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이력서를 고치고 다듬어가던 나날들을 지나

그렇게 도착한 계약서

by Aeree Baik 애리백

제네바의 꼬나방 기차역에서 맞은편을 바라본다. 건널목을 가로질러 발걸음을 옮기면 왼편에 몇 개의 복잡한 골목들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빠끼(Paquis)라는 동네의 시작이다. 제네바에서 가장 거친 일들이 벌어지는 동네랄까. 방화 사건이나 마약 거래가 이뤄지기도 하고 저녁 7시면 모두 문을 닫는 제네바의 여느 상점과는 대비되게 빠끼는 저녁 7시가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이 동네가 비로소 깨어나는 시간.

허름한 선술집과 밖에 나와 물담배를 나눠 피는 사람들, 점원이 끈적이는 메뉴판을 테이블 위에 내놓는 곳이 이곳 빠끼이다. 제네바 물가에 비해 가격이 싸고 시끄러운 케밥집들이 즐비해 있다. 기다란 물담배를 파는 상점과 레이스 끈팬티를 파는 상점과 프랑스식 카바레가 나란히 보이는 곳. 주중에 미리 장을 봐 두지 않아 일요일에 먹을 것이 없어 난감한 날이면 나는 빠끼의 베트남 식료품점에 가서 두부를 사 오곤 했다. 비닐 포장지에 꼬불꼬불 베트남어로 설명이 적혀있는 두부 한 모는 한국의 수퍼마켓에서 파는 것보다 조금 작고 싱거웠다. 주인이 직접 만들어 내놓은 것 같아 보이는 기름진 튀긴 만두를 계산대 옆에서 판매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먹어보진 않았다.

스위스에는 유능한 호텔리어들을 배출하여 전 세계로 보낸 명문 호텔학교들이 있다. 아름다운 레만 호수를 마주 볼 수 있고 운 좋으면 프랑스 알프스의 눈부신 설산들과 몽블랑 봉우리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그 위치, 호수를 둘러싼 화려한 호텔들 면면이 근사하다. 반면 그 골목 뒤편으로 진입하면 ‘빠끼’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홍등가가 있는 곳, 골목을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유색 인종들이 눈에 띄게 급히 많아지는 장소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11분> 배경이 바로 여기다. 그날 나는 빠끼 초입에서 약속이 있었다. 그 만남으로 나의 세상이 뒤집혔다.

그날은 내가 여느 때처럼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공식 퇴근을 하고 난 뒤 사무실 내 책상에 그대로 남아 영문 이력서를 수정하고 문구를 이리저리 조금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적는 작업을 했다. 하루에 한 장씩 마무리를 해서 전 세계 멀리멀리 어딘가로 지원을 했다. 어느 날은 뉴욕, 어느 날은 파리, 어느 날은 제네바, 어느 날은 이라크, 어느 날은 아프가니스탄, 어느 날은 시리아. 분쟁 지역마다 어김없이 국제기구 지역 사무소가 있었다. 본부를 고집할 일이 아니었다. 근무지를 고를 만큼 내 처지가 여유롭지 않았다. 나는 그 어디든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트렁크 가방 하나면 기숙사 방에 부려놓은 모든 짐이 다 들어간다.

그즈음 서울에 있는 언니가 내게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했다.
“가족들이 너의 안전을 걱정할만한 곳은 가지 말도록 해. 아프가니스탄은 지원하지 마”
“내가 지원해봤자 어차피 연락도 안 와. 그쪽에선 나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정말 그랬다. 지원서를 보내봤자 단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막막할 뿐이었다.

이 기관에서 나의 앞길을 환하게 밝혀줄 것만 같던 니엔지 박사가 곧 있으면 정년퇴임이라는 소식을 알게 된 후, 내 계획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곧장 떠날 사람이라고 했다. 현재의 내 보스가 커리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는 기정사실이 내게는 결코 긍정적인 소식이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서 기회를 만들 때 영향력을 발휘해 줄 중요한 인물이 사라질 예정이라는 뜻이니. 혼자서 아름다운 미래를 전망하던 나는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이력서를 다듬기 시작했다.


제네바 저녁 풍경, 호텔들과 고가의 시계 브랜드 매장이 호숫가에 있다


하루 일과처럼 매일매일 각 국제기구마다 구인공고를 올리는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공고문을 읽고 키워드를 분석했다. 나와의 접점을 찾아보려 한줄한줄 꼼꼼하게. 공고문에 어김없이 들어가는 반복되는 문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표현은 노트에 필기를 해 놓았다가 커버 레터를 쓸 때 재활용했다. 그러다 조금씩 지치기도 하고 불쑥 심란한 마음이 들기도 하여 또 골목과 호숫가를 쏘다니며 마구 걷다가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사람의 기대감이라는 것은 참 가증스러운 거였다.

그날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인가. 교류도 활동영역도 달랐던 어떤 인물이 별안간 떠올랐다. 서로 교차점이 전혀 없어서 말을 섞어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던 인물이다. 제네바 MBA에 유학을 와서 국제기구 인턴십을 마치고 한 국제기구에서 컨설턴트를 하고 있는 한국분의 이름 석자가 떠오른 것이다. 전화기를 들고 무작정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얼마나 답답한 상황에 처했는지 설명을 마친 후 조언을 구한다고 부탁을 했다. 그는 매우 가볍게 대답을 했다. “오늘 퇴근 후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보죠. 꼬나방 앞에 있는 빠끼 초입의 <Boky>로 오세요.”
이렇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무작정 그의 시간을 얻어낸 상황이 조금은 얼떨떨했다.

