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의 외출
그를 처음 만난 건 긴장과 기대로 가득했던 어느 날이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연결은 매우 선명하면서도 매우 우연히 벌어진다. 생각지도 않은 곳을 걷다가 혹은 담장길을 지나다가 푸른 아름드리나무를 발견하듯, 더워지는 공기에 외투를 벗다가 문득 오른쪽 어깨너머 담장에서 문 손잡이가 달려있는 한 개의 문을 발견하는 그런 장면이다. 그 문의 페인트칠이 노란색이었는지, 파란색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문 손잡이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마음,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나는 어쩌면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고, 그는 이 사실을 아직도 부정한다. 오히려 본인이 운이 좋았다고 말이다. 참 겸손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선한 주름은 자상한 인생의 발현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엘리노어를 만난 건 세계기상기구(WMO) 인턴십 출근 첫날, 회사의 카페테리아에서였다. 첫 출근날 점심 약속이 없다면 함께 식사를 하자고 먼저 제안하신 지인을 따라 빌딩 제일 위층의 카페테리아로 올라갔다. 그렇게 마침 카페테리아에서 우연히 마주친 엘리노어를 점심을 함께 하러 간 내게 소개해주신 사연이었다. 모두들 멀끔한 수트를 빼입고 있는 곳에서 그는 혼자 평범한 스웨터 차림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매우 단정한 말투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엘리노어, 숏커트의 헤어는 짧아도 너무 짧았다. 그녀는 마침 혼자 점심 식사를 하던 참이었다. 그녀가 식판에 담아온 샐러드를 한술 뜨려고 하는 차에 두리번 두리번 식판을 양손으로 들고서 앉을자리를 물색하던 우리의 시선이 그에게로 닿은 것이다. 내가 고른 건 Menu de jour였다. 오늘의 메뉴, 때로는 닭고기 때로는 소고기, 때로는 파스타, 때로는 라따뚜이. 매일같이 달라지는 주방장 메뉴였다.
“테이블에 같이 앉아도 되나요?”
“물론이죠. 기꺼이.”
스위스의 누샤텔 지역에서 온 엘리노어는 스위스 기상청에서 기상관측관으로 근무했고, 현재는 유럽지역 연합 기상청의 활동을 맡아하며 스위스 대표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성씨가 ‘꼬멍’이에요?”
“네, 학교 다니는 내내 놀림을 받았어요.”
정말이었다. 그는 ‘Comment allez vous 꼬멍딸레부’의 꼬멍 씨였다. 내가 아는 몇 개밖에 안 되는 불어 표현이, 어휘가 대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수준의 개수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 반가운 마음에 재차 물어보니 웃으며 대답해준다. 한국어로 치면 ‘어떻게’쯤 되는 표현이다. 내가 오늘 만난 새로운 사람이 ‘어떻게 씨’라니.
어떻게 보면 약간은 보수적이면서도 유연한 인물이었다. 그는 참으로 바르고 논리적이며 사람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면서도 시의적절한 농담을 할 줄 아는,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을 만큼.
나는 운이 좋게도 또 그렇게 멋진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엘리노어에게 제네바가 얼마나 쌀쌀맞은 동네인지 불평을 하곤 했다.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요, 나도 때로는 제네바가 힘들어요.”
“그게 정말이에요? 스위스 사람인데도요?”
제네바는 알고 보면 산과 호수에 둘러싸여 있는 아주 작은 도시일 뿐이었지만, 국제기구가 많은 지역적 특성으로 항상 이방인으로 가득 차 있고 또 늘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각국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이나 외교관들은 3년 임기를 마치면 본국으로 돌아갔고, 가게들도 레스토랑들도 그렇게 ‘단골손님’들을 정기적으로 잃었다.
한편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영어권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편리한 인간관계를 고수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근무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어려운 프랑스어를 배우기는 더 힘들기 때문에 포기해버리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프랑스-스위스 국경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많은 프랑스인 근로자들이 제네바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이면 국경을 넘어 프랑스 지역으로 퇴근을 했다. 그렇기에 제네바 토박이들에게는 약간의 방어적인 성격이 분명 있었다. 하긴, 이들로서는 오히려 뜨내기들을 반길 이유가 없겠다 싶었다. 뜨내기들은 제네바 월세만 올려놓지.
