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견디는 시간들, 그걸 꽉 채워야 한다는 숙명

참을성이라곤 젬병이지만

by Aeree Baik 애리백

유럽의 겨울은 참 어두컴컴하고 건조했다. 공기가 얼마나 메마른지 그 촉감은 피부가 이내 바삭거릴 정도였다. 아름답고 푸르던 제네바의 레만 호수는 매일같이 물결에 철썩이며 울적하고 어두운 겨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오후 4시만 되면 사위가 모조리 깜깜해졌다.


달이 뜬 밤, 춥다.


햇볕에도 과연 총량이 있던 건지 모를 일이었다. 여름내내 밤 10시까지도 청명하며 대낮같던 하늘이 마치 그 시간을 겨울동안 모두 도로 되찾아가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밤은 오후 4시에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출근길까지 깜깜했다. 나의 무급 국제기구 인턴십은 이 깜깜한 유럽의 겨울과 함께 하루하루 전진해 나갔다. 벌써 세 달째, 이 무명의 인턴에게도 ‘성과’라는 것을 만들 기회가 주어질까.

나의 보스, 디렉터인 닥터 니엔지는 탄자니아 출신의 박사였다. 청년 시절 그가 얼마나 강하고 명민했는지 금세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비로 영국의 최고 명문을 졸업한 그는 기초 과학을 전공한 인물이었다. 외형은 마치 당시의 짐바브웨 대통령과 흡사했다. 아주 오랫동안 독재를 한 그 대통령의 숨겨둔 이복동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외모가 정말 비슷했다. 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아예 삭발했다는 것이 차이점이겠으나.


짐바브웨 대통령, 최대한 웃는 얼굴을 찾느라 열심히 구글한 결과


무척이나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던 그는 안경 렌즈 넘어 부리부리한 눈동자가 항상 번뜩이고 있었다. 첫눈에도 꽤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종종 젊은 시절 본인이 얼마나 ‘개망나니’였는지를 회상하며 우리들과 농담을 주고 받았다. 얼굴을 모두 뒤덮을만큼 콧수염과 턱수염이 덥수룩 한 채로 거리를 활보하면 영락없는 노숙자가 따로 없었다고. ‘문명화’ 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은 어휴, 끔찍했다며.

자신이 한때 천둥벌거숭이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보스는 뭔가 다른 면모가 있다. 리더가 자기 스스로 신화가 되고자 허물을 모조리 숨기고 최대치로 포장하는 사람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니엔지 박사는 무엇보다 유머가 있었고, 포용력이 돋보였다. 일단 팀의 운용에서부터 달랐다. 자기 팀원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려 노력했다.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보스인 그가 나섰다. ‘꼬리 자르기’ 같은 것은 우리 팀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이 때문에 오랜 동료와 각을 세우는 일도 불사했다. 나는 그를 보며 ‘아프리카의 어른’은 저런 모습일까 생각해보곤 했다.


청년 니엔지의 모습을 상상하면, 래퍼 Ice Cube?


내가 그를 신뢰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요인은 사실 따로 있었다. 뭐랄까, 인턴이라는 신분에 개의치 않고 상대를 존중하는 느낌을 받았달까. 그는 ‘한낱’ 인턴인 나를 최대한 많은 곳에 노출시켰다. 결과적으로 나는 다양한 팀과 접촉해 회의를 구성하고, 상의를 하고, 의견을 내며 컨퍼런스 기획팀으로서 기구 내의 사람들과 안면을 트는 계기를 차츰 늘려나갈 수 있었다.


그는 팀원들을 느닷없이 회의 장소에 부르는 법이 없었다. 미리 일정을 공지해서 특정 사안에 대해 준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런 그의 경영 스타일은 내게 신뢰를 주었다. 마음 속에 기대감이 생겼다. 이 인턴십을 무사히 종료하면 그가 어떤식으로든 도움을 주지 않을까, 슬며시 희망이 생기기 시작할만큼.