그리하여 나는 당일 퇴근을 마치고 <복기> 혹은 <보끼> 혹은 <보키>라는 이름의 허름하기 그지없는 한 정체불명의 식당에 들어가게 된다. 취급하는 메뉴가 중식인지, 일식인지, 태국식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 두리번두리번 벽지를 둘러볼 무렵 끈적끈적한 메뉴판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2인용 테이블은 옆 테이블 사람과 팔꿈치가 닿을 것만 같이 비좁아 삐져나가는 두 팔을 자꾸 끌어모아야 했다.

그와 나는 동일하게 메뉴판에서 가장 싼 볶음밥을 시켰다. 새우도, 오리고기도 올려져 있지 않은 그냥 맨 볶음밥이었다. 계란과 야채만이 잘게 썰어져 들어간 세상에서 가장 심심한 볶음밥을 앞에 놓고 그와 나는 자못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간의 고생담을 털어놓았고 그는 그간의 무용담을 풀어놓았다. 고양이 발톱만한 이야기를 꺼내놓아도 그는 이 모든 일들의 배경과 당사자의 심정을 너무나 잘 헤아렸다.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력서를 나한테 이메일로 보내봐요. 우리 동료 중의 한 명이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 경력이 있는 사람을 구한다고 했거든요. 일단 보내봅시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비슷한 처지를 겪어본 사람들 주변에는 정보가 그 사이에서 활어처럼 미끄러지듯 돌게 되어 있다. 공채 시험에 한 번에 합격한 사람은 다양한 방도를 궁리해 볼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시야가 직선으로 한 방향이지만, 특채를 뚫어야 하는 이들은 다각도로 접근한다. 어떻게 보면 이 분야의 물정을 꽤 잘 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는 내가 무엇을 갈구하는지, 단번에 알아챘던 것 같다.


영화 <Two weeks notice>


그로부터 감감무소식으로 이미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한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된다. 내용이 너무나 단도직입적이라 이거 혹시 스팸 메일이 아닐까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기까지 했다. “당신이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응? 면접도, 사전 조율도, 전화통화도 한번 없이? 이렇게 대번에?’ 이메일로 그렇게 갑작스럽게 온 제안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혹시 나를 떠보나?’ 그 순간 생각을 다시 고쳐먹었다. 스팸 메일에 답장을 보내는 것은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지 않을까, 하등 잃을 것도 없는 처지이지 않은가. 예전에 봤던 영화 제목이 불꽃처럼 생각났다, 산드라 블록과 휴 그랜트가 주연을 한 영화 <투 윅스 노티스 Two weeks’ notice>. 퇴사를 하기 전에 필요한 시간을 말한다. 이메일 답장을 보냈다.

분명히 2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투 윅스 노티스’라고 대답을 했건만, 2주가 한참 지나도록 다시 아무 소식이 없었다. 빠끼의 초입에서 맛보았던 그 아무것도 토핑으로 올려져 있지 않던 맹숭맹숭한 볶음밥이 생각났다, 입 안에서 밥알이 돌던 그 볶음밥이. 기다리는 동안 애가 탔다.

그로부터 다시 두 달 뒤 어느 날, 이메일의 첨부파일로 계약서가 도착했다. 포지션이 ‘Project Officer’라고 적혀 있는 컨설턴트 계약이었다. 한 국제기구의 3개월짜리 계약직 컨설턴트 자리였다.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냅다 뛰었다. 칸칸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도 맨 끝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는, 발을 동동 구르며 기쁨의 세리머니를 했다. 커다란 구둣소리가 화장실 천장까지 울렸다.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소리 내어 울면 이 비밀이 곧장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나만의 비밀로, 그리고 누구도 상처낼 수 없는 굳건한 ‘사실’로 남기려면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 될 것처럼 여겨졌다. 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화장실에서 찬물로 조용히 손을 씻고 사무실로 고요하게 돌아왔다. 미세하게 손이 떨렸다.

그날,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가 모두들 자리를 떠난 것을 확인한 후 황급히 그 선배에게 문의를 해 보았다. “이런 내용으로 이메일을 받았는데, 이거 실화인가요?”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는데도 목소리를 아주 작게 낮췄다.
상황이 묘하게 급커브를 틀었다고 했다. 나는 애초에 이 팀에서 선발하려고 물망에 올린 사람이 아니었다고 전해 들었단다, 막강한 인물이 후보에 있었기에 논의할 필요도 없이 최종 선택이 끝났다고. 그래서 내게 그간 별다른 업데이트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내부 결재를 마치고 벌써 인사과에 승인 절차가 넘어간 상태였기에. 그런데 이게 웬걸, 팀에서 선택했던 화려한 이력서의 주인공이 막판에 다른 결심을 하여 사기업으로 입사를 하는 바람에 그다음 후보 1순위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또 지지부진 시간이 흘렀고 결국 후보 2순위였던 내게 최종 기회가 돌아갔다고.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보낸 이력서와 이라크 바그다드에 보낸 자기소개서들이 생각났다. 이력서를 수정하고 또 다듬어 가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내게 전달된 계약서 사본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는 정확했다, 계약서에는 내 이름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 국제기구 무급 인턴 7개월 만에 성사된 일이었다.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소멸해가고 있던 나를 지키고자 시작된 이 여정에 또 한 번의 기록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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