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썼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덴마크 컨퍼런스를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NGO는 전세계 각국에 지역별 지구 regional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고, 지역마다 대표성을 띈 인물들이 있다. 활동이 도드라지는 리더들이다. 각 지역, 혹은 국가별로 1-2인에 한정해 컨퍼런스 참가 경비 subsidy를 지원한다.
물론 프로그래머인 나는 이들을 십분 활용하여 각 세션마다 역할을 맡길 예정이었다. 이번 컨퍼런스는 이들에게도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된다. 조력자로서 국제 컨퍼런스 데뷔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이들의 지원서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지원서를 취합하고 NGO 활동 이력을 요약하여 사무총장 롤란도에게 보고를 해야했다. 그날도 서류를 한 장 한 장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던 중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한국에서 도착한 지원서를 보던 참이었다. ‘에휴, 또 이런 서류가 접수됐어.’
컨퍼런스 참가 경비 지원 금액은 한국-덴마크 왕복 경비를 70%쯤 커버할 수 있을만큼 책정해 포함했다. 컨퍼런스 등록비는 전액 지원을 한다. 하여, 지원자들의 서류와 함께 신분증 복사본을 받았다. 이때 나는 그들이 제출한 문서들을 취합하고 한장씩 검토하며 한숨을 쉰 것이다.
영문 이름을 정확히 쓸 것, 늘 통일되게!
한국에서 온 지원 서류들에는 반복되는 특징이 분명히 있었다. 본인 영문 이름을 여기저기에 마구 둔갑시켜 적어놓았다. 자신의 이름 철자를 왜 자꾸 바꾸는 건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이름 아닌가, 이름!
실무자들은 이같은 서류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당연히 헷갈리기 시작한다. 지원할 당시 이메일에 쓴 이름 철자와, 지원 서류에 쓴 이름 철자와, 여권에 적힌 이름 철자가 모두 제각각 다른 사람들도 무수히 많았다.
_김우성 씨와 감우성 씨는 엄연히 다른 인물이다.
_감우성 씨와 간우성 씨도 엄연히 다른 인물이다.
서류상에 이름 철자가 한 토씨만 달라져도 이 인물은 동일 인물이 될 수가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지원 서류에는 동일 인물이 스스로 본인 이름을 적어 놓기를 비단 성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성과 이름이 모두 다른 경우도 있었다. 전기성 씨가 본인 이름을 이 서류에는 Ki-Sung Chun으로 적고 또다른 곳에는 이름을 Ki Seong Jun으로 적으면 이건 다른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발음이 같으면 얼만큼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던데 그건 전유성 씨가 정우성 씨인 척 하는 상황이 된다.
이 사안이 만약 일자리 지원 서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신뢰도가 수직 직하할 것이다. 자기 이름도 똑바로 못 적어내는 사람에게 업무를 맡길 리가 만무하다.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니 당혹스러워하는 외국인 동료들에게 변명을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백의의 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을 세 번 부인하고 싶어졌다. 한국인들이 모두다 그런 건 아니야, 나 봐. 난 까마귀라고! (응?)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씨가 급기야 본인 성씨를 홍가에서 호가로 (홍->호), 즉 홍길동에서 호길동으로 바꾼다면 그 이후로는 쭉 통일해야 한다. 한번 호길동은 영원한 호길동인데 기분이 내키는대로 이랬다 저랬다 이름을 자꾸자꾸 바꾸면 아버지도 혼란스럽다 이거다.
가족 관계 증명이 문제가 될 수도
지인이 겪은 실례 사례는 더 복잡했다. 미국에서 아버지가 본인 성씨는 Choe로 아들 성씨는 Choi로 여권과 신분증에 등록을 해 놓아서 가족 관계가 증명이 안 된 케이스다. 일상생활에서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기겠지만 천만에, 재산 상속부터 의료보험, 영주권 신청까지 가족 관계 증명이 필요한 서류가 셀 수 없이 많다.
당신의 이름을 확인하느라 실무자는 시간을 허비했다.
한국에서 알파벳을 쓸 일이 없고, 영문 이름을 자주 쓰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유를 댄다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영문 이름을 쓰는 일은 의외로 빈번하다. 의식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일례로 본인의 신용 카드에 적혀 있는 이름, 영문으로 이름이 써있는 그 카드를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번씩 사용한다. 자, 지금 지갑에 있는 신용카드를 꺼내고 서랍에 넣어두었던 여권을 꺼내 이 둘을 확인해 보자. 이름 철자가 정확히 동일한가? 다르다면 양단간 결정을 내리고 한쪽의 갱신일에 바로 잡자.
여행을 계획할 때, 호텔이나 비행편 예약시 신용카드에 적힌 이름과 여권에 적힌 이름이 다르면 이후에 본인 확인을 거듭 하느라 여러 단계에서 귀찮은 일이 생긴다. 우리 NGO에서 실무진들이 한국 회원들 때문에 골탕을 먹은 걸 생각하면 지금도 아득하다.
외국 공항에 도착했는데 발권을 받은 비행기 티켓에 적힌 이름이 여권에 써있는 이름과 다르다던지, 이같은 사례가 수없이 많아서 오류를 바로잡느라 같은 일을 여러차례 또 하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본인의 영문 이름 철자를 한번 확정했으면 계속해서 통일해 적어내도록 하자.
