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열망을 존중해 준 귀인
현실성이 크지 않은 커다란 열망을 안고 있는 당사자는 많은 순간 갈등을 한다. 보험을 드는 차원에서 Plan B를 세워야 하는가.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보험은 쿠션일 뿐 최종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또 고민에 빠진다. 내가 과연 실현 가능한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뒤를 돌아 복기해 봤을 때 명백히 보였다. 목표에 대한 열망을 희석시키는 것은 결국 본인 자신이었다는 것을. 간절히 원하던 것에 별안간 흥미를 잃는 것도 나 자신이었다. 동분서주하다 힘이 빠진 그 순간에 이 계기를 틈타 마음껏 긴장을 풀었던 것도 마찬가지이고. 왜냐, 안될 것 같으니까. 실망할까봐. 상심이 클까봐. 가진 자원을 모두 소모해 버리고 끝내 빈털터리 낙오자가 될까봐. 애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많은 경우 나는 ‘뒷심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쓰디쓴 기억이 있다.
어차피 통하지 않을 방법이라고 판단하면 마음이 벌써 비탄에 빠진다. 그 좌절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아예 시도 조차 하지 않고 거르는 것이 나 자신이었다. 지금의 나를 소모해 버리면 그 이후의 나는 더 힘들어지겠지. 에너지를 소분하여 적절히 꺼내 쓰는 것도 요령이 필요할 테니. 이런저런 고민으로 힘을 내기가 힘들다. 털고 일어나는 것도 시간이 걸리고 진이 빠진다. 고꾸라진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오롯이 내 몫이다. 그렇다. 내게도 여러 차례의 갈등이 왔다.
하지만 이때 내겐 특이점이 있었다. 나는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것도 없다는 것. 가지고 있는 계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건 계란을 그나마 몇 개 보유하고 있을 때 적용되는 얘기다. 난 갖고 있는 계란이 아예 없어서 오히려 선택할 수가 없었다. 이제 계란을 주우러 다니는 시점인데. 잃을 것도 놀랄 일도 없다.
국제기구 진입을 목표로 삼고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이었다. NGO와의 계약이 몇 개월 남지 않았고 내가 총기획을 맡은 이 컨퍼런스도 점차 규모를 완성해갔다. 컨퍼런스 기획 단계의 90%가 형태를 갖추고 있던 시기였다. 이벤트는 현장성이 중요하니 나머지는 현장에서 채우면 된다 생각했다. 몇 개월간 함께 훈련한 탄탄한 팀도 준비가 되어있다. 현재 구성한 프로그램과 홍보로 이미 프로젝트의 완성을 꽤 성공적으로 예측하던 중이었다. 막바지 준비만 남은 상황이니 일에 대한 마음이 느슨해졌다.
당시 스위스 체류증의 기한을 매일같이 꼽아보고 달력을 확인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 나는 스스로 구제할 방법을 얼른 찾아야 한다.’ 제네바에서 남은 불과 4개월 동안 국제기구에 들어갈 방도를 확보하지 않으면 체류증 기한 만료로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 스스로 ‘직진!’하고 외치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일종의 자기 암시가 필요했다. 그때 나 자신을 붙들어 놓을 요량으로 스위스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난 당분간 이곳에 있을 것이다. 나는 운전면허증이 필요하다.’ 자가용도 없고 자동차 여행 계획도 없지만, 그렇게 뜬금없는 결정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아무 진전 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체류증이 만료되면 이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 대신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있었다. 심연의 바닥을 그저 짐작하며 닻을 내려놓는 심경이었다.
NGO에서 내가 맡은 컨퍼런스를 불과 3개월 앞두고 있던 시점, 마음이 조금씩 떴다. NGO와의 계약기간은 앞으로 3개월 후에 종료한다. 나는 목표가 있고 얼른 서둘러 실현하지 않는다면 제안 시한은 끝이 난다. 나는 조금씩 다급해졌다. 국제기구에 지원하고 이력서를 수정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며 조언을 구하느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날들 동안 책상 앞에서 업무 집중력이 떨어졌다. 구름 위에 붕 뜬 것처럼 말이다.
이때 나를 정방향으로 돌려놓은 두 사람이 존재한다. 한 분의 이야기를 여기에 꺼내본다.
