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뜨거운 커피를 시키고 그림을 그리는 파리의 화가

파리 여행에서 만났던 길거리의 화가와의 만남


나에게는 파리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바로 파리는 낭만적인 도시일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나에게 낭만적인 것은 예술적인 것을 의미한다. 파리 여행 전 브이로그를 많이 봤는데 모든 영상마다 나에게 파리에 대한 로망을 만들어주었다. 센느강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몽마르뜨 언덕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공원에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 이 얼마나 로맨틱한 것인가.

나의 환상에 부합하는 경관이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카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올여름 파리 여행에서 나는 고흐를 닮은 길거리 화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비주얼은 너무나도 고흐를 닮고 있어서 그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금색의 턱수염은 구레나룻까지 이어져 있었고 길고 날카로운 눈매, 크고 깊은 눈동자. 그는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카페 바깥 자리에 앉아 미술도구들을 잔뜩 펼쳐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고흐를 닮은 이 화가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5유로의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키고서.


빤히 그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나는 그를 관찰했다. 우선 고흐아저씨는 이곳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앤 컴퍼니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고 있는 모습과 근처의 풍경들.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이군을 단박에 그의 그림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화가는 아닌 것 같지만 그가 그린 이곳의 풍경의 색감들이며 분위기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림을 조금 구경한 후에는 그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고흐아저씨는 파란색 볼캡모자, 베이지색 얇은 봄용 재킷, 하얀색 이너티 그리고 샌들을 신고 있었다. 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냥 블랙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러 물감과 붓들, 종이들과 귀여운 리락쿠마 필통, 낡은 베이지색 가방이 그가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카페에 들고 온 소지품이 다였다. 내가 고흐아저씨에 대해 외관 말고 또 알아낸 흥미로운 점은 그는 껌을 질겅질겅 일정한 속도에 맞추어 씹고 있었다는 것과 이 카페에서 이 무더운 파리의 여름에 뜨거운 커피를 시켰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지만 그의 작업에 방해가 될 것 같아 꾸욱 참고 있었다. 그때 그가 먼저 나에게 그의 작품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는 주로 파리의 장소들을 그림을 그렸다. 셰익스피어앤컴퍼니 풍경 그림만 3점 이상이 있었고 여행객들은 잘 모를만한, 장소들의 그림들도 많이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투박하고 소소했지만 아름다움이 잘 느껴졌다. 우리는 흔히들 얼굴에서 그 사람의 인생이 느껴진다고 한다. 나는 화가의 경우 그림에서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고흐 아저씨는 굉장히 온화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일단 웃는 모습이 어린아이의 미소와 비슷했다. 세상 다 행복한 듯한 웃음. 그가 나에게 그림을 소개해줄 때도 신나서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정말로 자기 삶에 굉장히 만족도가 높은 사내였다.


그림을 구경하다가 조금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는 파리에 온 지 4년이 되었으며 캘리포니아 출신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또 그는 원래 화가는 아니었으며 파리에는 researcher로서 왔다가 화가로 전향하고 파리에서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참 이거까지 낭만적이다. 그러다 조금 더 포멀 하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다.


"왜 여름에 뜨거운 커피를 마셔요?"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허허 웃으면서 "이거.. 설명하기 복잡한데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져. 난 이게 좋아"

라고 말했다. (사실 더 설명해 주었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했다. 무튼 저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이었다.)


그 당시 이게 왜 좋을까 하고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나도 허허 웃으면서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갔던 것 같다.


겨울로 곧 넘어가기 직전의 가을에서야 내가 이 이야기를 적는 이유는, 고흐아저씨의 저 말이 지금 이해되기 때문이다. 나는 밤마다 책을 읽는다. 오늘은 배가 아파서 커피포트에서 43도의 물로 우려낸 따뜻한 둥굴레차를 마시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읽고 있었다. 처음 홀짝댈 때는 몰랐지만 어느 정도 차를 마시고 나자 몸이 후끈후끈해졌다. 그리고 고흐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따듯한 둥굴레차가 내 몸을 덥혀 주니 일단 몸이 편안해졌다. 나른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피곤한 노동을 마치고 따뜻한 물로 채워진 욕조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나도 모르게 요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몸이 경직된 채로 생활했는데 이 따뜻한 둥굴레차가 모든 스트레스를 잠재워 주웠다.


아마 고흐아저씨도 한여름에도 쪄죽따를 고집한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 같다. 어쩌면 따듯한 커피가 그의 어린아이 같은 미소의 비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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