나 가볍고 성질이 금세 불타올랐다. 합리적인 방침이었다. 불쾌한 메시지를 보낸 발신인도, 수신인도 24시간이 지나면 다소 누그러졌다. 다행이었다.


롤란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지켜보며 내게도 무언가 스며들어온 정서가 있다. 지금도 나는 사안이 민감하거나 누군가를 비난하는 코멘트를 가득 담고 있는 업무 이메일을 받을 경우 절대 24시간 안에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롤란도의 방침을 따라서. 빛의 속도로 답장을 하여 상대를 즉각적으로 조각조각 난도질하고 싶은 내 마음이 다스려진다. 롤란도 덕분이다.


처음 NGO 근무를 시작하며 강한 구동력으로 일을 추진하는 나를 그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일단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사람의 열정이란 것은 하여간 희한한 것이다. 잘 해내고 싶어서 주변을 매우 힘들게 만들고 스스로 병을 만들기도 한다. 이럴 때 나아갈 곳과 물러설 곳을 계산을 할 머리와 경험이 없어서 무리수를 둔다. 당시 나는 어떤 방어선을 놓을 정신머리도 없어서 무작정, 되는대로 마구 덤벼댔다.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대단한 포부를 늘어놓으면 내공이 어마어마한 스승은 늘 온화한 웃음으로 그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들어주었다. 일단 모두 경청했다. “아주 기가 막히죠?” 난 그가 내 의견에 최대한 마음이 기울도록 살을 붙여나갔다. 내 기획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장황한 설명을 계속했다. “상당히 획기적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고개를 젖히고 웃어 보이면서도 그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 넘어온 건 아닐까?’


롤란도는 정말이지 내 말을 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는 진정 인격자였다. 허언과 무리수가 다소 섞인 브리핑을 모두 들은 뒤, 그 후에 말을 이어간다. 곧이어 너의 찬란한 아이디어가 왜 실행 불가능한지 설득했다. 단순한 가치 판단으로 Yes/No를 대답하는 ‘결재하는 보스’가 아니라 과정과 단계를 설득해가며 부하의 역량을 키워가는 사람이었다. 그의 결정을 나는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부를 위한 퀼트 패치에 서명하고 있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노트에 가득가득 채워 롤란도의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나면 대부분이 무리수였다. 내 선에서 추진 불가능한 사안들이었다. 다른 프로젝트에서 재정을 끌어와야 하거나 NGO의 이사회 멤버를 설득해야 하는 일들을 롤란도가 직접 나서서 방향을 틀어 주어야 했다. 그중 소수의 몇 개를 인정받아 롤란도의 적극 지원을 얻었다. 나는 그 귀한 몇 개의 기회를 낭비할 수가 없어서 소중하게 추진하고 반드시 끝까지 성사시켰다. “반드시 잘할 겁니다.”

롤란도는 내게 “너의 집요함이 결국에 해낸다.” 라며 굳이 ‘이건 칭찬’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그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동료들은 잘 알고 있다.

내가 만용을 부릴 때도 글로리아와 롤란도가 어김없이 잡아 세웠다. 사리 분별을 못하고 함부로 튕겨 나갈 때 다시금 차분한 태세로 돌아오도록. 오랜 NGO 경력으로 롤란도는 사람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몰아세우는 법이 없고 늘 농담을 해서 긴장한 상대를 안심시켰다. '내가 당신을 공격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협력을 통해 양측이 원하는 좋은 결론을 내보자.' 하는 방식이었다.

갈등의 소지가 있는 상황에서 그의 판단은 늘 사람을 보호하는 쪽으로 어김없이 기울었다. 시스템을 보호하느냐 사람을 포용하느냐의 차이였다. 기로에 선 그는 어김없이 사람을 감싸안는 것으로 해결을 했다.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도 결점을 채우는 것도 결국엔 사람이다. 그는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이상을 관철시키려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정치적 의견을 내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세상을 바꾸고 싶고, 정치를 개혁하길 원한다는 그들에게서 보이는 희미한 염세주의를 본다. 그러한 인간 혐오를 갖고 있는 인물이라면 롤란도의 철학과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인간사 굴곡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몫이다. 그것을 가능성으로 바라볼지, 패인으로 볼지는 해석하는 자의 역량이다.

단순히 본인의 영달을 위해 부하 동료를 동원하는 인물들을 볼 때마다 옛날의 롤란도가 생각난다. 늘 ‘여러분이 해냈다’ 수고 많았다며 치하하던 그 목소리. 자신이 겪은 풍파는 접어두고 ‘당신들이 우리 기관의 보배요.’라고 감사 인사를 넘겨주는 보스. 언젠가 나도 이런 인물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건만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앞으로 인격을 수양하는 일만 남았도다.

내가 처음 그를 무한 신뢰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제네바 근무 첫 달이었다. 그 당시 글로리아와 롤란도로부터 집으로 저녁 초대를 받았던 일이다. 나는 이날의 많은 순간들을 매우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이 나를 감화시켰다. 롤란도와 글로리아를 그때 이후로 명백히 존경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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