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끼어버렸다

틈새에 끼어버린 일화





공교롭게도 계묘년의 첫 주에 나는 끼어버렸다. 두 번이나 구멍에 쏘옥 빠진 일들이 있었다.

무언가 알맞은 자리에 틈에 꽉 끼게 들어가는 거는 어쩌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가는 거니까. 하지만 헤모글로빈에 산소가 아니라 일산화탄소가 자리를 차지하면 독이 되는 것 마냥 틈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엘리베이터가 문 열린 사이에 그 틈으로 이어폰 한쪽이 들어간다거나 어금니에 고기가 박힌다든가 말이다.




5일에 엘리베이터 틈새로 나의 블루투스 왼쪽 유닛이 굴러가서 빠졌다. 맙소사. 어찌나 황망하던지.. 타이밍이 참 귀신같았다. 오전에 복싱하러 가는 길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림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후드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이어폰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왼쪽 유닛이 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갔다. 앗 주워야지 하는 순간에 '문이 열립니다'하는 음성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이 가사는 내 소니wh-1000xm4 왼쪽 유닛에게 딱 맞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엘리베이터 틈새로 쏘옥 들어가 버렸을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똥땅똥땅 끝없는 아래로 추락하는 나의 한쪽 이어폰을 바라볼 뿐이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났다. ㅋㅋ어쩜 저기로 쏙 들어가냐 ㅋㅋ 귀신같은 타이밍이다 ㅋㅋ.. 했지만 착잡해졌다. 2020년 9월 즈음에 처음 샀던 나의 소니 wh-1000xm4는 2022년에만 두 번 잃어버렸었다. 작년 5월에 등산하고 내려오는 버스에서 본체를 잃어버려서 당근마켓에서 본체와 양쪽 유닛을 다시 재구매를 했다. 그러다 작년 7월 초에는 런던 여행을 하다 가방 통째로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당연히 그 가방에는 나의 소니 wh-1000xm4도 있었다. 뭔 새로 사자마자 족족 도망가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귀국해서 8월에 다시 중고나라에서 구매를 했다. 이제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했는데.. 가지각색 다양한 상황으로 잃어버리게 되었다. 연초부터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려서 기분이 언짢다. 다른 물건이었으면 (아 물론 지갑 핸드폰은 안된다) 그냥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루투스 이어폰은 내 삶 그 자체다.



나는 소음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이다. 나의 부모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우리 엄마 아빠는 목청이 크신 편이다. 어릴 적부터 큰 소리를 듣고 자라다 보니 귀가 금방 피곤해졌다. 그래서 나는 청각이 굉장히 민감한 여성으로 성장했다. 쩝쩝거리는 소리, 재채기소리, 목 긁는 소리 등.. 은 정말 내가 못 듣는 소리들이다. 이런 소리들과 거리를 두려고 어렸을 때부터 이어폰으로 음악 듣는 게 내 취미였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줄 이어폰과 에어팟 1세대로 살다가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처음 귀에 꽂아 보고는 충격이었다. 아 신세계다. 차가 빵빵거리는 도로 위,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나 노이즈캔슬링만 있으면 그 순간 음악과 나만 오롯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분이 든다. 소니 wh-1000xm4는 세상이 내는 소음들로부터 해방할 수 있게 해 준 나의 보물이다.

좋아하면 할수록 상대는 멀어진다 했던가. 애석하게도 나의 보물은 내 손으로부터 도망을 계속 치고 있다.



그리고 이건 방금 있었던 일이다. 마키노차야에서 엄마랑 점심 식사를 했다. 부챗살이었나 살치살이었나. 스테이크를 한 접시 받아와서 엄마랑 사이좋게 먹었다. 근데 오른쪽 어금니 깊숙한 곳에 그만 스테이크의 질긴 부분이 박혀버렸다. 나의 이어폰이 엘리베이터로 데굴데굴 틈새 구멍으로 알맞게 안착한 것처럼 고기도 나의 깊숙한 이에 자리 잡았다. 휴지로 빼내려 했지만 택도 없었고 나는 1층으로 내려가 편의점에서 여행용 칫솔치약세트를 샀다. 화장실에서 분노의 양치질 마냥 오른쪽 위 어금니에 낀 고기를 색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피 나올 때까지 박박 닦았다. 하지만 고기는 빠지지 않는다. 그냥 별안간 잇몸에 자극을 주어 피맛을 본 사람이 되었을 뿐. 왜 하필이면 잘 빠지지 않는 이에 들어갔을까 싶다. 아니 음식은 어금니로 주로 씹으니 그렇다 쳐도, 왜 하필 박혀버린 걸까.



엘리베이터 틈새로 이어폰이 굴러가던 일과 오른쪽 위 어금니에 고기가 박힌 것을 보며 느낀 게 있다. 이런 불운한 일은 내가 손을 쓸 수도 없는 사이에 일어나 버린다. 특히 틈새에 관해서는 더 그런 거 같다. 틈새는 말 그대로 틈새다. 찰나의 순간. 얇은 틈. 물론 찰나의 미학도 있다. 의례 재밌거나 예술이라고 평가받는 사진들은 대개 찰나의 순간 포착된 장면들이 많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연을 맺을 때도 찰나의 몇 초의 짜릿함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파도처럼 쓸려 오는 세렌디피티를 그냥 웃으며 맞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게 불운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운명 앞에서 무력해지는 존재처럼, 나는 멍하니 서서 어떤 대책을 행동으로 실행할 수가 없다. 이럴 때는 탓할 대상을 만들지 말고 그냥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허허하고 웃어넘겨야 한다. 그냥 다음에는 엘리베이터 근처에서는 이어폰을 안 껴야지, 좀 질긴 스테이크 부위를 먹을 때는 잘 씹어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어른들은 왜 생각하는 의자에 안 앉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