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순에 어떤 수련을 하고 있을까?

국제갤러리 박서보전 /2021.9.15-10.31

by 베티
지우고 또 긋고, 지우고 또 긋고

한지 위로 겹겹이 올라온 선엔 묽은 땀방울이 서려있다. 이제 몇십억을 호가하는 박서보 작가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묘법은 그의 아들에게서 비롯됐다. 연필로 그리고, 지우개로 지우는 과정을 반복했던 아들의 모습을 눈여겨본 것이다. 그렇게 연필로 선을 긋고, 지우는 과정을 부단히 반복했다. 지우고 또 긋고, 지우고 또 긋고. 틀려서 지우는 게 아니라 했다. 반복하기 위해서다. 반복하면 자신을 비워낼 수 있다고 한다.


Park_Seo-Bo_working_on_a_piece_of_his_Ecriture_at_his_Hapjeong-dong_studio_in_1977.jpg 출처 : 위키백과


색채 묘법으로, 자연과의 일치를 꿈꾸다

박서보 작가의 묘법은 초기의 연필 묘법, 80년대 중기 묘법, 2000년대 이후 색채 묘법으로 나뉜다고 한다. 현재 삼청동에 위치한 국제갤러리에선 색채 묘법 작품 16점이 전시되어있다. 연필 묘법은 지우고 또 그으며 수련에 집중했다면, 색채 묘법을 통해서 작가는 자연과의 일치를 꿈꿨다. 직접 물감을 배합하여 색을 만들었고, 작품명을 색의 이름으로 명명하였다. 도식화된 색상명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이름을 따왔다. 벚꽃색, 유채꽃색, 홍시색, 단풍색, 황금 올리브색 등등. 이름만 들어도 자연의 향기가 난다. 삼청동 풍광이 훤히 보이는 미술관 창도 그의 작품에 생기를 더해준다(삼청동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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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순이 된다면, 무엇에 열정을 쏟고 있을까.

그는 구순의 현업작가다. 그럼에도 지팡이를 짚어가며 작업에 몰두한다. 하루 약 5시간 동안 선을 긋는다고 한다. 지구에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 열심을 다한다고 한다. 고령의 나이에도 수행하듯 작업하는 정상화 작가와 오버랩됐다. 누가 나이가 들면, 열정이 시든다고 했을까.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까지 작업하는 이들을 보며, 어쩌면 청춘은 감히 나이로 재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마음속엔 순수하고, 호기심 많고, 열정적인 청년이 살아있음에 분명하다. 나는 구순이 된다면 무엇에 열정을 쏟고 있을까. 어떤 수련을 하고 있을까. 구순의 나를 꿈꿀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800px-Park_Seo-Bo_working_at_his_studio_2019.jpg 출처 : 위키백과
이미지 1.jpg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유튜브《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中》


우리 함께 색으로 치유받아요.

참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의 마음은 분주하다. 세상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을 때가 있다(사실 내가 지금 그렇다.) 하지만 우리 곁엔, 우리의 안식을 진심으로 바라는 작가가 있다. 박서보 작가는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치유받길 원한다. 그것만으로 왜 이렇게 참 감사하고 위안이 되는지. 그래서 작품에 고요함과 차분함만 남겨 두었나 보다. 우리의 묵은 고뇌를 자연스레 벗어둘 수 있도록. 나도 전시관 한편에 근래에 나를 괴롭혔던 고민 한가득을 놓아두고 왔다. 어쩌면 이미 강렬한 작품의 색채가 나의 고뇌를 흡입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즉, 흡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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