컨퍼런스 프로그램과 관련한 자료를 구하러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세계교회연합의 한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필요한 책을 구해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공유하게 되었다. WCC의 정원에 마련된 테라스에서 그날은 점심 메뉴로 바베큐가 있는 날이었다. 가니쉬로 나온 보리밥을 꼼꼼히 씹어먹으며 식탁 위로 이야기가 오갔다. 국내외 경험이 풍부하게 많은 분이니 고민을 한 조각 털어놓게 되었다. 현재의 상황을 말씀드리고 목사님께 조언을 여쭈었다.
지금 NGO에서 11개월짜리의 계약으로 컨퍼런스 기획을 하고 있고, 곧 행사를 치르게 된다. 일을 끝내고 한국에 귀국하기보다 이곳 제네바에서 미래를 도모하고자 한다. 국제기구에 도전하려고 하는데 통할만한 길을 찾는 중이다. 헤매고 있는지, 맞게 가는 중인지, 현실성이 과연 있는지 결코 확신은 없지만 분투 중입니다,라고.
나는 화려한 이력을 갖추지 못했고 언어도 턱없이 부족하며 인맥도 없다. 오로지 혈혈단신이다. 앞에 앉아 경청하는 분께 나는 이같이 말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자기소개’부터 참 초라하구나.’ 하지만 이런 고민을 내어놓는 내 마음은 소망으로 가득했으니 동시에 멋쩍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어색해하며 이야기를 꺼낸 내게 그가 매서운 눈빛으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라, 간절히 구하고 원하라. 지금 마음속에 한가득 품고 있는 소망을 끝까지 지켜라.
그는 이야기했다. 안정성과 타협하지 마라. 남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람에 그치지 말고 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라. 끝까지 원하고 희망하고 도전하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지금 본인의 주 업무를 멋지게 완수해라. 현재 있는 포지션에서 일을 끝내주게 잘해서 소문이 나도록 지금 맡고 있는 일을 똑 부러지게 해내라. NGO의 전 세계 네트워크에 ‘백애리가 최고로 잘 해냈다. 완벽했다.’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평판이 널리 널리 알려지도록.
그날 나는 정말로 닻을 내렸다. 이 조언을 듣고 지금껏 붕떠있던 마음을 다잡았다. ‘멋쩍지 말고 어색해하지 말고 직진하자. 직면해 있는 현재의 내 자리에서 완벽한 마무리를 도모하자.’
그날부로 다시 정자세로 이 이벤트를 빈틈없이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총력을 다했다. 그때 이분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맡은 업무에서 집중력이 떨어진 채 90점짜리 컨퍼런스에 대략 만족하고 NGO와의 일을 끝마쳤을 것이다.
사무총장 롤란도와 당시의 세계 총재는 덴마크에서 열린 이 행사가 마무리된 후 내게 역대 최고의 컨퍼런스를 해냈다며 치하했다. 나는 조직이 대략적으로 완성된 이벤트의 마지막 스퍼트를 참가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했고, 참가자들이 최대한 준비된 자세로 이곳에 와서 가능한 많은 것을 배우고 나누고 본국으로 돌아가 역량을 발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에 관한 최대한의 브리핑을 사전 공유하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역대 최고의 규모였고 피드백도 상당했다. 나 개인에게도 큰 성취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뒷심 부족’이라는 오점에서 해방되었으니.
떠날 조직이어도 마무리를 똑 부러지게 잘해서 소문이 나도록 본인의 주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라던 목사님의 조언이 결국은 적중했다. 2년 뒤 NGO의 컨퍼런스가 일본에서 다시 기획될 때 사무총장 롤란도는 다시 나를 불러들였다. 그 해의 총기획자에게 애리를 섭외하라고 지시하여 나는 또 한 번의 컨퍼런스를 일본에서 돕게 된다.
누군가의 선한 영향력이 많은 신비로운 일에 동기가 되어준다. 그날 찾아간 WCC에서, 정원에 놓인 식탁 위로 오고 간 대화가 나를 정방향으로 세워주었다. 실패하게 되더라도 완벽한 끝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이 경험을 통해 체화했다.
그 이후 늘 생각한다. 사람의 영향력이란 놀라운 힘이라고. 이는 내게 엄청난 결과를 동력 했다. 나의 열망을 존중해 준 그가 내가 만난 귀인이다. 타인의 목표와 열망을 깎아내리거나 점수 매기지 않고 오롯이 그대로 존중해 준 인물이다. 원하는 것을 끝까지 소망하고 지속적으로 그 방향을 바라보라는 그의 조언은 아직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