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홀로 텅 빈 기숙사에서 크리스마스를?

유럽의 명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by Aeree Baik 애리백

추석 당일 아침에 신촌 거리를 걸은 적이 있다. 신촌 사거리에서 연세대학교의 정문까지, 그토록 생소한 느낌이란. 참 당혹스러웠다. 가장 번잡하기로 유명한 그 거리였다. 만일 평일 저녁 시간대였다면 식당과 술집과 노래방과 목소리 큰 취객들과, 싸우는 소리와 배달 오토바이의 소음이 모두 섞여 옆사람에게 내 목소리를 전달하려면 데시벨을 1.5배 올려도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였을텐데.

추석 당일 아침의 그 거리는 고양이의 발자국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모두들 묵념을 하고 있는가 보다, 싶을 정도였다. 색채가 없어진 고요한 길이었다. 어쩌다 행인을 마주치면 어색하게 눈인사를 할 정도였다. 모두들 조용히 사라져 버린 골목이었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란 가족이 연말에 모두 모여 만찬을 함께 하는 ‘명절’이다. 상을 크게 차려 앞에 두고 절을 하거나 산더미 같은 전을 부치지는 않지만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받으며 거창한 명절을 대대적으로 지낸다. 같은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먹고 마시고 또 대화를 하며. 크리스마스는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공식 공휴일이고 크리스마스 직전 이틀부터 연말까지 회사는 아예 ’셧다운’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차였다.

편의점도 없고, 분식점도 없는 제네바에서 크리스마스 명절을 홀로 보낸다는 건 꽤 심란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깜깜한 밤에 불을 끈 채로 조용히 누워있으면 느낄 수 있는 그 정적, 바스락거리는 이불 소리가 크게 느껴질 정도의 고요함, 그걸 최소 이틀 동안 겪어야 한다. 예쁜 쇼핑가도, 좋아하는 미술관의 겨울 정원도, 심심한 카페들도, 모두 이틀간 꽁꽁 문을 닫는다. 거리엔 검은 까마귀만 푸드덕 날아다니다 차가운 분수 옆에서 물을 마신다. 까마귀들은 저렇게 사계절 내내 까맣더라. 저 까마귀들이 사람 없는 거리를 온통 차지한다니. 마음이 벌써 서늘했다.


들어갈 카페도, 잠시 머물 미술관도 없다. 모두 문을 닫으니까. 쇼핑가의 화려한 조명만 거리에 켜 둔 채 크리스마스 당일을 그렇게 텅 비워놓는다.


눈이 내린 제네바 전경


모두 떠난다. 이 모두에겐 근처 어딘가에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혹은 추운 겨울에 휴양지를 다녀올 만큼 넉넉한 예산이 있거나. 무급의 국제기구 인턴십을 하고 있는 내게 휴가는 사치였다. 풍요로운 식탁을 창문 밖에서 바라보는 성냥팔이 소녀의 마음이 이랬을까. 내게만은 특히 고요할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2주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를 친구와 프랑스 파리에서 보냈고, 곧장 해저 기차를 타고 영국 런던으로 넘어가 송구영신을 런던의 클럽에서 보낸 내가. 그런 내가 말이다. 올해엔 까마귀와 함께 해야 한다니. (까악!)

급여가 없는 인턴십을 하고 있는 내겐 잠깐의 외출 비용도 부담이 된다. 혹시 퇴근 후 아르바이트할만한 자리가 없을지 제네바 대학의 게시판을 살펴보곤 했다. 평소에는 점심 도시락을 싸 갖고 다녔다. 퇴근하는 길에는 저녁 7시에 일제히 마트와 상점들이 문을 닫기 30분 전에 부랴부랴 도착해 유통기한이 오늘 당일인 50% 세일 식품들을 사 왔다. 그 소중한 식재료들을 라면 박스 반절 크기만 한 작은 냉장고에 차곡차곡 쟁여놓았다.

올해 겨울은 여행도, 파티도, 쇼핑도, 모임도 없이 긴축 재정을 해야 했다. 기숙사 비용과 식비를 빼면 사실상 지출이 거의 없었다. 통신비를 줄이기 위해 충전식 요금제를 쓰고 있는 핸드폰에는 충전 금액이 5프랑도 미처 채워 놓지 않았는데, 한화로 6천 원 겨우 되는 그 통화량으로 한 달을 그럭저럭 썼다. 그 또한 할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마음이 미래로부터 재촉을 받았다. 내가 가진 예산으로 다음 해 봄까지 버틸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불투명한 미래야, 되도록 천천히 오렴. 아직은 아니야.’ 유럽은 겨울이 길다.

작년 연말 친구의 친구들과 클럽에 가기 위해 런던에서 급하게 구입한 미니드레스의 반짝이들은 아직 튼튼하게 붙어있었다.

