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겪어내자
나는 늙은 인턴이었다. 우리 팀엔 석사 진학을 앞두고 있는 20대 초반의 인턴들이 있었다. 이들은 대학원 입학 직전 몇 달의 시간이 확보가 되어 국제기구 인턴십을 지원한 학부 졸업생이 있었다. 또 옆팀엔 외교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국제사회 경험 차원에서 인턴십을 하던 청년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꽤 나이 든 인턴이었다. 본격적인 구직을 위해 이 세계에 뛰어든 나란 존재는 하여간 참으로 막막하기 짝이 없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던 인턴십 면접에 합격을 했다. 하지만 그 감격도 찰나였다. 앞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더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기관에서는 내년 앞두고 있는 기후변화 컨퍼런스를 준비하기 위해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보통은 3개월, 혹은 최고 6개월 단위로 이루어지는 인턴십 자리를 두고 내게 자그마치 11개월 무급 인턴십을 요청했다. 순간 고민에 휩싸였다. 11개월이라니.
‘제네바에서 무려 11개월짜리 무급 인턴십을 무슨 수로 버틴단 말인가!’ 줄일 수 있는 모든 경비를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커피도 줄이고, 초콜릿도 줄이고, 맥주도 줄이자. 아, 여행은 어떻게 다니지? 일단 겪어내자 싶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계약서에는 경악할만한 한 가지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인턴십을 무사히 마쳐도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인턴십이 종료된 이후 최소 6개월 동안은 본 기관에서 고용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이 들어 해당 문구를 여러 차례 읽어보았다.
‘금지라니?’ 정말 그 뜻이 맞는 걸까.’ 기숙사 옆방의 마리암에게도 다시 문의를 했다. 마리암은 유엔 제네바 본부 아랍 지역 전문 지부에서 근무 중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고용이 불가능하다니?”
대답은 명확했다.
“맞아. 그런 인사 원칙이 있어. 그래서 편법을 쓰기도 하지. 인턴십을 마친 후에도 보스가 그 사람을 정말로 끈질기게 원한다면 몇 달 동안 백수 상태로 기다려서 이후 힘들게 성사시키거나 다른 꼼수를 써야 해. 하여간 요즘은 그것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지만.”
지금도 수백 명이 채우고 있는 국제기구 인턴십 자리는 그저 몇 개월 뒤 다른 젊은 피로 교체될 자리였던 것이다. 인사과에서는 내가 그 조항을 제대로 이해하고 동의했는지 면대면으로 다시 한번 확인을 하기까지 했다. ‘희망고문’을 애초에 차단했다. 유엔 국제기구 인턴십은 까다로운 조건부 기간제였다. 낙담하기 딱 좋은 형편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시기였다.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economic crises, recession, crash, downturn 같은 표현들이 수없이 반복되어 노출되던 시기였다. 있는 직원들도 정리 해고를 하고 있었고, 인턴을 직원으로 고용한다는 건 금지된 일이라고 하고, 위기, 불황, 추락, 붕괴, 폭락 - 끝없이 부정적인 현수막들이 눈 앞에 펄럭이니 이거 갑자기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환율은 요동쳤다.
그때 나는 심란한 마음을 뒤로하고 마음을 굳혔다. 난 내 걸음을 내딛겠다. go, 아니 크게 GO! 이 인턴십이 종국에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으나 반드시 반전의 순간을 노리겠다고. 금지된 원칙이 있다면 어떻게든 선회해야 한다고. 그래, 배수진을 치고 전진해온 내가 이제 와서 돌이킬 이유가 없다.
그리고 여기엔 몇 가지 뿌리치지 못할 조건이 있었다. 외국인인 내게 유일하게, 즉각적으로 스위스 체류증을 지원해 줄 자리는 국제기구 밖에 없었다. 체류증 없이 외국에 장기 거주를 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20대 후반에 새로 시작한 커리어, 많은 것을 뒤로한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모를 일이었다. 급여도 없고, 보장된 미래도 없이, 그렇게 빛깔만 좋고 명예스러운 국제기구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물가 비싸기로 전 세계 5위 안에 드는 스위스에서!
인턴십 첫 출근을 하기 전 나는 말할 수 없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기숙사에서 출발해 유엔 기구들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매일 출퇴근을 한다. 그러려면 아침저녁으로 트램을 2회 이상 타야 한다. 그렇다면 정기 교통권을 구입하는 방법이 좋겠지. 비용을 줄이고 시간도 아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일 텐데. 체감 물가가 매우 높은 제네바는 교통권도 비쌌다. 어떻게 결정할까. 한 달 정액권을 구입해서 매달 갱신할 것인가. 이 고민으로 나는 최소 3일은 말수가 줄어 땅에 코를 박고 다녔다. 어떡하지? 아, 어쩌면 좋지? 한화 90만 원의 무게는 내게 꼬박 3일간의 고민을 요구했다.
