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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Dec 10. 2016

아날로그 내 부모


나 자신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 나르시스트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진실이다.



나의 기관을 통해서 공기 중으로 새어 나오는 에 묻어 너무나도 예쁜 말이 입술 끝에서 ''하고 터질 때,

나는 나의 날숨 속에 몰래 섞여 나와 얼른 흩어지려는 그 말들을 붙잡아 예쁜 찻잔에 담아두고 싶을 때가 있다.



외형이 잘 가꾸어진 예쁜 말이라서가 아니라 수수하고 평범하지만 향해가는 목적지가 예쁜 말.


호흡을 통해 살방살방 쏟아져 나와 여기저기 구슬 지는 그 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나 자신이 세상 그 어떤 이보다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다지 멋은 없는 단어의 꼬리물기일지라도 여유를 갖고 1cm라도 더 가까이에서 대상을 감싸는 말,

그런 말을 하고 나면 나는 '저 말은, 하루의 첫 햇살처럼 그의 곳곳에 스며서 자연히 도 살필 수 있겠구나'한다


그 말들은 가끔 너무 눈이 부셔서 사진 속에, 그림 속에 그리고 음악 속에 담아두고 추억처럼 

못 떠나게 묶어두고만 싶으나 도달한 뒤 넓게 퍼져 작은 풀뿌리라도 내릴 것을 생각하여 

'떠나는 김에 확실히 스며 단단하게 뿌리내리거라' 한다.



세련된 아파트 놔두고 우리 부모님은 어쩌면 오래된 집으로 이사를 왔을까 

한때 많이도 원망했는데 오늘 보니 이 광경 나만 보는 것이 아까우면서도 

왠지 욕심이 나서 혼자 외딴방에 들어앉아 이런저런 생각하며 말없이 음미한다.


'좋은 커텐'이라며 부모님이 신혼인 청춘에 비싸게 해온 것을 아끼고 아끼더니

결국 세월이 묻고 때가져서 노랗게 빛이 바래고 나서야 주섬 주섬 꺼내시고는

아침 볕이 드는 이방 저방 옮겨가며 열심히도 달아놓으셔서 '주책이다' 피식 웃고 잊고 지내다, 

오늘 가만 보니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서 축축 늘어진 커튼 직물 짜임 사이사이로 

손가락 한마디만 하게 아침 볕이 곳곳이 들어, 하얀 벽 이곳저곳을 타고 퍼져서 따스하기도 하다.



보는 것이 아름다우니 생각도 좋은것을 하는구나.



촌스럽고 구식인 아날로그 내 부모

'뭐가 없다, 뭐가 없다' 맨날 없는 것 타령만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만큼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우리 부모.


훗날 나의 아이에게도 나는

'저런 빛바랜 커튼에 걸린 무엇이라도 되는 부모였으면' 한다.

피부깥이 기분 좋게 따갑다. 


에라, 가슴 시리게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사랑하는 나의 예쁜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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