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나며, 내가 그리울 것들

by life in hawaii




몇년동안 다녔던 내 두번째 직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미운 정이며 고운 정이며 내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할 좋은 기억들이 많아 글로 남겨보기로 했다.


회사를 떠나며, 내가 그리울 것들..





첫번째, 겨울 아침 동료와 먹던 포장마차 오뎅


같은 성별에 내 또래인 m과장은 나와 같은 아침형 인간이라서 항상 출근해서 만나는 시간이 비슷했다. 그래서 아침에 만나면, 특히 겨울에는 종종 회사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 내려가 오뎅을 두어개씩 먹고 오곤 했다.



오뎅은 자고로 춥게 먹어야 제맛이라며, 둘다 외투는 입지 않고 회사에서 나눠준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는 종종 걸음으로 "으악 추워!!!!" 소리지르며 뛰어가곤 했다. 덜덜 떨며 포장마차에 들어가 오뎅을 집을 때만 하더라도 "오늘은 꼭 하나만 먹을꺼야~"라고 말해놓고선 둘다 어제 있었던 억울했던 일, 화나는 일 등등 썰을 풀다보면 이미 빈 꼬치만 각 세개씩 놓여져 있었다.



그러면 또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서로 4천원을 본인이 내겠다고 골반 뼈를 부딪혀가며 엉덩이로 밀고 팔로 당겨대며 한바탕 전쟁을 치다.








두번째, '과장님~' 하고 나를 부르던 소리


이전 회사에서는 늘 막내였는데, 이번 회사에서는 유독 나보다 두어살 어린 직원들이 많았다. 몇살 차이 나지 않으니 서로 인생에 있어서 맞닥들이는 과제와 고민이 비슷했으며 공감대가 잘 형성 되었다.


그래도 두어살 나이가 많다고 혹여나 내가 꼰대력을 발휘할까봐 항상 조심하려고 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참 나를 따르고 좋아해줬다. (아닐 수도.. 있겠지? 나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매니저를 아주 살뜰이도 잘 챙겼으니까^^;) 일하면서도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과장님~", 점심은 뭐 먹으러 갈지 고르고 있는 중이라며 "과장님~", 개인적인 고민이 생겼다고 "과장님~", 참 많이도 불렸던 것 같다.


예전에는 살짝... 집에서도 남편이며 아이며 늘상 나를 찾아대니 이러한 부름이 좀 고단함으로 다가왔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참 나를 믿어줬고, 따라줬고, 의지했으며, 결론적으로 내가 큰 사랑을 받고 간다는 생각을 한다. 새로 옮기는 회사는 좀 더 수평적인 구조를 운영하고자 다른 통합적인 호칭을 사용하는데, 앞으로 아마 다시 듣게 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이 '과장님~' 소리가 참 그리울 것 같다.








세번째, 왕복 두시간 가량의 출퇴근길


육아휴직을 끝내고 현재 회사로 이직하며 나에게는 합법적으로, 타당하게 두시간의 자부타임이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어졌다. 처음 아이를 떼어 놓고 근을 하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는데,, 이럴수가! 핸드폰을 아무 방해 없이 한시간이나 할 수 있다니! 그동안 밀려서 보지 못했던 유튜브도 보고, 밀리의 서재로 독서도 해보고, 블로그 글도 여기저기 보며 진짜 신나게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퇴근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출근시간보다 서서 오는 시간이 많다보니 조금 덜 편하게 오기는 하였지만, 지옥철에서 좀 서있고 좀 숨막힌들 어떠하리! 그간 많이 대화하지 못했던 친구들과 신나게 카톡도 하고 인터넷 장보기도 여유롭게 하며 내일 출퇴근 시간에는 뭐하지? 하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제 옮기는 회사는 집과 굉장히 가까워 조금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면 도어 투 도어로 15분에서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집과 가까워 진 것은 그 어떤 복지도 이길 수 없는 엄청난 혜택이라고 하고 나 또한 이와 가까이 있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기쁘기는 하다만, 아무 방해도 받지 않으며 즐겼던 나만의 시간이 가끔씩, 아니 자주, 어쩌면 매일 그리워질 것 같다.





좋았던 기억을 곱씹다보니 나는 참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고 그 사랑이 나를 걷게 하고 일하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참 고마웠다고 아무리 말해도 진심의 크기만큼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글로 계속 외치게 된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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