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이별
나의 오빠가 9살이었으니 나는 7살이었다. 이층 침대가 있는 우리 방은 베란다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나무로 되어있는 창틀에서 입김처럼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겨울용 내복을 입고 베란다 앞 차가운 장판 위를 발가락으로만 디딘 채 총총총 서성였다. 늦은 밤 산타할아버지가 들어오다가 베란다 문을 열 때 나는 요란한 소리에 놀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자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차가운 침대에 누워 서둘러 눈을 질끈 감았다. 얼른 잠들어야 산타할아버지도 빨리 오실 것 같았다. 차가운 이불이 온몸에 있는 솜털을 일으켜 세웠다. 몸에 잔뜩 힘을 주니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 밖으로 나오니 오빠도 2층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빠도 오줌이 마렵나 싶어 오빠를 기다렸다. 얼마 전 잠결에 2층 침대에 엉거주춤 서서 쉬를 하다 떨어진 적이 있는 오빠를 기다린 것은 내 나름대로의 애정표현이었다. 내려온 오빠는 어째서인지 킬킬 웃고 있었다. “오빠가 비밀 알려줄까?” 오빠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끝내주는 결말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산타할아버지는 바로 엄마 아빠야.” 자신은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설렘을 순수하게 만끽하는 동생을 보고 꽤나 질투가 났던 모양이다. 나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나만의 산타 마을이 통째로 없어져 버렸다. 손때가 묻은 오크나무 탁자 위에서 산타할아버지가 달콤한 핫초코를 마시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장면을 이제 상상할 수 없었다. 탁자 가운데 있는 마법의 수정구슬에서 온 세상 어린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비치는 상상도 이젠 할 수 없었다. “응?” 처음엔 무슨 소린지 몰라 자꾸 되물었다. 조금 답답하다는 듯 찡그린 표정을 한 오빠의 디테일한 대답을 듣고서야 내 눈에선 왕방울만 한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그대로 문을 열고 엄마한테 달려가 한참을 울었고 당시 형편이 안 좋았던 우리 집 가장인 아빠는 약간의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나는 산타할아버지와 그렇게 이별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한 첫 번째 이별이었다.
꼼이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잘 시간이 되자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를 더듬더듬 읽는다. 한글을 읽게 되면서 그동안 받은 편지들을 자꾸 꺼내서 읽곤 했다. 이제 금방 크리스마스이니 착한 일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꼭 잊지 않고 가져오길 빌며 편지를 읽는 것 같다. 앞구르기 하면서 봐도 내 글씨체라서 나름 꽤 다르게 쓴 거라 믿고 있던 나도 당황, 남편도 당황했다. 꼼이가 더듬더듬 글을 읽기 시작하긴 했으나 아직 필체까지 파악하긴 어려운 모양이다. 아, 다행이다. 내년엔 글씨체를 알아보려나. 올해는 좀 더 다른 필체로 써야겠다.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꼼이가 맨 마지막 줄에 있는 '사랑한단다'까지 읽고 나서 마치 남자친구에게 처음 프리지아를 받은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내가 보지 못할 몇몇의 표정 중 하나이다. 어쩌면 아이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모든 부모들은 다가올 이별을 알면서도 정성스러운 선물을 준비하는 연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번 크리스마스 서프라이즈도 착실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