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서울/정상화개인전/2021.5.22-2021.9.26
전시장은 단색의 작품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추상미술을 자주 접해보진 않은 나로선 당황스러웠다. '이 작품 안엔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일까?' 어떤 작품은 파란색으로, 어떤 작품은 갈색으로 화면이 뒤덮여있었다. 자세히 보면 작품 안에 작은 격자무늬들이 행과 열을 이루고 있었다. 작품들은 대게 크기가 컸는데, 큰 화면을 이 격자무늬들이 꽉 채우고 있는 것이다. 정상화 작가는 대작만을 고집했다. 작품의 크기만큼 작가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색조 추상화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청색의 '무제 90-10-5' 작품을 보면서다. 화면을 꽉 채운 청색의 단색조 작품은 그의 고향 마산의 앞바다의 색이다. 반복되는 청색 격자무늬지만,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작품을 바라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묘하게 다른 청색들이 함께 일렁이며, 파도를 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고향의 색을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엔 실로 청색이 많다. 평면의 화면에도 색과 정서가 담기면 충분히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구나.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렸던 그는 작품에 자신의 핏줄과 맥박을 담았다.
그의 작품은 노동집약적이다.
'뜯어내고 메우고'를 지독히 반복한다. 예술도 어쩌면 하나의 '노동'인 것이다. 고령토를 바르고, 치마 주름잡듯이 균열을 내고, 고령토를 뜯어내고, 메우고 이 작업을 40여 년 해왔다. 90세가 넘은 지금도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엄청난 집중력과 고도의 체력을 발휘하여 대작을 만들어가는 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가히 결과물보다 고정이 숭고하다. 누가 예술가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했을까. 묵묵히 자기의 자리에서, 수십 년간 작업을 반복해 온 그는, 원할 때 쉴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사제는 정상화의 작품에서 '구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했다. 그의 작업 과정은 '노동' 나아가 어쩌면 '수행'인지도 모르겠다.
같지만 다르다.
격자무늬의 단색화 작품들이 모두 비슷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상화는 단 한 번도 같은 그림을 그린 적 없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남 다른 것'을 찾아 떠났고, '남 다른 것'을 시도했다. 지금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오롯이 홀로 작품을 일구어나간다. 고령의 나이에도 다부진 말투로 그는 말한다. "같은 것을 계속하는 것은 용서 못 한다. 변해야 한다 현재도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비단 한 화가에만 속한 말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