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버튼이 눌린 사람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열등감과 원망으로 가득찰 때

by Aeree Baik 애리백

성탄을 프랑스 가정에서 따뜻하게 보내고 온 기억도 잠시, 바야흐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새해가 밝아오는 것이 내게는 썩 반갑지가 않았다. 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안 되는 일도 없고. 인턴십의 시간은 흘러가는데 구직을 위해 구체적으로 진척이 되는 것은 눈에 선명히 보이지 않으니, 딱 상심하기 좋은 계절이었다. 컨퍼런스팀은 프로그램 기획과 세계 정상들을 초청하는 데에 박차를 가했고 팀은 다이나믹했다. 그 다이나믹함이 과연 나의 미래와 연관이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의심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새로운 해는 일단 시작되었다.

휴일을 보내고 오니 우리팀의 수장 니엔지 박사는 자동차 딜러를 만나고 왔다며 자동차 카탈로그를 펼쳐보고 있었다. 그는 옆에 앉아 있는 윌리엄에게 묻기 시작했다. “탄자니아에서 운전하기에는 이 차가 낫겠나?” 케냐 사람인 윌리엄은 이런 저런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게 무슨 소리지? 니엔지 박사는 왜 탄자니아에서 운전을 할 생각을 하고 있을까.'
뭔가 이상했다.
‘인턴십이 끝나가면 내가 이 곳에 정착하기 위해 뭔가 명확한 도움을 줄거라 기대했는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 있는 모양이다.’
얼른 사정을 알아보기로 했다.

같은 층의 우리팀 베테랑 어시스턴트가 아마도 그간의 좌초지종을 꿰뚫고 있을 것 같았다. 니엔지 박사의 운신에 무슨 변화라도 있는지. 곧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각 전해진 대답 때문에 나는 다리가 풀렸다. 니엔지 박사는 우리 컨퍼런스가 끝나고 정확히 한 달 뒤에 정년퇴임을 한다고. 그가 가진 모든 리소스를 부어 넣으며 이 기관에서 마지막으로 전념할 대형 프로젝트가 이 기후변화 컨퍼런스이고, 이후 그는 가족과 함께 본국으로 즉시 이주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이제야 알게되었다.


님아, 그 차를 사지마오. (제네바 모터쇼 전경)


‘이런 맙소사!’
니엔지 박사가 내 미래를 설계해 줄만큼 오랫동안 일을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가 왜 했을까!

그러게 왜, 나는 혼자 헛된 희망을 품었을까. 인사과에서 내게 신신당부하고 서류에 서명까지 하라고 했던 유엔 인턴십 조항을 홀로 묵살했다. 그리고는 허락도 없이 혼자 마음 속으로 희망이라는 씨앗을 키우고 가상의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인턴십이 종료해도 나를 고용하지 않겠다고, 내가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답을 받고 서명을 받고 단단히 약속까지 하라고 요구한 그 조항을 내 마음대로 폐기하고, 제멋대로 소망을 가득 키워가고 있었다. 내가 일을 성실히 하면 그 모습에 감탄한 니엔지 박사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소개해 주지 않을까. 하다못해 추천서라도 써 주지 않을까.

그림을 그리다가 소중한 물감을 한꺼번에 스케치북 위에 훅 쏟아버린 느낌이었다. 허무했다. 부단히 애썼던 마음이 거절당한 듯 했다. 순간 감정이 낭비되고 있었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난 그야말로 현재 폭발 직전이었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 무작정 기대하던 마음이 장애물을 만난 것 같았다.