이런 나의 불평을 기억해 놓았다가 엘리노어는 나를 스위스 기상청 사람들의 after work에 초대하곤 했다. 퇴근 후 가까운 펍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는 자리였다. 스위스 기상청 사람들인만큼 100% 스위스인들로 구성된 이 조합이, 불만과 폭소와 자기 고백으로 가득 찬 이 시간이 묘하게 나는 좋았다. 신기한 현상이었다. 이들이 나를 받아준다는 사실부터 아무런 접점도 없는 이 새로운 사회에 내가 잠시나마 포함되었다는 것도.
어느 날은 스위스 기상청 누군가의 50세 생일에 초대받아서 스위스 산골짜기 산장에서 1박 2일 커다란 강아지들과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뒤섞여 뛰어노는 게임을 했고, 스위스 기상청 직원의 처가가 있는 이탈리아 시칠리 섬에서 날아온 속이 새빨간 오렌지를 함께 까먹기도 했다. 퐁뒤를 좋아한다는 나의 제안에 모두들 더위를 참으며 따뜻한 여름날 목 뒤의 땀을 닦으며 치즈 퐁뒤를 먹기도 했다. “여름에는 퐁뒤를 안 먹는다고 미리 귀띔해주지 그랬어요!”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모든 프로그램이 가족단위로 이뤄지는 한인교회 활동이나, 다국의 청년들이 모여 엉키고 부대끼며 때로는 나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기숙사 생활이나, 월등한 이력과 탁월한 스펙으로 기를 제압하는 국제기구 사람들이나, 나는 그동안 어려움 없이 잘 어울렸지만 어쩐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 기상청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는 시간은 나의 영혼이 자유로웠다. 시선의 검열을 받지 않은 유일한 자리였다. 엘리노어는 그것을 매우 훌륭하게 포착해냈다.
그 와중에 스위스 기상청 남자들은 매우 심각하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애리는 뭔가 이상하다고. 저렇게 작은 사람이 맥주를 어쩜 그렇게 빨리 마실 수 있는 거냐고. 본인들이 주문한 사이즈와 동일하게 큰 잔을 시켜서 1차 긴장시키더니 자신들보다 더 빨리 마셔버려서 2차 놀랐다고. 이제는 우리도 질 수 없다며. 그 세 명은 덩치가 큰 오토바이를 타는 키도 크고, 맥주배가 이만큼이나 보기 좋게 나온 바이커들이었다. 푸하하, 그 이야기를 엘리노어에게서 전해 들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에서 일해 보라 그래. 술을 막 들이켜야 한다고. 저 건장한 기상청 남자들도 못 배겨 날걸? 야근하고도 곧장 집에 못 가고 회식 자리에 불려 가면 술을 빨리 마시게 해서 아주 보내버린다고.”
한국에서 겪었던 직장 생활의 에피소드를 얘기할 때마다 엘리노어는 슬픈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강한 사람이 되었구나. 너의 내공은 대단해. 이 멀리 유럽에 와서 혼자 지금껏 헤쳐 나온 걸 보면.”
농담을 하다가도 엘리노어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불평을 해도, 분통을 터뜨려도 어김없이 사려 깊고 놀라운 균형감각으로 훌륭한 조언자가 되어주었다. 나의 긍정성과 투지를 매우 높이 사는 귀중한 친구였다.
남의 인생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장점을 발견해주고 표현하여 긍정성을 끌어올려 줄줄 아는 노련한 코치였다. 그를 만나면 내가 제법 근사한 인간이 된 것마냥 안심이 되었다. 이후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 느낌은 진짜였다. 엘리노어는 정말 문자 그대로 제네바 대학에서 코치 활동을 하고 있었고, MBA 대학원생들을 멘토링하고 있었다. 매 학기마다 학교에서 섭외 연락을 받는데, 지난 학기에만 업무 스케줄과 조율이 되지 않아 휴지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보고서나 기획안 등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사무실 식구들을 위해 문장을 봐주는 작문 첨삭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엘리노어, 그녀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이후 면접 기회가 올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신호를 쳤다. ‘도와주세요! 면접 일정이 잡혔어요!’ 만나자마자 우리는 인터뷰 시뮬레이션을 했다.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는 그녀, 차가운 말투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왜 이 자리에 적합한지 한번 설명해 볼래요? 비슷한 일을 해 본 적이 없군요?”
“(블라블라), (더듬더듬), (한숨) 나 완전히 긴장했어, 엘리노어 조금만 부드럽게 물어봐주면 안 돼?”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잘 들었어요. 이제 본인의 장점을 말해보시죠.”
