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련
작아진 아이의 옷을 한 개씩 펼쳐 다시 정갈하게 개킨다. 이 옷들은 내 동갑내기 사촌 딸에게 갈 것이다. 옷 하나를 개킬 때마다 이 옷을 입고 했던 꼼이의 행동이나 사진이 생각난다. 그 추억이 옷을 개는 손에 미련을 한가득 올린다. 한 계절은 더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아이를 불러 세우고 대보기도 한다. 이미 미련으로 가득한 옷을 입혔다가 레스토랑 의자에 앉은 아이의 바지가 무릎까지 올라가있는 것을 보고 자책한 적이 있었기에 이제는 쿨하게 보내주려고 한다. 그래도 아이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본격적으로 친해진 친구가 갑자기 전학 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이런 감상에 젖을 때마다 아이의 옛날 사진을 뒤져보며 혼자 청승을 떨곤 했다. 자신의 옷이 정리되는 것을 지켜보던 꼼이는 내 아련한 얼굴을 보고 과거의 자신에게 질투하는 듯 아기 흉내를 냈다. “나 이때 예뻤어? 이렇게 하면 엄마 기분이 좋았어?” 최대한 사진 속 앳된 얼굴로 돌아가보려는 노력을 한다. 최근에 깨달은 것이지만 이는 곧 ‘지금은 안 예뻐? 왜 옛날 사진만 봐?’라는 뜻이다. 나에게 없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보듯 부러운 얼굴을 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이내 깨달았다.
나는 이때의 아이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이때의 나에게 연민을 느끼는구나.
이젠 과거에 취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쿨하게 파란 비닐에 옷들을 차곡차곡 넣고 박스에 담아 택배로 휘리릭 보내버린다. 내가 그렇게 하니 아이도 아주 쿨하게 옷과 이별한다.
‘꼼이 작아진 옷 보냈어. 너가 보고 괜찮은 옷들만 골라 입히고 나머진 버려도 돼.’ 사촌에게 문자를 남긴다. 구구절절하게 이건 언제 입혔던 거고 이거랑 입으면 더 예쁘다, 한 번밖에 못 입혔다, 꽤 비싸게 주고 산 옷이라는 덧붙임은 이제 하지 않는다. 이 옷들도 결국 내 손을 떠나면 추억이 담긴 옷이 아니라 누가 입던 헌 옷일 뿐이다.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 옷정리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나에게 그새 달려온 지금의 꼼이가 말한다. "엄마! 컴퓨터 한 번 하고, 꼼이 보고, 컴퓨터 한 번 하고, 꼼이 봐~ 알았지?" 이 말을 듣고 나는 다시 마음이 찡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너를 과거의 너보다 더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