니엔지 박사는 세계기후회의의 총책임을 맡은 인물이다. 내가 그의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그리고 나를 기용한 커뮤니케이션 팀이 과학잡지 기자 출신의 미국인을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 고용하면서 팀의 커버 영역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과학이나 기상학, 기후와 환경 문제에 완벽히 문외한이던 나는 매일같이 공부하는 마음으로 텍스트를 읽어야했다. 환경과 지구, 기온 현상과 생태, 이런 주제에 대한 관심은 내게 그동안 관심밖의 사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이 그러했다. 내가 갖고 있는 환경 분야 지식이 마치 비어있는 유리병처럼 깨끗했다. 제네바에 도착하고 나서 NGO에 첫출근을 했을 당시, 매일같이 이어지던 지긋지긋한 ‘날씨 얘기’에 고개를 몹시 흔들던 나였다. ‘이노무 날씨 얘기는 대체 언제까지 할 건가!’하며 혀를 내두르던 사람이 ‘세계기상기구’ 인턴십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내 앞가림이 중요하지, 뭘. 내가 지금 북극의 펭귄들 걱정하게 생겼냐? 걔네 피부를 봐라, 내 피부보다 더 매끈하다?’


펭귄들, 왜 신났니?


내게 늘 화두가 되었던 주제는 ‘사람, 생업, 생계’ 이쯤이었다.

어딘가에서 목숨을 건 도시락 폭탄이 터져도 전차 운전수는 그 순간에도 전차를 운행한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강물이 졸아 들어도 나는 전차 운전수로서 내 인생을 이끌었다. 북극곰의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알래스카의 연어가 높거나 낮아지는 수온 때문에 몰살해도 일정 관심을 주지 않았다. 천혜의 자연에서 동물들이 멸종해도 아무렴, 끄떡이 없었지. 그냥, 안중에 없었다.
‘최저생계비로 한 달 살림을 겨우 살던 가난뱅이가 북극곰 걱정을 하게 생겼냐?’

그러던 중 세계기후회의 팀에 들어가게 될 줄이야, 줄이야,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대로만 살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도 해도! 이런 요망한 어느 노래처럼 말이다. 설렘이 더 클까 두려움이 더 클까, 이런 공상에 잠기기 전에 얼른 정신을 추스려야했다. 그렇게 나는 ‘나라는 동물’의 생존을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신세가 되었다. 환경과 자연의 문제에 대해 벼락치기 공부를 시작해야했다. 나의 관심사 안에 들지 못했던 환경과 물, 이상 기온 등의 문제가 내 생업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북극곰아,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는 북극곰과 한 빙하를 같이 탔다.


각 세션마다 책임자가 있고 컨퍼런스 진행팀은 또 다른 전문가팀이 맡고 있었다. 프로토콜부터 로지스틱 전반을 지휘하고 대통령급 인사 초청 의전을 맡는 팀이었다. 커뮤니케이션 팀에서는 그 팀에서 기용한 나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과 언론 홍보와 관련한 일감을 몰아주었다. 대형 컨퍼런스는 언론 홍보가 중요하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는 매일같이 내게 자신이 작성한 ‘보도자료 감수’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미국에서 과학잡지 기자로 있던 리사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그것도 ‘보도자료’를 검토하는 일을 해야 하다니 앞이 깜깜했다.

‘아니, 미국 아이비 리그 출신인 리사가 쓴 영문 보도자료를 앞에 놓고 내가 문법을 지적할 거야, 어순을 지적할 거야 뭐야?’
그랬다. 이건 나의 능력밖의 일이라는 게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입술을 꼭 깨물고 표정 관리를 하며 대답했다. “오케이, 한 번 해볼게요.” 하고 리사의 보도자료 초안을 받아왔다. 종이를 받아오는 길에 내 사무실로 돌아오는 중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오며 심호흡을 조금 해야했다. 엄두가 나지 않아서.


세계기상기구는 건물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다. 계단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Jardin Botanic이라는 거대한 공원과 식물원이 보인다. 초겨울이라 나뭇잎이 다 떨어져서 얇디얇은 가지만 쭉 쭉 뻗어있는 춥고 아득하고 꽤 쓸쓸해 보이는 저 아름드리 나무들에 대고 한바탕 울고 싶어졌다.
‘얘들아, 너희들도 막막하니? 지금 나만큼?’


공원의 나무에 대고 소리친다.



‘보도자료’란 전문가의 요점 정리를 기자들이 기사로 쓸 수 있도록 쉽게 풀고, 다시 재구성한 글이다.