아아, 내게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거나, 의지의 문제이거나, 현실 감각의 문제이거나. 나는 어찌할 줄 모를 불안감을 껴안고 있었다. 11개월 뒤에 나는 어느 자리에 땅을 딛고 있을까, 무사히 11개월 인턴십을 마칠 수가 있기나 한 걸까, 통장에 가진 돈은 불과 4개월 버틸 예산밖에 없다. 이때 나는 다소 무모한 결정을 감행한다. 한화로 약 90만 원에 달하는 제네바 1년 교통권을 구매해버린다. 앞뒤를 재지 말자.
‘인턴십이 끝난 11개월 이후에도 나는 국제기구에 출근할 사람이다.’ 이처럼 밑도 끝도 없이 90만 원짜리 겜블링을 했다. 생활비가 모자라 쩔쩔매는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크고 비싼 암시를 걸었다. 11개월 이후 나의 모습에 관하여, 어느 자리에 가 닿아 있을지.
세계기상기구(WMO)에는 과학자와, 기상학자와 온갖 분야의 박사들이 가득했다. 오존을 공부한 박사, 기후변화를 공부한 박사,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물, 기후, 환경’ 이 세 가지를 주요 모토로 삼고 있는 국제기구에서 이들은 저마다의 ‘덕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근무하며 턱이 빠져라 감탄할 일은 매일같이 일어났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주요 쟁점들을 모조리 ‘기후와 환경’의 입장에서 풀어나가는 장면이 그야말로 스펙터클했다.
매일 아침 10시, 기후 프로그램 부서는 모든 스태프들이 모여 커피 브레이크를 함께 한다. 세계기상기구(WMO)의 자랑인 아름다운 제네바의 호수 풍경을 담고 있는 전망 좋은 카페테리아에서 우리는 정확히 30분간의 ‘소셜 커피’의 시간을 갖는다. 감사하게도 그 자리에 인턴들도 포함해 주어서 다양하고도 놀라운 대화를 함께 할 수 있었다. 팀에 들어가 보니 동료들은 일단 최소 학위가 ‘박사’였다. 그 자리에 참석하는 이들에게는 지켜야 하는 원칙이 한 가지 있었다. ‘업무 얘기 금지’.
매일 자원하여 한 사람이 차를 준비한다. 지위와 상관없이 순서가 돌아간다. 그날 아침 서빙할 사람이 공유 폴더에 본인의 이름을 표시하고 나머지 참석자들은 그날 마칠 차를 골라 표에 적어 넣었다. 레몬티, 홍차, 에스프레소 등.
나는 매일 마시는 메뉴가 같아서 다들 서빙하기 쉽다고 말했다. ‘카페 라테’다. 디렉터도 프로그래머도 동일한 방식으로 번갈아가며 인턴인 내게 차를 서빙했다. 아랍, 아프리카, 미대륙, 유럽, 아시아인이 모두 섞인 그 자리에서 나이와 인종과 신분에 상관없이 수평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실제 이들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된 것은 정말이지 한참 이후의 일이다.
문과생들로만 가득 편향된 사회에서 살던 내가 과학자들과 섞이기 시작하며 문화 충격의 쓰나미를 겪은 것은 과연 예상할만한 일이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죠?’ 하며 놀라워하는 나를 그들은 오히려 신기하게 여겼기 때문에 심심할 때마다 내 의견을 물어왔다. 감격스러웠다. 한낱 견습생에 불과한 내게 생각을 묻고 발언권을 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름의 논리로 나는 또박또박 대답하고, 또 질문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의견이 엇갈릴 때도 농담과 재치로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이들을 보며 그들의 현명한 대화법을 매일 배워나갔다.
과학자들은 수다쟁이들이었다. ‘음식 식재료와 기후’, ‘그날의 조도와 동물의 생존력’, ‘물 부족 현상과 지역 분쟁’, ‘바람이 부는 방향과 오바마가 당선될 가능성은?’ 대화의 소재가 무궁무진했다. 끝도 없고 다함도 없이 이과생들의 수다력은 문과생들 못지않았다.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동떨어져 있던 소재가 무한히 섞이고 쪼개지고 재구성되었다. 나는 그 테이블에서 이들의 시각과 몰입도에 주목했다.
