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지나다니는 차를 잡았다.
웃는 얼굴을 하고 목적지를 건네본다.
그곳으로 왜 가야하는 건지는 잘 모른다.
그냥, 그리로 가야만 할 것 같아서.
다들 그리로 향하는 것 같아서.
쉽게 잡히지는 않는다.
히치하이킹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는 거겠지.
지나치게 화려한 모습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허술한 모습도
모두 차를 잡아 타기에는 적절치않다.
저마다에 맞게.
그들 취향에 가깝게.
그러나 그들의 취향을 모르니까
이것 저것 걸쳐본다.
넥타이, 귀걸이, 청치마, 패션잡지,
손수건, 행커치프, 긴머리, 짧은 머리.
주렁주렁 매달고온 잡동사니들 때문에
거울을 들여다볼 틈이 나지 않는다.
차가 지나가면 나는 차려입기 시작하고
나머지 것들은 등뒤로 숨긴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어지러운 것들.
금방이라도 왈칵 쏟아져내릴 것 같지만
일단 내가 그것들 앞에 꼿꼿하게 선다.
그렇게 걷다가 비가 내리고
내린 물이 고이면 잠깐 서서
그제서야 그 속에 비친 나를 들여다본다.
긴장을 풀어본다.
잔뜩 굽은 등, 어쩐지 지쳐보이는 얼굴,
입꼬리가 쳐지니 턱살도 쳐진 것 같아.
양 손을 들어 턱살을 위로 쳐올리며
'웃어. 웃어. 웃어. 웃자. 웃어.'
그러나 손을 떼면 다시 흘러내리는 입꼬리.
짓눌린 것 같다.
입꼬리 끝이 무거워.
놓쳤다.
타지 못했어.
고인 물이 말라 아지랑이가 될 때까지
아스팔트 도로위를 한참을 다시 걷는다.
저 길 옆에 난 들위로 저마다
베낭을 등에 받치고 누워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옆으로 춤추는 분홍색 코스모스 무리.
사람들은 그 풍경에 취해 짧은 감상을 내뱉는다.
'아, 어쩜.'
난 다시 걷는다.
양 옆과 앞뒤로 많은 차들이
내가 가고자하는 방향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으니까.
걸어서가니 길끝이 보이지않아.
계속해서 같은 길 뿐이야.
다들 어디로 닿고 있는건지,
닿고자하는 곳이 보이지않아.
길끝에 닿고서 웃는지, 울고 있는지,
주저 앉았는지, 즐거워 두손을 흔들고 있는지.
보이지가 않아.
길위엔 각자 나와 같은 사람들.
또는 차를 잡아 올라탄 사람들.
막 올라타려는 사람들.
차에 앉은 이들은
다들 옆에 누가 탔는지, 뒷좌석에는 누가
앉았는지도 잊은 것처럼 잔뜩 구겨진
얼굴로 멍하니 엑셀을 밟는다.
운전대는 하나, 엑셀은 네개.
브레이크도 하나.
운전석의 사람은 말이 없다.
아스팔트 도로위에 잔뜩 찍힌
검은 타이어 스키드 마크.
그렇게 달리다가 몇번이고 저 위에서
멈추고 뒤돌아가기도 했겠지.
미끄러져서, 미끄러져 막다른 길로 새서.
뒤를 돌아 기합 한번 넣고
다시 같은 길을 오기도 했을거야.
혹은 다른 길위에 다시 서서
다른 차를 잡아 타고 다함께 웃었는지도.
그중에 비슷한 하나를 잡아타면 나도
그리로 갈 수 있을것만 같다.
그 무리를 따라가면,
그 차에 합승하면,
그 차가 날 태워준다면.
그곳에 닫기만 한다면야 조금 멍한
얼굴에 어딘가 울적해보이는
내 뒷모습쯤은 모른척 할 수 있었다.
상관없었어.
왜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곳이라면
그냥 일단 도착하고 싶었어.
뭐라도 있을 것 같아서.
무지개가 있을 것 같아서.
뭔가는 날 위해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저 멀리 어떤 이들은 샛길로 돌아서 간다.
이것 저것 여기 저기 삐져나오는 것
잔뜩 담은 볼품없이 커다란 베낭을 멨는데도
하늘 아래 맑기만 하다.
맑기만 하다.
저뒤에 있는 이들과 같이 늘 맑지는 않지만
이따금 뒤돌아보며 앞을 보며
진심으로 웃고 있고,
그 웃음이 어쩐지 너그러워.
번쩍 번쩍 좋은 차도 지나간다.
내가 타고 싶던 차.
나를 태워줬으면 하는 그 차.
같은 곳에 닿고 싶어.
그 번쩍거리는 차의 주인도 웃고 있다.
가벼운 옷차림, 시원한 미소가 좋아보여.
햇볕에 이렇게 저렇게 막무가내로
그을린듯한 그런 모습이 싫어.
아니, 싫지만은 않아.
좋기도 해.
아니, 궁상맞아보여.
아니, 사실은 그게 더 좋아보여.
따뜻한 지중해 바다 아래 하얀 모래사장에
누워보는 자연히 물이 들은 그 풍경이 좋다.
햇살 가득 안고 있는
연둣빛 풀밭위를 사뿐히 걷고 있는
저 모습이 난 마냥 부럽지가 않아.
보고싶은 목적지를 보고와서
또 걸어보면 되지않아?
경험이 중요한 거라며.
감정이 소중한 거라며.
순간은 한번 뿐인 거라며.
나도 그렇게 할래.
나도 닿고 싶은 바다에 닿을래.
저마다의 길위 다른 모습이라도
결국 닿는 곳이 한곳이라면
나도 일단 닿고 볼래.
무지개를 보고 싶어.
튼튼하고 빠른 차에 타고 싶어.
그 차를 갖고 싶어.
그 차에 누군가를 태우고 싶어.
영원하지 않아도 좋아.
순간이 평생의 전율을 준다면
나도 가보고 싶어.
나도 그곳에 닿고 싶어.
눈을 감았다 뜨면 내일은
목적지가 보이기를,
내일은 내 맘에 꼭 드는
차를 잡아 타고 함께 갈 수 있기를.
- 청춘. 씁쓸한, 마치 히치하이킹과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