첫직장이 위치해 있던 종로 5가로 출퇴근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연지동이었다. <한국기독교 연합회관> 15층의 거대한 복합건물이던 그곳은 긴 복도식으로 되어 있어 양옆으로 수많은 회사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웅진 정수기 영업사무실이 있었던가, 언젠가는 요식업계 사람들이 식품위생교육을 위해 수백명 모이는 날도 있었다. 그때 나는 잡지출판사에 근무하며 무수히 많은 보도자료를 받아보기도 하고 써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사무실 복도 바로 맞은 편에는 <녹색연합>이 있었다. 내가 환경이나 생태 운동엔 무관심 일관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좋았다. <녹색연합>이 복도 맞은 편의 우리 사무실에 매월 기탁했던 소식지였다,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

미국의 과학잡지 기자 출신인 리사가 작성한 보도자료 초안을 읽어보며 나도 할 말이 생겼다. “두번째 문단을 첫번째로 옮겨보는 게 어떨까요? 이러한 예시가 독자에게 훨씬 생생하게 와닿죠.”
환경 문제와 과학적 지식에 문외한이기에 제안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실용적인 글을 읽을 때 특히 첫번째 문단에서 ‘내’가 등장해야 한다고. 본인과의 접점을 이들이 단숨에 발견해야 한다. 과학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세계기상기구에서 각 국가의 최고정책결정자들을 모아 놓고 컨퍼런스를 여는 중차대한 이유를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설득해야 할테니까. 나같은 일반 대중에게 와닿는 사례를, 시민의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꼭지들을 늦지 않게 얼른 던져 주어야 한다고.

‘작은 것이 아름다운 거 아닌가?’

이를테면 이런 예시이다. 가뭄으로 숲이 말라 누군가 흘린 작은 불씨에 순식간에 산불이 나면 그 지역의 관광 산업 종사자들은 몇년동안 배를 골아야 한다. 산업은 도산을 하고 개인은 파산한다. 인도의 경우 몇년도에 발생한 A의 경우가 있었고 손실이 000$에 육박했다고 추산한다. 이들의 실업급여는 누가 지불할까.


큰 홍수가 났던 중국의 B 사례가 있었다. 이때는 교통 산업에도 대단한 타격이다. 문화재가 산사태에 덮히고 길이 무너진 것을 물론이고 수송할 관광객이 없기에 비행기 운항이 줄었다. 곧이어 공항 직원들이 구조조정을 당한 경우가 있다.
대기 오염으로 인한 질병이 번지는 현상은 보건에 직격탄이다.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 환자들이 급히 증가하면서 국가기관에서 관장하는 건강 보험으로는 과포화 상태에 이르는 시점이 빨라진다.


심슨 가족 중 제일 똑똑한 리사 심슨


결과적으로 리사의 영어 문장을 나는 전혀 건드리지 못 했다. 그 대신 구조를 말했다. 내 역할은 따로 있었다. 지구촌, 세계 환경, 이렇게 스케일 크고 거창한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작은 개인, 일상, 줌인이라는 초점으로 오히려 스케일을 좁히는 작업. 보도자료 초안을 보여주며 그가 원한 것은 대중적인 눈이 원하는 스토리였다. 현시점에서 기후 변화의 과학적 변증이 중요하거나 자연 재해 현상을 과학적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 주안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본다면 이건 읽는 사람의 ‘코를 꿰는’ 글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결국 국가의 정책은 개인의 일상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대기를 채운 공기의 질이 나빠지면 가정마다 병원가는 식구들이 늘어가고 결국 공기청정기를 구입해야 한다. 부득이한 지출이 생기고, 외출 빈도수에 영향을 준다.

‘이것은 비단 개체수가 줄고 있는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당신이라는 사람이 오늘 겪고 있는 실생활의 문제점이다’라는 주된 메시지를 매력적인 스토리로 꿰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라는. 나는 이같은 의견을 내고 그 작업을 거들 수 있었다.

결국엔 나라는 개인에게 벌어진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이 일을 하며 나의 관심사와 장기간의 화두가 되었던 주제, ‘사람, 생업, 생계’를 결국에는 ‘환경과 기후 변화’라는 테마에 이어 놓을 수 있게 되었지 않은가. 내게도 큰 배움이 되었다. 그동안 고생한 북극곰과 펭귄에게 고마울 일이다.

노래 가사 마냥 설렘과 두려움으로 인턴십의 나날들은 이렇게 계속 되었다. 작은 성취들과 동시에 심리적 좌절은 늘 곁에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고 했다. 기숙사의 친구들은 가족들과 명절을 지내기 위해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사 모으고 있었다. 곧이어 친구들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스위스 인근 국가에 있는 자신의 본가에 다녀오기 위해 하나 둘씩 짐을 싸고 있었다.


나처럼 기숙사에 홀로 기거하는 무급의 인턴에게 주어진 크리스마스 휴가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도 같은 참극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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