“아, 예. 제 장점은.. (다시 블라블라)”
쉴 틈 없이 인터뷰 연습이 끝나고 한숨을 크게 쉬며 낙심한 내게 엘리노어는 내게 말했다.
“긴장하지 마. 넌 코리안 타이거잖아.”
“응? 무슨 소리야. 하하하, 코리안 타이거? 그래 난 코리안 타이거야.”
실없는 농담으로 듣는 나를 잠시 붙들어 세우고 진지하게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다. 네가 갖고 있는 끈기와 투지, 커다란 긍정성과 회복력이 언젠가 빛을 말할 거라고. 본인이라면 아마 포기했을 거라고. 먼 타국에서 홀로 헤쳐나가는 너를 보면 놀랍다며. 떨고 있는 내게 필요한 조언과 연습을 함께 해주는 그를 보며 큰 지분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꼭꼭 숨겨놓은 고달픔과 막막한 마음을 읽고 있었다.
무급 인턴십을 하며 늘 모자란 생활비를 쪼개며 초절약 생활을 하던 나도 그에게 뭔가 대접하고 싶었다. 세계기상기구 한 층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스위스 기상청에는 아주 작은 탕비실이 있었다. 어느 날은 미리 마트에서 사놓은 샐러드와 캔참치를 냉장고에 넣어 준비해 놓고 그녀를 조촐한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카페테리아에서 빌려온 접시에 샐러드 채소를 가득 꺼내놓고, 참치를 잘게 부숴서 가운데에 올리고, 발사믹 소스를 두 바퀴 돌린다. 그리고 올리브 오일을 한 바퀴. 비록 초라한 식사였지만 그녀는 정말 맛이 있게 먹어 주었다. 마무리로 엘리노어가 기상청의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려주었다. 인턴십의 시간은 쉽지 않고 심히 막막했지만, 웃음이 많고 새롭고 신기한 발견이 유난히 많았다.
이후 몇 년 뒤, 나는 그와 이야기를 하다 한번 더 크게 놀라게 된다. “엘리노어, 너 로잔공대 나왔어? 매번 수학과 나온 따분한 사람이라고 자기 비하를 하더니, 그게 로잔공대 수학과였단 말이야?”
“어디 가서 말하지 말아 줘. 따분한 수학과를 나온 나이 든 여성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스위스에서 대학교를 졸업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알고 있는데, 매년 정원의 50%씩 과락이라며. 두 번 이상 과락하면 학교에서 아예 방출이라고. 그걸 해냈네. 그것도 최고의 명문에서?”
“1, 2학년 때는 나 자신의 존재가 아예 부서져 없어진 것처럼 공부를 해야 겨우 학년을 올라갈 수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출신학교에 대해 말할 수 없어. 내가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없는 인간인지 그 순간 온 세상이 다 알게 되거든. 그건 매우 위험한 일이지.”
농담을 섞어가며 겸손을 떨던 엘리노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딱 한 마디를 했다. “너는 내가 아는 중 최고의 스위스 사람이다.”
준비된 듯 어김없이 그녀가 대답한다. “너는 내가 아는 중 최고의 한국 사람이야.”
그녀가 아는 한국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된다고.
그녀의 표정과 주름과 미소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야말로 너그럽고 합리적인 사람의 표본이었다. 매일이 막막하고 쉽지 않던 인턴십을 하루하루 지속해 가던 중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그렇게 만났다. 감사한 수확이었다. 이런 연결은 꽤 선명하면서도 우연히 벌어진다. 담장에서 문 손잡이가 달려있는 한 개의 문을 발견하는 그런 장면이다. 그녀는 닫힌 담벼락만을 바라보던 내게 기분 좋은 외출을 할 수 있는 문이 되어 주었다.
그를 만나는 날이면 든든하게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온 것만 같았다. 내가 자칫 자기 의심에 빠질 때면 늘 단순하게 문제 해결을 해주었다.
10월에 시작한 국제기구 인턴십, 답이 보이지 않던 시절을 거쳐 크리스마스가 지났고, 춥지만 꽤 아름다운 제네바의 겨울을 혹독하게 보낸 뒤, 그렇게 봄이 왔다. 인턴십 7개월 차에 슬슬 접어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새로운 소식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온 마음으로 고대하던 일이었다.
기숙사 친구 레미가 내 방 문에 포토샵으로 만든 포스터를 붙여놓았던 게 떠올랐다. Don’t worry, be Ae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