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이는 자주 아픈 아이였다. 자주, 심하게 아팠다. 어디 가서 입원한 횟수를 말하면 다들 두 눈이 동그래질 정도다. 증상이 약해도 동네 소아과에 가서 처방받는 약은 늘 실패였다. 감기에 걸리면 늘 엑스레이를 찍어야 할 정도로 심해져서 엑스레이실과 입원실이 있는 병원으로 다녀야 했다. 손등에 수액 주삿바늘을 꽂을 때 간호사는 단골손님을 맞이하듯 “너 입원 많이 했었구나” 한다. 마스크 속으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아이의 전신을 꼼짝 못 하게 잡는 것도 이제 미안하지 않았다. 꽉 잡아야, 아이의 고통도 빨리 끝난다. 속눈썹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부은 눈이 초점을 찾아가고 히끅, 히끅, 하며 울음의 말미가 보일 때쯤이면 예전에 유튜브에서 봤던 영상이 떠오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긴 투병생활을 하던 어린아이가 목 혈관에서 혈액을 채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 엄마는 “목은 싫어요 엄마, 목은 너무 아파요” 하고 울부짖는 아이 위에 올라가 자신의 무게로 아이의 다리를 고정하고, 팔을 나란히 잡고, 아이 얼굴을 옆으로 돌려 간호사에게 혈관을 보여주었다. 아이 엄마의 표정은 침착했지만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 나는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한다.
바늘이 들어가기에 아이의 피부는 너무 여리다 아픈 아이를 둔 엄마로서 또 하나 겪는 고충은 아이들의 모임을 빙자한 엄마들의 모임에 불참하면서 관계에 소원해진다는 것이다. 아플 땐 정말 아파서 가지 못하고, 아프지 않을 땐 아플까 봐 못 간다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계절성 전염병에도 입원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나의 입장에선 어린이집만 빠지지 않고 다녀도 성공이었는데, 쉬는 날 모여 키즈파크에 간다던지, 하원 후 친구네 집에서 다과파티를 하는 일은 꼼이에게 무리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가고 싶다는 소리에 마음이 아파 몇 번 참석했다가 아이의 몸까지 아프게 되자, 아플까 봐 못 가겠다는 말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완곡하게 설명해도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예민한 엄마가 아이까지 예민하게 키운다는 말을 완곡하게 들을 뿐이다. 엄마들의 결속에 스트레스만 받고 관심이 없던 나는 겸사겸사 엄마들과 멀어졌다.
수차례의 입원 과정들이 나에겐 노이로제가 되었지만 꼼이의 기억 속에는 어떻게 자리 잡았을지 모르겠다. 아마 입원과 수술은 아주 무서운 괴물이 자신을 잡아먹는 공포스러운 상황과 같을 것이다.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몸이 약하다고 인정하며 놀이터에 가려던 발걸음을 되돌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마음이 아프지만, 아이도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다만 나는 아이에게 놀이터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려는 작은 노력을 한다. 꺼내면 치우는 데 손이 많이 가는 놀잇감을 꺼내 준다던지, 평소보다 책을 더 실감 나게 읽어준다던지, 스킨십이 풍부한 신체놀이를 한다던지 하는 일들이다. 잠시라도 환하게 웃는 아이에게 나도 위로를 받는다.
최근 아이의 입원 생활을 끝내며 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아이를 낫게 하는 것은 혈관으로 들어가는 수액뿐만 아니라 엄마의 지극한 정성과 넘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당연한 소리를 실감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지극한 정성과 넘치는 사랑이란 내 기준에 단 한 번의 짜증과 힘든 내색 없이 간호한다는 것이다.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아픈 아이는 힘든 엄마의 표정을 읽으면 힘을 내지 못한다. 유튜브 영상에서의 그녀의 표정이 그토록 침착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이번 입원 때 병실에서 아이를 재우고 메모장을 켜 적은 글이다.
<아픈 아이는 엄마를 순한 양으로 만든다. 그런 엄마를 만족하듯 누리기도 하고 양 같은 엄마 표정이 조금이라도 변할까 봐 검은 눈동자를 위로 뜨고 눈썹을 한껏 올려 기분을 살피기도 한다. 엄마 얼굴에 피곤이 들이치려고 할 때면 일부러 콜록, 한 번 더 기침한다. 평소엔 잘 보여주지 않던 춤을 추거나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그런 아이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며 웃으면 아이는 곧장 엄마 품으로 달려온다. 솜털처럼 포근한 엄마 손길을 만끽하며 수줍은 연인 같은 표정으로 품 안에 파고든다. 그럼 나는 기꺼이 나의 가장 보드라운 표정을 짓고서 내 몸에서 가장 폭신한 부분을 내어 아이를 감싼다. 아이는 이렇게 치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