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음내림 Aug 25. 2015

누구나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도망쳐서는 안 되는 순간일지라도





살아봤자 얼마나 살았다고 요즘 부쩍

부모님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는 하루살이마냥 하루를 바쁘게 살면

아무리 큰 보람을 얻고

아무리 큰 수확을 거두게 되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먼저 지쳐버리곤 하는데,








내 부모님들은 어떻게 나와 내 동생들을

양육하며 그 오랜 세월을 견디셨을까









나는  수많은 인간관계에 연연하고 마음 다치고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일마

이따금은 여의치 않아


스스로 회복해야 하는 날들을 보내며


'원래 이런 거구나.

원래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평생을 살면서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야 하는  존재구나.'라는 의미심장한 말들을

마음에 두꺼운 갑옷을 입히듯 차곡차곡 입혀가는데










내가 자라면서 수없이 주었을 상처들까지 더해져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떤 날들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청춘을 흘려보냈을까.





나는 이십 대 초반에

성격 변화가 있었다.



누군가 악의를 갖고 비아냥대도

늘 실없이 웃기만 하던, 성격 좋다는 얘기를

꼬리표처럼 달고 살던 어린 나는 이제야

내 목소리를 내고 이제야 나 자신에 대 

생각하는 시간을 늘려나간다.









아, 그렇다고 늘 전투를 준비하듯 굳은 얼굴을 하고

하루하루 늘 치열하게 살고 있지는 않다.








아직도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지만

그래도 몇 해 전부터는 손에 잡히는 대로 종이에

글을 끄적이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내가 어떤 사람인지, 늘 한결같은 사람을 이상형처럼 그리면서도 정작 본인은

얼마나 쉽게 변해버리는지 등등...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리가 되고 있다.








어른들이 속을 썩으면 아이에게

농담 쬐끔 진담 왕창넣어,



 '딱 너 같은 자식을 낳아 길러봐라.' 말씀하시는데




우와, 나는 그 말이 요즘같이 무서울 때가 없다.

나처럼 말 안 듣고 고집 센 아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무섭다.





철이 든다는 건, 말 그대로 ''이 든다는 것.

세월을 한 겹 두 겹 입게 된다는 뜻이라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나는 이제야 청소년기에서 벗어나

한 해 두 해 입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성인이 된지도 벌써 몇 해 째지만

이제야 조금씩 인생을 알 것 같은

내가 많이 늦어버린 걸까?







오늘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부모님들의 고생을 생각하면서

인생이 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문득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내 뒷모습이

쓸쓸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두 해 전, 1년간의 휴학을 마치고

복학을 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내가 유난히도 좋아했던 교수님께서

급작스레 면담을 하자며 부르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시고는

어딘지 모르게 약간 쓸쓸한 얼굴로

'너무 빨리 철들지 말거라.' 하고

조용히 말씀해주셨던 날이 있었다.






오늘 나는 그 시간 속에 되돌아가

그 접객용 의자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교수님도 나도 조금은 쓸쓸한 얼굴로

마주 앉아 있지는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시간에도 쓸쓸함과 외로움을 혹한의 추위처럼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위대한 과학자가 어떤 과학적인 현상을 발견하고 과학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구체화시켜가듯.

위대한 건축가가 머릿속에서 갑자기 떠오른 영감들을 설계도 위에 이리저리 그려내려 가듯.






우리도 가끔은 내가 하고 있는 좋은 생각들과 순간이 사라질까 조금은 조급한 마음으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차곡차곡 이런저런 감정들과 시간들을 글 속에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설계하는 위대한 업보를 남기게 되지는 않을까?







뒤늦게 철학이나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아버린 나는

나의 열린 비밀 공간에 끄적끄적 글을 남겨본다.








힘내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매거진의 이전글 기적은 반드시 너를 찾아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