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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태훈 Jun 18. 2021

대학의 이념

대학의 학문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학은 “학문에 이바지하고 학문은 포괄적인 지적 삶의 일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 이러한 지적 삶이야말로 대학의 고유한 생명력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학문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이다. 그 내용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며 보편타당성을 갖추고 있다." 즉 학문은 오직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에 근거하고, 학문적 지식은 의문의 여지없이 그 자체로 명백하다. 그렇기에 학문적 견해는 보편타당성을 갖추어야 한다. 대학이 학문을 목적에 두는 것은 "그 학문이 인간의 지적 욕구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며, 학문은 "모든 학문을 포괄하는 근원적인 것에 대한 내적 지적 욕구로부터 방향 지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학문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지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학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착각과 착각 현상으로부터 “해방시켜”주며,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가장 명확한 판단”을 하도록 돕고, “신뢰성에 바탕하고 그 신뢰성을 창출”한다. 따라서 “학문적 태도와 사고방식에 기초하지 않은 것은 진실로 받아들일 수” 없고, 학문은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하게 한다.


연구, 교수, 그리고 학문의 체계

"연구와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지적 삶을 형성하게 하고, 동시에 진리가 전파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연구와 가르침 그리고 교육의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 교육, 교수는 빠져서는 안 될 "과제"이며, "이 세 가지 목표가 대학의 통합적 전체성을 더욱 활성화시켜주는 요소들"이다. "이 목표를 따로따로 분리시키는 것은 곧 대학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배운 것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주관적 판단으로 필요한 지식을 재창조해내는 능력이며 사실의 핵심을 파악하고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지식은 “생명력 넘치는 연구를 접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며, “스스로 많은 자료를 연구함으로써 가능”하다.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으로, 그 내용은 “강의에서 교수가 그것을 포괄하는 모든 것 즉, 그 내용의 동기가 되는 전체 배경을 간접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명확해”진다. “대학교육은 소수의 천재나 평범한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학문을 하고자 하는 지적 욕구가 있고, 창조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발전적이고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대학의 학문적 가르침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바탕하여 그 지식의 근원을 알도록” 한다. 가르침을 통해 심오한 의미와 가능한 능력을 더욱 넓혀준다고 할 수 있겠다. 대학의 모든 사람은 “실질적으로 열심히 연구함으로써 지적 발전을 기대”하지만 이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대학과 국가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고, 인간성의 계발과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힘쓴다. 이 인간성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가 얼마나 자주 변화했든 간에 그것은 “대학의 본질”로 남아있기 때문에, 대학은 “한 국민의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를 초월하여 이념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연구와 가르침을 전하는 대학교수는 “국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학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주어진 과제에만 충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대학에 “국가 정치와 직접 관련된 사항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또한 국가는 어떠한 경우라도 가르침의 내용을 간섭할 수 없고, 국가는 다양한 직업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최고의 양질의 교육을 받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대학에서 구상하고 국가로부터는 승인만 받는 것이 옳다.


이상 대학과 현실 대학

“학문적 견해에 따르면 학문은 전문지식과 전문능력 그 이상의 것이다. 이 학문적 견해는 객관적 지식을 위해서 주관적 가치판단을 보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정한 자료 분석을 위해서 개개인의 영향이나 편파성을 과감히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공정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 편견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비로소 광신과 맹목으로부터도 해방된다.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한계성의 인식이 진정한 객관성의 유지를 가능하게 한다. 무한한 세계를 전부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바로 초월성을 추구하는 최초의 동기가 된다. 이러한 학문적 견해는 한정된 지식을 추구하는 그 이상의 것이며, 이성을 형성하기 위한 교육이기도 하다.”


학문을 통해 우리는 공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개인적 편견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비로소 광신과 맹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치우치지 않은 판단을 하기 위해 감정을 최소화하지만 여전히 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결정하는 모든 선택은 이성적이기 이전에 감정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세상을 편파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을 지양하고, 법과 사회질서를 따르되, 나의 삶을 향유하는 데 다른 주체에게 내 삶을 맡겨서는 안 된다. 삶은 하나 뿐이라 다른 이들의 삶을 간접체험하고 공감하며 배우는 데 그친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온전히 알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 간극을 학문으로 채울 수 있다.


학문은 전문지식과 전문능력 그 이상이다. 객관적 지식을 위해 주관적 가치판단을 보류한다. 그리고 공정한 자료 분석을 위해 개인의 영향이나 편파성을 과감히 차단한다. 학문적 견해는 한정된 지식을 추구하는 그 이상의 것이다. 학문은 하나의 학문을 통달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과 지혜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한 학문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때,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자신에게 스며든다. 그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 것이다.




References.
1. 칼 야스퍼스(1997). 칼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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