뒤늦게 진단해보니 위험을 알리는 징조가 있었다. JPO를 하고 있던 지인이 일전에 내게 여러차례 주의를 주었었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 인턴십은 결코 고용인이 된 것이 아니고, 유엔의 직원이 된 것도 아니라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게 언질을 해주었을 때 나는 그의 말을 단칼에 무시했다. ‘유엔이라는 사회에 들어와서 뱃지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아무 의미도 아니라고?’ 나는 국제기구 이메일을 쓰고 있고, 출입증을 받았다는 사실에 한껏 도취 되어 현실을 자르고, 붙여가며, 마음껏 푸른 하늘빛으로 편집하고 있었다. 니엔지 박사가 퇴임 후의 제2의 삶을 '룰루랄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가 새로 구입하려는 SUV 자동차를 향해 분노가 솟아 올랐다.


2017 제네바 모터쇼 전경


같은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는 인턴 알리시아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놓고 골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스위스 시계 장인이 만들기로 명성이 드높은 럭셔리 시계 브랜드 창업주의 외손녀이다. 알리시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나 남미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미국 플로리다에서 십대 시절을 보내고 대학 학부를 졸업했다. 무려 3개의 국적을 갖고 있었고 친할머니의 국적을 따라 곧 이탈리아 국적도 취득할 예정이라고 했다. 친가는 외교관 집안이었다. 즉, 세 개의 유엔 공식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친구였다. 게다가 이탈리어까지.

이런 인물들이 회사에 층층마다 그저 가득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집안의 현실적이지 않은 능력을 갖춘 인물들을 회의 장소에서 또는 카페테리아에서 흔히 상대할 수 있었다. 보잘 것 없는 프로파일을 간직한채 이 자리에 앉아 영어도 그럭저럭, 불어는 거의 아기 수준으로 불과 몇마디 구사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빼어난 인간이 되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 곳은 나에게 어울리는 곳일까?



울버린이 깨어나다.


월등한 사람들을 매일 상대하다보니 슬며시 내 안의 울버린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을 때가 가장 적기이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내 안에 담겨있던 열등감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나의 초라한 능력을 스스로 확인하고 자격지심을 느꼈다.

제대로 잘 처리하고 있는지 나의 노트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내가 못 알아듣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상대방은 이야기를 계속해왔다. 업무와 관련한 내용이니 내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마냥 숨길 수도 없었다. 인턴십을 나보다 먼저 시작한 알리시아는 많은 것에서 앞서갔다. 똑똑한 알리시아는 잘 따라가는데 난 왜 이렇게 헤매는 걸까. 수습 직원들 앞에서 배경 설명 없이 업무 분장하는 모든 선배들은 반성해야 한다. 당신 때문에 수습 사원은 오늘도 자괴감의 바다를 헤매고 있다고!

무수한 사건들은 경고 사인도 없이 발생한다. 이같은 순간에는 심호흡도 소용이 없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가 안 된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치고,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이러한 순차가 없어서 막바로 겪는 일들이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가 특히 그렇다. 한 사람을 앞에 두고 모든 이들이 별안간 불어로 대화 언어를 바꾸기 시작할 때. 도저히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내가 감당하고 스스로 수습해야 한다. 이때 자괴감은 극도로 강한 스매싱을 친다. <피구왕 통키>가 던지는 불꽃슛처럼.


이들이 대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정확히 1인만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당혹감이 누적된다. 동료들이 죄다 꼴보기 싫어진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더욱 답답하다.

국제 기구에서 근무하는 주변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 경험이 많았다. 어릴 적에 주재원 아버지를 따라 스페인어 문화권에서 거주했다거나, 영국과 호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한국에 들어와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거나. 지인은 아버지가 어느 나라의 대사로 퇴임을 하셨다고 했다. 선교사의 자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완벽한 ‘한국 토종’이잖아. 무슨 수로 몇개 국어를 소화해?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고 아버지가 영국인이었으면 좀 좋아?

한번 버튼이 눌려버리니 자꾸 과거로 돌아가게 되었다. 회귀의 속도가 폭주했다. '왜 그때' 부모님은 나를 조기 유학을 보내주지 않았을까. 분명히 기회가 있었는데. 자식에게 요만큼도 투자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기대치는 왜 턱없이 높은 건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왜 그때' 내가 재수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귀담아 듣지도 않았지. 갑자기 억울함이 쏟아져 나와 시간은 끝없이 거슬러 올라갔다. 무려 일곱살 때의 기억까지 붙들고 억울함을 곱씹게 되었다.

