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고 강한 개, 나쵸

by 재쵸

네가 죽었다. 요즘엔 15살은 물론이고 20살까지 사는 개들도 많으니까, 함께할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너는 강하고 용감하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소로 잃는 운 좋은 개였으니까. 운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전부 네 몫이기라도 한 것처럼.



보호소에 간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마침 단기 알바가 끝나 시간이 많던 차였다. 거절당하면 안 가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에게 보호소에 가자고 했다. 원래라면 즉흥 제안을 거절했을 친구는 웬일로 흔쾌히 수락했다. 대중교통을 몇 번씩 갈아타고 한참을 걷고 나서야 보호소에 도착했다. 직원은 내게 마음에 드는 개 사진을 찍어오게 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입양할 생각도 없는데 왜 왔지? 하지만 그냥 구경 왔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찍은 애들은 모두 입양 불가였다. 적당히 둘러대고 가려는데 직원이 다시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다.


다시 사진을 찍어오자 갑자기 직원이 반색을 표했다. 얘는 건강해서 충분히 입양 갈 수 있을 것 같아 한 달을 더 데리고 있었다고, 오늘이나 내일 안락사 예정이었으니 당장 데려가라고. 당황스러웠다. 내가 찍었지만 사진 속 개가 초면이라 더 그랬다. 집이 작아서 큰 개는 못 키운다고 하니 얜 이미 다 컸다고 하고, 이동장이 없다 하니 빌려주겠다고 했다. 여기서 어떻게 더 거절을 하겠는가. 순전히 마지못해서였다. 내 코가 석자인데 너를 떠맡게 된 건.


단기알바가 끝나지 않았다면, 보호소에 가야겠다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친구가 동행하지 않았더라면, 보호소 직원들이 공고 기한을 지켰더라면... 많은 변수들 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우리 삶은 겹치지 않았으리라. 그럼 난 내가 뭘 잃은지도 모른 채, 살아있지만 죽은 거나 다름없는 가짜 생을 살았겠지.


갓 구운 빵처럼 노릇노릇한 머리통, 양면 쿠션처럼 빗는 방향에 따라 드러났다 사라지는 땜빵
커다란 귀, 금색 속눈썹
흰색, 회색, 짙고 어두운 베이지색... 다양한 색이 혼합된 네 털과 등에 난 천사 날개, 태운 빵처럼 코에 거뭇거뭇한 자국

집에 낯선 존재가 있는 건 이상했다. 너도 나를 불편해했고, 나도 너를 불편해했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서로를 의식하던 중, 갑자기 네가 바닥에 놓인 흰색 파일에 오줌을 쌌다. 너는 잽싸게 구석으로 가 벌벌 떨었다. 그러고 보니 데려온 지 하루가 지났는데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왜 그러나 의아했는데 참고 있었구나. 실내배변을 하게 만들려고 여러 시도를 했지만 너는 끝까지 실외배변견으로 남았다.

학대 정황은 더 있었다. 남자를 무서워했고, 길쭉한 물건을 무서워했다. 머리가 긴 여자를 발견하면 쫓아가려고 했다. 그래도 너는 금방 과거를 극복했다. 어느 순간부터 더는 긴 머리 여자를 쫓지 않았고, 남자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긴 물건 앞에 떨지 않았다. 나는 오래전 일도 어제처럼 생생해서 괴로운데, 너는 어찌나 용감한지 그런 것쯤이야 별 것 아니라는 듯 나아갔다.


이발 전/ 감자핫도그 컷/ 빡빡이

입양 다음 날 한 검진에서 심장사상충 양성 판정을 받았다. 치료비만 몇 백만 원에 낫는다는 보장도 없고, 치료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의사는 아니라고 해도 이해한다는 얼굴로 내게 치료하겠냐고 물었다. 웃기게도 당연히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꽤 큰돈이 나왔지만 때마침 딱 그만큼의 돈이 있었다. 마치 모든 게 이 순간을 위해 설정된 것처럼. 씩씩하게 치료를 마친 너는 나를 꼬리를 흔들며 맞아주었다. 그때부터 네가 좋아졌다.


