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심
우리 집에 사는 어린이는 잘 준비를 하면서부터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 시작된다. 갑자기 배도 고프고 못 놀았던 장난감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며 갑자기 산책을 나가자고 조른다. “엄마아~~ 응? 응~?”
그 보드랍고 끈적한 손으로 내 볼을 감싸고 눈웃음까지 날려버리면 정말 어찌할 방도가 없어 늘 자는 시간이 늦춰지곤 했다. 지금은 다르다. 하루 중 가장 애교 섞인 목소리에 오리같이 내민 입술로 뽀뽀까지 해도 자야 하는 시간엔 자야 한다. 엄마 아빠의 마음은 이미 녹아버렸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면역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러면 어린이는 작전을 변경한다. 양치를 하고 세수도 한다. 손도 뽀득뽀득 닦고, 쉬도 한 뒤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시작한다. 길고 무궁무진한 수다를.
침대에 누워 어둠에 적응한 아이의 눈은 정오의 햇살보다 반짝이는 빛을 뿜어낸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국악 선생님이 딴~딴~따다 딴~따다~하는 노래를 했는데 정말 재미있어서 끝나는 게 아쉬웠다고. 친구가 가져온 쿠키를 먹었는데 엄마 생각이 나서 조금 남겨서 가방에 넣었는데 다들 모르게 하느라 정말 쉽지 않았다고. 나랑 놀던 친구가 자꾸 다른 아이랑 멀리 가 버려서 속상했다고. 선생님을 불렀는데 선생님은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일만 했다고. 오늘 하루 중 있었던 일들을 아주 자세하게 풀어낸다. 절대 낮에는 말하지 않는 어린이의 진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럼 나는 밀린 웹툰 보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 국악선생님이 부른 노래를 다음엔 엄마랑 꼭 같이 불러보자고. 친구가 만든 쿠키를 먹으면서 엄마 생각을 해줘서 고맙다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날 좋아하게 되는 일은 아주 큰 행운이 따라줘야 한다고. 선생님이 바쁠 때는 대답을 못하지만, 그래서 네가 혼자 했던 일은 이제 너만의 것이 되었다고. 어둠 속에서 아이의 볼을 감싸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낮에 봤던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낮에는 볼 수 없는 진심의 표정이다.
아이들은 늘 진실을 말하지만 늘 진심을 말하진 않는다. 낮에는 들을 수 없었던 진심을 듣고 있자면 나 또한 어릴 적 겪었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어린 나와 마주하게 된다. 가끔 아이 재우는 게 버거울 때가 있는데 그 이유인 것 같다. 아이 옆에서 나도 작게 웅크리고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들은 아이뿐만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해 바보 같은 대답을 해줄 때도 있다. 대부분 자기 전에 아이와 하는 대화는 아이와 내가 서로 합심하여 두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나도 배우는 마음으로 아이를 재우게 된다. 아이로 하여금 하루에 수십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요즘이다. 이게 바로 철든다는 것인가. 철이 든다는 것은 곧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시 들여다보고 헤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