'왜 그때.'를 거듭하여 씹으며 열등감이 매일같이 폭발했다. 한번 버튼이 눌린 사람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제네바의 겨울은 깜깜했고, 주변에는 잘난 사람들만 가득했다. 왜 나는 저만큼 되지 못 했을까. 유학을 다녀온 그 친구는 한국에 돌아와서 뭘하고 있을까, 머릿 속에는 10년 전의 친구들이 소환되었고 그 친구들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혼자서 분노하기에는 무언가 충분치가 않았다.

내 안의 울버린은 공격성이 제법 강했다. 당시 국방부에서 제네바에 파견을 나와 국제 기구에 출입하는 공무원이 계셨는데, 어느 날은 이분이 나의 타겟이 되었다. 엉뚱한 사람을 붙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자녀분이 미국에서 학업을 하고 있다고 하셨죠? 국가에서 교육비를 받아 국제학교를 졸업하고 남의 나라에서 수 억을 쏟아부으며 공부를 했으면 최소한 그만큼의 비용은 회수하고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졸업 후에 한국 기업에 입사를 하려고 하죠? 미국에서 유학 했으면서 순수하게 한국 토종들이랑 입사 경쟁을 하겠다는 건 부당한 거 아닌가요?”
“네, 그래서 우리 아들더러 미국에서 취직하라고 했어요.”
(나: 상대가 너무 순순히 동의하니 할 말 없음)


울버린아, 칼을 도로 넣어라.



어느날 저녁, 이렇게 못난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기숙사 문을 열고 밖을 나왔다. 감당이 어려웠다. 시계는 자꾸 과거로 되돌아 가고 원망의 마음은 폭죽처럼 튀어 올랐다. 걸었다. 마치 사고라도 칠 것 같아서. 헤드폰을 끼고 인적이 드문 공원으로 갔다. 소리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철봉에 매달려 고함을 쳤다. 길을 걸으며 중얼중얼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미친 게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더이상 미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거였다고! 다시 소리를 크게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봐도 소용 없는 일이었다. 뜨거웠던 속이 조금은 시원해졌지만 내 안의 ‘못난놈’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약속이 있어서 지인과 함께 모임 장소로 걸어가던 참에 내 얘기를 듣던 지인은 별안간 나를 향해 휙 고개를 돌리더니 내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남들에 대해 말이 많아! 그냥 그런가 보다 해!”
놀라서 대답이 안 나왔다. 평소에 한번도 그런 적이 없던 분이 길 한 가운데에서 크게 언성을 높여서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혼쭐이 났다. 충격 요법이었나. 이상하게도 그 말이 뇌리에 머물렀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라고!’ 내 마음 속의 지옥은 거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질투와 시샘, 선망. 그게 열등감과 원망을 키웠다. 가만 보면 열등감은 늘 비교대상이 있다. 그리고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열등한 나' 자신을 비하하고 괴롭힌다. 괴롭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내리누르는 것이다. 화분에 물을 주지 않아 잎파리가 온통 시들거리게 되는 그런 과정이다. 이것은 삶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버릇’이다.

그가 했던 발언이 생각이 났다. 사람들의 성공 후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패턴이 본인은 참으로 불편하다고. '남들이 놀 때 나는 공부했다. 남들이 외식하고 해외여행 다닐 때 나는 허리를 졸라매 돈을 아끼고 재산을 모았다. 남들이 7시간 잘 때 나는 3시간만 자며 미래를 준비했다.' 류의 언설에 그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고요히 생각을 정돈해야 했다. 모든 이들에게는 자신만의 고민과 트라우마가 있고,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는 법이다. 그 사실을 묵살하고 이들의 근사한 모습만 선망하고, 내 자신의 열등감의 촉매제로 사용했다니. 그 무엇도 건강한 방법이 아니었다. '남들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동일선에 놓고 비교하며 우울해 하거나, 혹은 우월감을 즐기지는 말자.