기숙사엔 가족들을 만나러 본가에 다녀올 친구들이 꼼꼼하게 짐을 싸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가방에 빨랫감을 잔뜩 쑤셔 넣기도 했다. 얼굴 표정을 보니 다들 신이 나 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얼마나 살뜰히 모았는지 모두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호텔에서 인턴십을 하는 러시아 친구 한 명만 크리스마스에 기숙사에 남아 있는다고 전해왔다.
‘이 와중에 난 출근할 곳도 없네. 왜냐면 회사도 휴무거든.’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 내게는 늘 기대와 소소한 즐거움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그런 거였다. 추석 당일 혼자 걸었던 신촌 거리가 생각이 났다. 색채가 없어진 고요한 겨울의 그런 날을 통과해야 하는 조금 당황스러운 마음.


Samedi du partage 토요일에 가족들을 위한 장을 보면서 구호가 필요한 이웃을 위해 몇개의 식료품을 추가로 더 구입, 종이 가방에 넣어 전달하여 기부하는 방식


그날 기숙사 공동 주방에는 커다란 바구니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Samedi du partage>에서 보내온 식료품들이라고 했다. ‘나눔의 토요일’ 바구니 안에는 밀가루와 계란, 설탕, 소금, 온갖 통조림과 투명한 포장지에 들어있는 포장된 파스타 면들이 잔뜩 있었다. 감자와 양파도 대용량 큰 봉투에 들어있었다. 마침 주방에서 저녁을 요리하고 있었던 프랑스 친구가 뒤를 돌아 내 시선을 확인하더니 먼저 안내해 주었다.
“원하는 거 있으면 가져가도 돼. 불쌍한 이웃에게 나눠줄 물건을 보내온 거거든. 우리 같은 사람들 말이야.” 웃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그를 보니 하나쯤 가져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요리하다 말고 바구니에서 뒤적거려 딱 한 개의 양파를 꺼내갔다.

‘나도 뭐 하나 챙겨갈까?’ 아무래도 감자 요리는 자신이 없어서 봉투를 만지작거리다 결국 내려놓았다. 다시금 신중하게 고민한 뒤 참치 통조림 한 개와 스파게티면을 골랐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면 될 것 같았다. 면을 삶고 참치와 볼로네즈 소스로 파스타를 만들면 되겠지.
‘긴급 구호를 위해 이웃들이 장을 봐서 채워준 저 바구니가 내 크리스마스 만찬을 대접해 주려나보다.’

그 주 주말이었다. 레미와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치즈 퐁뒤를 만들어 먹기로 한 토요일 저녁이었다. 예쁜 커다란 냄비에 조각 치즈를 잔뜩 붓고 화이트 와인과 섞어가며 커다란 나무 주걱을 휘휘 저어 돌려 치즈를 녹이고 있었다. 고소한 향이 흘러오고 있었다. 같이 곁들여 먹기 위해 누군가는 오이 피클을 꺼내고 있었고, 누군가는 빵칼로 바게트를 자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기숙사 친구 레미가 내게 무심히 얘기를 꺼냈다. 입만 열면 노래 가사를 곁들여 농담을 하는 그였다.


치즈 퐁뒤, 정말 맛있다!


애리, 스트라스부르크는 언제 갈 거야? 그동안 매주 주말마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더니 스트라스부르크는 나랑 가려고 아껴둔 거지? 이번 크리스마스 때 우리 집에 가자. 우리 집에서 스트라스부르크까지 한 시간밖에 안 걸려. 거기가 얼마나 멋지냐면...”
“응?!? 너희 본가에 같이 가자고? 이번 크리스마스에? 가족들 다 모일 텐데? 너희 부모님이 오해하시면 어떡해? 갑자기 아들이 동양 여자를 데려왔다고 놀라지 않으실까?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걱정 마. 오해하시지 않도록 미리 말씀드릴게. 그리고 말이야.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닌 헤난도 2년 전 크리스마스에 우리집에 같이 갔었어. 걔도 동양 남자인데 아무도 안 놀랐어. 아무도 우리 사이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음? 그.. 그럼 그럴까?”


포크에 빵을 깊숙이 찔러 넣어 뜨거워진 치즈 속에 풍덩 넣고는 돌돌 돌렸다. 곧 치즈를 듬뿍 찍어 올려 후후 불어 입에 넣었다. 짭짤하고 쫀득쫀득했다. 통후추를 접시 위에 갈아 뿌려 놓으며 생각했다. ‘진짜 가볼까? 따라갈까?’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는 2주간 레미 단속을 하느라 하루에 한 번씩 그렇게 매일 보채가며 확인을 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크리스마스 때 친구 데려간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우리 아무 사이 아니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정말 괜찮으시대?”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내가 동양 여자라고?”
레미는 한결같이 대답했다.
응, 말씀드렸어. 다 좋으시대.

