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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Oct 21. 2015

앞을 본다.





앞을 본다.

가을도 보이고 여름도 보이고

겨울 보인다.







손 잡고 같은 병실 옆 침상에 

누워 계시던 할머니랑 산책을 간다.

조심조심 한 보 앞에 돌, 앞에 차.

할머니와 낙엽을 밟는다.





바스락바스락 낙엽이 익었다.

할머니 손 위에 동그란 도토리 한 알 올려주고 

'할머니, 이것도 만져봐요. 동그란 도토리'






앞을 보인다.






'저기 열 걸음 앞에는 이 있는데 

작은 닭장에 닭이 세 마리에요'









할머니가 웃는다.

바람이 시원하다.

눅눅하지도 않은 게 차갑지도 않은 게 

맞춘듯한 가을바람이구나.

할머니와 언덕에 오르면 늘 둘이 앉는 

검고 차가운 금속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두 의자 앞에 서면 쪼르르 앉아있던 백구

네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제자리에서 돈다.








백구들 냄새를 단박에 맡으시고는 몇 걸음도 채 안 가서 

할머니는 내게 낀 팔짱을 풀고 나는 멈춘다.







우리 자리에 앉는다.

주차장 한 구석에 할머니랑 내 자리







한가족은 아니지만 같이 산책하는

좋은 사이 할머니가 내 얘기를 듣고

빙그레 웃는 것이 좋아 자꾸만 설명을 한다.









'나무가 노랗다가 주황 잎도 있고

 아직 초록색 잎도 있어요.'

'강아지들이 두 놈은 수놈이고 두 놈은 암놈인데 

얼마나 착한지 짖지도 않아. 그런데 냄새는 좀 나네 그렇지요?'










할머니는 그냥 웃으신다.

'맨날 아가씨가 와줘서 반가운 거겠지.'라고 

할머니가 작게 말하셨는데









할머니가 웃어서 좋다.

할머니가 웃으면 칭찬받는 것 같아 좋다.

작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는 크게 들려 좋다. 

잠깐이나마 날씨도 읽어드리고,

잠깐이나마 계절도 읽어드리고.









철없는 아이였다가, 옛날 말로 시집가야 할 때 다 된 색시였다가

그저 무언가 보여드리는 게 좋아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이 계절이 끝나고 할머니도 집에 가고 나도 집에 가면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우두커니 앉아있지는 말았으면 해서 

자꾸 산책하자고 조른다. 공기가 얼마나 좋으냐고 덧붙인다.









그걸 아는지 할머니는 '그래, 가. 아가씨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싶어. 어이 나가.' 하신다.








시간이  빠른데 할머니랑 나는 사는 집이 다르다. 

할머니 사는 집도 모르고 할머니 속사정도 모르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렇게 예쁜 가을이 왔는데

이 보이면 좋겠다.








가을 날씨가 보여 참 좋다.

마음에도 보인다니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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