그 무엇을 테이블 위에 가져다 놓아도 ‘과학적 분석’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탁월한 사람들의 특징인가? 나는 능동적 상상으로 이들의 장점을 흡수하려 애썼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이들의 모습이 기이한 현상처럼 보이기도, 또한 존경스러운 전문가의 장인적 태도로 느껴지기도 했다.
프로페셔널리즘이란 뭘까. 난 그것이 집중력이고 또한 태도이며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프로페셔널리즘은 어느 정도의 연출을 수반하기도 한다. 출근 첫날부터 지켰다. ‘내가 지금 보수도 없이 무료로 일하는 인턴일지언정 한 가지는 철저히 고수하자.’
그렇게 애썼던 원칙이 있다. ‘단정하게 다닐 것’ 최대한의 당당함을 ‘연출’ 하기 위해 매일 어깨가 직각으로 떨어지는 자켓을 입었다.
‘이곳의 일원으로서 어울리는 프레젠테이션을 보이자.’
동양인은 늘 작은 체구 때문에 오해를 받는다. 학생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게 팀원으로서 번듯하고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다. 컨퍼런스 기획팀은 각국 유엔 대표부 브리핑도 많고 저널리스트들을 만나야 할 일들도 많은데 이때마다 나는 입고 있던 자켓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 숄더’의 힘에 기댔다. 내게 정장 자켓이란 제복이자, 갑옷이었다. 어색하지 말고, 쭈뼛거리지 말고. 무엇보다 나는 우리 팀에서 보낸 대표자이다, 라는 태도로. 옷차림과 매너에서부터 전문성을 장착하자, 하는 마음으로.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인턴 동료 알리시아는 내게 한 마디를 건넸다. ‘Look the part, get the part!’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해서 다시 물어보니 자신의 감상까지 덧붙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의 옷차림을 보면서 감탄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Look the part’라는 뜻은 상황과 역할에 맞는 적절한 옷차림이나 스타일을 뜻한다면서 ‘appearance or style of dress appropriate to one's role or situation’ 결국엔 그것이 자기 몫을 챙겨가게 되는 장치로 발휘한다는 뜻이었다. 빙긋이 웃음이 나왔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나의 ‘연출’이 동료의 눈에 잘 포착되었다는 짐작에.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 티타임을 함께 하던 중이었다. 디렉터도 박사들도 여전히 날씨와 과학과 정치, 시사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옆자리에 있던 인턴 동료 알리시아에게 그의 시계를 가리키며 한 박사님이 말을 건넸다. “파텍 필립 Patek Philippe 차고 있네요. 나도 이거 롤렉스예요. 지난번에 중국 출장 갔을 때 50프랑 (한화 6만 원) 주고 샀어요. 오메가 시계도 하나 샀지요. 후후. 분침, 초침 아주 정확해요. 그것도 카피예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옆사람들은 파텍 필립 정품 사려면 내 차를 팔아야 한다는 둥, 파텍 필립은 스위스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들었기에 1년에 2분씩 시간이 뒤쳐지도록 설계가 되었다는 둥 이런저런 농담이 오갔다. 그때 알리시아가 대답했다. “엄마가 선물해 주신 시계예요. 저희 할아버지가 창업자시거든요.”
그렇다. 나와 함께 같은 사무실을 쓰는 24살의 인턴 알리시아는 파텍 필립 손목시계 정품을 왼쪽 손목에 차고 있었고 손꼽히는 스위스 럭셔리 브랜드 창업주의 외손녀였던 것이다! 난 이걸 왜 몰랐을까, 순간 이마를 탁 쳤다. 지난주에 이모를 따라 코피 아난 재단의 리셉션에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뿐 아니었다. 같이 티타임을 하면서 양파 껍질 벗기듯 서서히, 천천히, 하나씩 자연스럽게 알게 된 박사들의 학벌과 경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기본이 옥스퍼드 대학, 스탠퍼드 대학, 펜실베이니아 대학 학위 보유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 출신도 있었다. 그도 이미 놀랄 일이었지만, 이러한 내용이 티타임 소재로 드러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더욱 신기한 노릇이었다.
이렇게 ‘자기 과시’ 한번 없이 ‘기후와 환경’ 이야기만 주구장창 매일 꺼내놓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인턴십도 날이 갈수록 흥미로워졌다. 국제기구 인턴들 네트워크가 구성되었고, 특이하고 또한 욕심 많은 친구들을 새로 사귀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생활비를 줄이느라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서 출근했다.
때는 곧 겨울로 저물고 스위스의 퐁뒤 시즌이 시작되었다. 유럽의 겨울은 하여간 깜깜했다, 내게는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