해외로 지원서를 보낼 때엔 국가명과 국가 번호를 명기할 것
지원 서류에는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지 등을 적는 공간이 있었다. 전화 번호를 010-Xxx-xxxx로만 적으면 곤란하다. 한국 휴대 전화가 010번으로 시작할 뿐 이건 국제 표준이 아니다. 외국 사람들은 그 전화번호가 한국 번호인지 모르는 일이다. 전화번호를 기록할 때에는 국가 번호인 +82을 먼저 적어주는 것이 명확하다.
전화 인터뷰라도 잡힌다면 실무자는 국가 번호를 찾기위해 구글링을 할 텐데 국가 번호가 번듯하게 적혀 있는 이력서를 보면 검색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일을 덜어주게 된다.
마찬가지로 주소명을 적을 때도 ‘00번지 대구광역시’까지만 쓰면 Daegu 대구가 대한민국의 도시인지 인도네시아의 도시인지 알길이 없다. 주소에는 Korea (Republic of) 혹은 South Korea라고 국가명을 포함하여 적자. 디테일을 중시하는 사람은 그 사소한 사실까지도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완벽주의자인 나의 보스의 경우는 문서를 휘리릭 넘겼을 뿐인데도 띄어쓰기, 일정치 않은 자간, 들여쓰기 실수를 모두 포착해내고 작성자가 스펠링 체크를 했는지 단번에 눈치를 챈다.
현지에 연락을 취할 때엔 시차 확인 필수
문의 사항을 전화로 확인하고 싶을 때엔 최소한 상대방의 시차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어야 한다. 모두들 퇴근하고 끝난 시간에 혹은 새벽에 전화를 해 부재중 전화 기록을 남겨놓고는, NGO본부에서 본인의 전화를 받지 않아 피치 못하게 이메일을 다시 보낸다고 항의를 하면 유감이다. 그런 방식으로 스스로의 정신머리와 센스 부족을 온세상에 확인시켜주면 곤란하다. 지구는 분명히 둥글고 내가 쿨쿨 자는동안 누군가에게는 낮이 찾아온다.
나도 실수를 했었다. 어느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업무 관련 회의를 하기 위해 컨퍼런스콜 스케줄을 이리저리 맞춰보던 중이었다. 나는 미국과 이집트 시차를 고려하여 최소한 업무 시간 중에 모두다 참여할 수 있도록 계산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일정을 잡고 나서 Outlook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한 통의 이메일이 단박에 도착했다. 중동 지역은 금요일이 휴일이라고. 결국 일정을 다시 잡느라 수고로웠던 건 내 자신이다. 나는 자책했다. ‘에잇, 조금만 더 세밀했으면 좋았을 것을..’
해외로 지원서를 보낼 때엔 .hwp 파일 보내지 말 것
어느날 한국에서 보낸 한글2005 파일을 받고는 난감해 있던 차였다. 파일을 열 수가 없었다. 동료 제임스는 그런 나를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 방법이 있지. 내가 해결해 줄게’라고는 곧 회의실에 위치한 공용 컴퓨터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런 일이 워낙 빈번하니 동료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공용 컴퓨터에 한글 파일 리더 Hanword HWP viewer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놓았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보낸 서류를 펼쳐보는 용도였다. 호주 사람인 제임스가 호주에서 한글2005파일을 사용했을리가 없다.
놀랍겠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글과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글을 구사하지도 않고, 삼시세끼 한식이 주식이 아니다.. 자꾸 우기면 곤란하다.
지원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본인이 지원서와 신분증 복사본을 이메일로 제출했으니 첨부파일이 한묶음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인물에게서 도착한 서류이니 서류들을 수신자가 동시에 취급할 것 같지만 한글.hwp 파일이 포함되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서에 한글 제목을 붙여 저장한 뒤 이메일로 보내면 첨부파일 제목이 &;)@&)$으로 바뀌어 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NGO 실무자인 나는 수백명의 지원자 서류를 받은 뒤 첨부파일을 다운 받아서 각 나라의 지역과 지구별 한 폴더에 차곡차곡 포함해 넣고 인물별 폴더를 다시 만들어 취합해 서류로 정리해야 했다. &;)@&)$라고 첨부파일이 오면 한숨부터 나온다. 보냈다고 박박 우기는데 재차 확인해보면 &;)@&)$은 스팸 메일에 들어가 있다.
어려움을 피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
대안은 Microsoft Word (.doc) 파일로 보내거나 아예 pdf로 변환해서 보내는 방식이다. 특히 이력서의 경우는 pdf로 송부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보안에 철저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제안한다면 파일명에 CV라 적은 후 이름과 날짜를 명기하는 형식이다. 이 경우 띄어쓰기를 한 빈칸은 _로 처리한다. 꼼꼼한 문서 검토자들은 문서 property에 들어가 최종 저장 일자와 시간, 작성자 이름도 모조리 재확인해 본다.
예시) CV_Kildong_HO_July_30_2018
덧붙여, 문서 안의 header나 footer 한 귀퉁이에 페이지 번호를 적고 영문 이름과 날짜를 함께 표기하면 금상첨화다. 매 페이지마다 문서의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사소한 디테일이 당신의 소중한 지원서에 좋은 인상을 선사할 수도, 쓰레기통에서 구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