첫 번째 치료가 실패했다. 새로운 병원에서 다시 치료했다. 봄에 데려왔는데 해가 지난겨울에야 완치 판정을 받았다. 흥분해서도 안 되고, 제약은 많은 데다, 12시간 간격으로 매일 약을 먹여야 했던 날들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이제 중성화만 해주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수술을 만류했다. 심장이 약해서 마취 자체가 위험하다면서, 차라리 노견이 돼서 자궁축농증이 생기면 그때 치료하라고 했다.


몇 년 뒤 자궁축농증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고, 잠재적 위험 제거를 위해 도박을 했다. 개복했을 때 자궁 안에는 농이 차 있었으니 적절한 시기에 수술한 셈이었다. 다른 개들이 으레 하는 것들이 너에게는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너는 매번 용감하게 이겨냈다. 그뿐 아니라 방금 큰 일을 치렀으면서 꼬리를 치며 나를 안심시키기까지 했다.


세상이 두려워 좁은 방에 숨죽인 내게 너희가 찾아왔다. 불안 가득한 내 우주에서 유일한 내 편, 너희랑 있으면 내 침대가 요새 같았다. 그렇게 내 작은 방이 우주만큼 확장되면 마침내 세상에는 우리만 남았다.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충분했으니까.

나는 항상 굿 플레이스를 갈망했다. 내게 꼭 맞는 정착지를 찾으면 행복이 시작될 줄 알았다. 하지만 드라마 속 대사처럼 굿 플레이스는 장소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의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굿 플레이스는 이미 내가 떠나온 곳에 있었다. 그러니 호주에서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 지루한 죽음과도 같던 일상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함께 낮잠을 자고, 간식을 나눠먹던 순간들... 나는 너희가 있어야 했다.

한 살 반일 때 만났는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돌아와서 만난 너는 이빨도 흔들리고 몸에 종기도 여러 개가 나있었다. 종기는 눈에 띄게 빠르게 자라났다. 병원에서는 치주염이 있으면 이빨을 더 많이 뽑아야 할 수 있다고 했다. 15개를 발치한 노견의 이야기를 하며 최악의 경우를 상정했다. 종양의 생김새도 심상치 않았다. 최악의 경우에 암일 수 있다고. 그 경우에는 수술 후에도 항암 치료를 해야 하고, 낫는다는 보장도 없다면서. 마취도 두 번이나 해야 했다. 주어진 선택지 중 무엇도 안전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았다. 두려웠다. 너를 잃을까 봐. 내 어리석은 선택이 너를 괴롭게 할까 봐.


너는 두 번의 마취와 한 번의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종양은 암이 아니었고, 흔들리는 이빨만 하나만 뽑았다. 아픈 주사를 맞을 때도 너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이제 굿 플레이스에 어떻게 가느냐만 모색하면 됐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했다. 개들과 떨어지게 됐고, 그동안 온전히 나만 돌보기로 했다. 몸은 편했다. 하지만 마음은 텅 비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잠자리에 누울 때면 항상 너희를 그렸다. 너무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2주만 더 참으면 된다, 그것만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2주를 남기고 네가 세상을 떠났다. 다행인 건, 떠나는 순간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너는 네 마지막을 직접 선택했다. 볕이 잘 드는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함께. 꽤나 멋진 개다운 죽음, 그마저도 너다웠다.

언제나 나를 보던 너

네가 학대당한 불쌍한 유기견인 게 안타까워 '나쵸족의 후예'라는 소설을 쓴 적 있다. 그런다고 네 과거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내가 가진 미미한 재주로나마 서사를 부여하고 싶었다. 그런데 실제의 넌 허구보다 더 강하고 용감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과거로의 해방을 택했다. 하루하루 현존하는 너의 생은 누구의 삶보다 본질에 가까웠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어떤 말로도 너를 담기란 역부족이다.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다듬고 정제해도, 생생히 살아 숨 쉬던 '생' 그 자체이던 너를 온전히 담을 순 없을 테니까. 삶이란 여행을 온전히 즐기다 간 너를.

나쵸야, 너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굿 플레이스였어. 최악의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우주의 행운을 다 끌어오는 너, 내 가장 친한 친구. 네 덕에 사랑을 배웠어. 너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한 존재, 모든 게 변해도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야. 네가 내 굿 플레이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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