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누군가는 듣고 있었다.

아무도 듣지 않을 것 같던 내 목소리를

by Aeree Baik 애리백

안면만 있던 지인의 차를 얻어 탄 적이 있었다. 이리저리 스쳐 지나갈 때 목례만 가볍게 해 온 사이였다. (그래, 그때 모임이 있었구나.)


목적지에 함께 가기 위해 누군가 차편을 마련해 주었고, 그 가족의 차를 얻어 타게 된 사연이었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70분쯤을 내달렸다. 제네바를 벗어나 들판과 호수와 산길을 거쳐 꼬불꼬불. 이것은 몇 달 전의 상황이라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지나친 일이다.

뒷자리에 동승한 나를 향해 몇 개의 질문이 오갔고, 서로 가벼운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제네바에는 언제 오셨나요?”
“애리 씨가 우리보다 제네바 선배네.”

두런두런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부부가 각각 일하는 직장의 이야기와 내가 현재 근무하는 NGO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당시 나는 열심히 구직 중이었고, 지금까지의 경력 분야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서슴없이 꺼내놓았다. 하지만 앞자리 운전석의 두 분은 내가 하는 이야기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의 경력이나 앞으로 원하는 진로를 이들이 굳이 알고 싶어 할 이유도 없을 것이라 짐작은 했다. ‘하긴, 국제기구가 워낙 많은 제네바에는 젊은 인턴들이 꽤 흔하니까.’


이야기가 서로 꼬리를 물다가 옆길로 샜다. 결혼 계획은 없는지, 누굴 소개하겠다는 말씀을 들었을 뿐이었다.


제네바에서 불과 15분 차로 달리면 바로 산과 들판이 나온다.


개의치 않고 나는 하던 얘기를 마저 마무리했다. 외국에서 컨퍼런스 기획을 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인지, 한국에서의 경험이 다양한 모양새의 회한으로 남는 이유. 국제 도시 제네바에서 나라는 인간은 무엇에 부족함을 느끼고 또 어느 분야에 자신이 있는지. 또박또박 구술했다. 국제기구 인턴십을 하려고 지원하는 중이고, 백방으로 길을 찾는 중이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즉시, 선택 버튼만 누르면 즉각적으로 환타 캔이 쏟아져 나오듯이 ‘자기소개’가 술술 나오는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누구를 만나도 나의 화두는 ‘국제기구에서 인턴십 구하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전혀. 나는 가야 할 목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시간이 촉박하면 감정을 단숨에 자르게 된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다. 속앓이도 시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때는 그랬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유용한 정보든, 조언이든, 채용 트렌드이든 뭐든 질문하고 싶어서 전방위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물론 거절한 사람도 있다.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될 거라고. 헛물켜지 말라며 조언하는 인물도 있었다. 당시에는 속상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거절 의사를 밝히면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르는 사람의 청을 쉽게 받아주는 것이 감개무량할 뿐, 당연한 기대는 없다. 그저 이삭 줍기를 하던 상황이었다. 남들이 추수를 마치고 지나간 땅에서 부스러기를 찾는 중이었다.


우리 동네 골목길로 보이는 산등성이


사람들은 무신경하거나, 흥미가 없거나,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나도 신경 써서 볼게 ‘keep an eye on it’’ 하고 대꾸하지만 그 대답의 현실성에는 크게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때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방식의 구직 활동이란 나의 소유가 아닌 땅에 정체 모를 작물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 같기도 하다고. 감자나 고구마가 나올지, 인삼이 나올지 기대를 접은 채 정처 없이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짓는다. 곧 가뭄이 오리라 예측하며 농사를 짓는 농부가 어디 있으랴. 일단, 된다고 생각하자.
‘좌우간 이 계절을 버텨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마음이 넓고 타인을 혜량 할 줄 아는 누군가가 내 목소리를 경청해 주기만을 기대하며 지속한 일은 아니다. 내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는 우물의 물을 길어내야 했다. 전부 다 했다고, 할 만큼 모두 했기에 이젠 후회가 없다고 스스로 설명이 가능할 때까지는 도달하고 싶었다. 그 지점에 이를 때까지 말하고 또 설명하며 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모두 시도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아무도 듣지 않을 것 같던 내 목소리를 듣는 한 명은 늘 존재한다. 나 자신이다. 동분서주하는 그때 제일 먼저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스스로의 자아가 가장 먼저 알고 있다. 끝까지 가 봤는지 혹은 중간 지점에서 뒤돌아왔는지. 그러니 피할 길이 없었다. 시도하고 버티고 애쓰며 내 자신이 수용할 만큼은 달성해야 했다. 그렇게 끝까지 가봐도 안 된다면 순순히 물러날 용기를 발휘하자고 결심했다.

이후 몇 달 뒤, 나는 또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세계기상기구(WMO)였다. 전화를 끊고 난 뒤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세계기상기구에서 내년에 세계 정상들을 모아 큰 규모의 World Climate Conference를 개최하는데,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인턴을 구하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제네바 구시가지


몇 달 전 차를 얻어 탔던 그분이었다. 세상에, 나의 진로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한 인상을 비쳤던 그때 이 분은 내가 구술하는 경력 사항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컨퍼런스 기획 분야를 하고 있고, 지금껏 커뮤니케이션 관련 일을 해왔다는 그 두 가지의 쟁점이 맞아떨어지자 나를 떠올렸다는 사실이다. 스위스의 시골길을 차로 달리며 나눈 70분간의 대화가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반응했다는 그 사건이 내게는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듣고 있었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나의 필요와 열망을, 또박또박 떠들어댄 이 목소리를.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인턴십 공고를 낼 예정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일단 WMO의 인사과에 이력서와 커버 레터를 보내라. 인턴십도 엄연히 인사과를 통해 채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후의 일은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혹시라도 인터뷰 날짜가 정해지면 그때 다시 내게 알려다오.’

인샬라. 하나님 맙소사.
‘감사합니다!’
마음속으로 족히 이백 번쯤을 반복하여 외쳤다. 전화 통화를 마친 후 그대로 얼어붙은 채 한참을 길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당장 나는 NGO에 연락해 그다음 날 반차를 냈다. 그리고 동료인 폴린에게 상황 설명을 한 뒤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감수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당시 NGO에서는 내가 계약이 끝난 뒤 진로가 어떻게 될지 결정되지 않아 모두들 염려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기가 끝나가는데 저렇게 무계획으로 제네바에 남겠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동료 폴린은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자기소개서 안에 고칠 부분과 순서를 달리할 부분을 지적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을 새로이 제안했다.

‘cheerful and well balanced’.
‘cope well under pressure.’
‘친구들과 가족들은 저를 쾌활하고 또한 균형 있는 인물로 평합니다. 동료들은 저를 꽤 끈기가 있고, 강도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잘 헤쳐나간다고 평가합니다.’

흐뭇해서 미소가 흘러나왔다. 생각할수록 감격스러워서 뿌듯함에 마구 웃음이 나왔다. 실제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가 이같이 제안한 자기소개서의 문구라니 이건 정말 믿을만한 평판이지 않은가.

그 후 몇 주 뒤 결과가 나왔다. 인터뷰는 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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