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가 쏟아지는 방

by 재쵸

눈알을 뽑아 공작 날개에 달았다. 날개가 흔들릴 때마다 홍채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빛났다. 햇빛을 머금은 호수처럼 찬란하게. 눈들이 깜빡이자 긴 속눈썹이 날갯짓하듯 우아하게 오르내렸고, 속눈썹에 아롱진 핏방울이 날개를 타고 흘렀다.


분명 남자가 클릭한 건 로맨스 소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사랑 얘기는 없고 신체 훼손, 가학적 대사, 반사회적 내용들이 난무했다. 소설 속 화자는 24세를 넘기지 않은 미청년들의 눈알을 수집했는데 홍채만 예뻐서도 안 되고 얼굴만 잘생겨서도 안 됐다. 모든 게 완벽해야만 했다. 청년들은 두려움에 떨며 몸가짐을 조심했지만, 희생자들의 공통점이 밝혀지자 한 번쯤 그에게 간택당하고 싶다는 분위기가 퍼졌다. 차츰 사람들에게 그는 잔혹한 범죄자에서 아름다움을 공인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그는 수집한 눈알들로 공작의 날개를 장식했는데, 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눈알들은 그의 요깃거리가 됐다. 눈알을 혀로 감질나게 굴리다가 종래에는 왈칵 터트렸다.

남자는 호기심에 '살로 소돔'을 읽고 식음을 전폐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담백한 문체가 잔인함의 완충제 역할을 했고, 뛰어난 필력으로 고어를 예술처럼 포장해놨지만 남자에게는 아무렇게나 싸지른 배설물처럼 보였다. 스크롤을 마구 내리자 그 끝에는 팬과 안티의 설전이 핑-퐁 탁구공마냥 오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이끼처럼 자리 잡은 '저를 유린해주세요.'와 같은 댓글들은 본문만큼이나 적나라했다. 남자가 혀를 차며 '글이나 댓글이나 수준이 똑같'까지 썼다가 모두 지웠다. 빈 댓글창에 흐릿하게 매너 있는 댓글 문화를 만들자는 글귀가 나타났다. 뒤로 가기를 누르려는데 짤막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일부만 보고 단정 지으면 평생 모르고 살겠지. 문장만으로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변태 새끼. 클릭 한 번에 모니터는 이전 화면을 출력했다.

새빨간 공간에서 새까만 머리를 빛내며 새하얀 그가 말했다. "줘." 도톰한 입술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남자는 그를 다시 듣고 싶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석류 같은 입술을 다시 열어준다면, 간질거리는 귀에 과즙이 터지듯 그의 음성이 스며든다면, 바싹 마른입 안에 석류 알갱이들을 쏟아준다면. 아마 아까워 먹지도 못하고 입 안 가득 머금은 채 갈증에 잠식당하리라. 언젠가 알갱이들이 타 들어가는 오감을 적셔줄 거라 굳게 믿고서. 하지만 아무리 발걸음을 내딛어도 그는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았다.



⬇'석류가 쏟아지는 방'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뒷 이야기는 밀리의 서재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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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 출처 https://wallpapersafari.com/w/HFhZ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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