다행인 점은 있었다. ‘버릇’은 고치면 되는 거니까. 결단이 필요했다. 일단 부정적인 버릇을 고치기로 결심했다. 남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기로. 이러쿵저러쿵 미주알고주알, 내 입에 오르는 남의 이야기들을 전부 폐기하기로 했다.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지도 않고 두번 반복하지 않으니 더이상 곱씹을 내용도 없다. 대신 배울만한 일들을 포착하면, 좋은 점은 기억해 두었다가 내게 적용시켜보는 것으로 하자.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줄이니 그들의 삶에 대해 무작정 상상하고 부러워하는 것도 줄어들었다. 즉 온전한 내 삶을 비로소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여타의 집중할 일이 더 없으니까. 존경할만한 성취를 한 인물들을 보면 장점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어떻게 해냈을까. 좋은점만 취하며 나 자신의 에너지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상대를 볼 때 그에게서 배우고 싶은 부분에 주안점을 두게 되었다. 단점은 반면교사로. 이렇듯 관점을 달리하니 불지옥에서 풀려난 기분이었다.


천재들에게도 고민이 있었겠지.


천재 아인슈타인도 고충이 있었겠지, 엄청난 작곡가 베토벤도 아픔이 있었겠지. 내 주변인들도 그렇게 보자. 아인슈타인이나 베토벤처럼, 이들도 나와 상관없이 열심히 사는 동떨어진 제3자들이다. 그들과 나를 비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거꾸로 생각해봐. 아인슈타인이나 베토벤이 나랑 비교를 당한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겠어? 의외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옆에 있는 출중한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차 ‘습관’을 연습했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남의 불운과 불행에 대해서 두 번 이상 말 하지 말 것.


동료 알리시아의 배경이 부러웠지만 우쭐하지 않는 그의 겸손함과 일에 대한 에너지가 더 우수했다. 나도 조금씩 태도를 바꾸게 되며 서서히 이기는 경험을 쌓게 되었다. 작게나마 성취를 하고 스스로 축하할 줄도 알자. 신기한 일도 있었다. 이제 누군가는 이런 내가 부럽다고들 한다.


그리하여 나의 국제기구 인턴십은 또 다른 훈련이 되었다. 봄비를 기다리며 견디는 것, 그렇게 감정을 흘려 보내도록 마음을 단련하는 시기를 오롯이 책임져야 했다. 바람이 불고, 이슬을 맞고, 봄비를 기다리며 견디는 것을 ‘고난’으로 생각지 않고 ‘기대감’으로 바꾸기 위해 애를 썼다. 이건 오로지 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못난 내 자신을 키우고 가꾸어 가는 중이라고.

선택해야 했다. 내가 흥분해도 결국 뒷수습은 내 몫이다. 홀로 뒷수습을 또 해야하는 것이 더 힘들다. 빨리 눈물 닦고 코를 팽 풀고, 또한 작은 성취를 치하하고 ‘잘 했어!’ 칭찬하자. 나 자신을 대견해 하며 다듬어보기로 했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열등감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밤 12시에 별안간 떡볶이가 먹고 싶은 마음과 동일하다. 한번 떠오른 생각을 자꾸 곱씹다보면 상상력이 발동되어 식욕이 발동하고 욕구가 더 커진다. 쌀떡이냐, 밀떡이냐, 얼마나 쫄깃할까 이런 생각의 꼬리잡기가 시작되기 전에 빨리 다른 곳으로 집중을 돌려놓고, 생각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리하여 내 안의 울버린은 비로소 다시 잠이 들었다. 울버린이 깨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조심한다. 먼저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생각의 통로를 바꾸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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