그리하여 나는 레미를 따라 알퐁스 도데의 소설에 등장하는, 프랑스 알사스에 가게 되었다. 텅텅 빈 기숙사를 홀로 지킬 친구를 그냥 둘 수 없어서, 자신의 본가에 초대해 준 착한 친구 덕에. 제네바를 떠난 기차는 칙칙폭폭 스위스의 마을들을 통과해 북쪽을 향해 달렸다. 도중에 한 차례 안내 방송 언어가 바뀌었다. 불어에서 독어로. 스위스 바젤에 도착한 것이다. 자동차로 40분쯤 되는 프랑스 알사스로 우리를 데려가시려고 레미의 아빠 장 끌로드가 국경을 넘어 스위스 바젤 기차역 앞에 마중을 나와계셨다.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미의 아버지 장 끌로드는 영어를 전혀 못 하셨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나는 불어로만 의사소통을 할 생각에 앞이 캄캄했지만 이렇게 감사하고도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그날 나는 레미의 어머니 미헤유, 그 집 강아지 우시, 간호사인 누나 라셸, 형-형수님, 9살, 11살 조카 둘, 형수님의 부모님, 경찰 공무원인 형수님의 여동생과 그의 약혼자, 사돈댁의 뚱뚱한 고양이까지 모두 만났다. 고양이가 얼마나 토실토실하던지.



알사스 시골 마을의 정원에는 일제히 크리스마스 트리 조명과 옥상을 오르는 산타클로스 장식으로 가득했다. 장 끌로드는 운전을 하며 나를 위해 골목골목을 뱅글뱅글 돌아 동네를 구경시켜주었다. 집집마다 정원에 가득히 정성스럽게 장식해 놓은 환한 조명과 사슴 루돌프가 끌고 있는 썰매를 보여주었다. 근사했다.

디즈니랜드에 갈 필요가 전혀 없다면서 내게 독일어 악센트가 매우 강한 불어로 많은 것을 설명해 주셨지만 나는 10%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알사스 지역은 프랑스와 독일 양쪽 나라의 국경과 매우 가까이 인접해 있고 세계대전을 거치며 독일 땅이었던 곳이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이웃 사람들 이름이 독일식 이름이 많다.


3박 4일 내내 프랑스식으로 먹고, 마시고, 낮잠을 자고, 수십 가지 종류의 치즈와 꿀을 맛보며 알사스의 달콤한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크게 웃고 떠들고 게임을 하고 서로를 위해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뜯어보았다. 게다가, 레미의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는 자리에서 나를 위한 선물까지 세심하게 준비해 놓으셨다. 가족들 간의 자리에서 나 홀로 배제된 느낌을 받지 않도록.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집이었다. 레미의 가족도, 이웃도, 사돈댁도 나를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사뭇 어리둥절했다. ‘넌 누구지? 대체 왜 여기에 왔지?’ 이런 눈길이 전혀 없을 수가 있을까. 없었다. 진심으로. 피부색도, 생김도 전혀 다른 나를 이방인으로 간주하고 어색하게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들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 따뜻한 식사를 함께 하고 떠들며 마음껏 어울리고, 농담을 해가며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4일간 충만하게 채워왔다.


정원 크리스마스 조명


4일간 풍성한 휴일을 보내고 제네바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길, 레미의 어머니 미헤유는 나를 보며 저쪽 멀리 눈이 뽀얗게 덮인 숲을 가리켰다. 강 건너 저 멀리 보이는 숲이 독일의 검은 숲 black forest이라고. 다음에 여름날 알사스에 오면 함께 검은 숲 산책길을 가자고 하셨다.

이방인의 등장을 자연스럽게 맞아준 따뜻한 분들 덕분에 홀로 기숙사에서 지낼 뻔한 이 며칠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 채워졌다. 절인 양배추와 맛있는 돼지고기가 듬뿍 올라간 미헤유의 슈크루트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알사스 음식 슈크루트 Choucroute


이 경험은 내게 무슨 교훈을 남겼을까, 나는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이 기억을 회상한다. 이웃에게 건널 수 있는 ‘온유함’에 대해서. 마음속 동화처럼 깊게 각인된 참 온화했던 경험이다.


이후 몇 년 뒤 여름, 나는 이곳에 다시 와 레미의 엄마 미헤유와 강아지 우시와 함께 독일의 검은 숲을 산책했다. 개울을 건너고 점심 샌드위치를 꺼내 먹으며 나뭇잎들이 반짝이고 살짝 바람이 불던 그곳의 여름날, 이들과 몇 해 전 함께한 크리스마스를 흐뭇하게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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