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요?

서울북시립미술관/영국테이트미술관특별전/21.12.21-22.5.8

by 베티
시대의 예술가들을 매혹한 '빛'


아름답고 반짝거리지만 좀처럼 잡을 수 없는 빛. 그래서 더 궁금하고, 매혹적이다. 예술가들에게도 '빛'은 거부할 수 없는 존재였다. 빛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그들의 예술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왔다. 서울북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빛: 영국테이트미술관 특별전'에선 18세기를 시작으로 20세기까지, 약 200여 년의 시간 동안 배출된 방대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빛의 색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빛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 점차 변화해 왔음을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한 세월 동안 빛은 때론 종교적 의미를 가졌다. 때론 과학적으로 탐구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이는 문명의 발전과도 궤를 같이한다.


빛, 신의 창조물

'태초에 빛이 있었다'라는 구절로 성경은 시작된다. 빛은 신이 창조한 첫 번째 작품이란 이유로 신성한 존재였다.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대조됨을 성경에선 여러 번 찾아볼 수 있다. 빛은 '선'과 '희망'을, 어둠은 '악'과 '절망'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늘 '빛'을 갈망해야 했다. 18세기의 예술가들에게도 빛은 곧 신이었다. 신이 빛을 창조하는 그 장엄한 순간을 작품에 세세히 담았다. 제이콥 모어는 <대홍수>라는 작품에서 노아의 대홍수 시절을 표현했다. 어두운 배경 가운데 한 가닥의 빛이 비치고 있다. 빛은 재앙 뒤 축복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상징한다.

T04164_10.jpg 조지 리치몬드, 대홍수(1826) / 테이트
T12758_10.jpg 제이콥 모어, 대홍수(1787) / 테이트


빛, 연구의 대상

빛의 화가의 대가 윌리엄 터너의 연구자료가 집약되어 있다. 터너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빛은 신의 작품이자, 신의 소유물이었다면 이젠 개인이 치밀하게 연구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다. 이성적인 사고가 주목받는 계몽주의가 싹을 튼 시대이기도 했다. 터너는 19세기에 발전한 색채 이론과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빛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기하학과 사물의 원근법을 시작으로, 빛의 효과를 지독히도 연구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빛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갖추게 됐고 '빛의 대가' 경지에 이르게 됐다.

윌리엄 터너, 빛과 색채-대홍수 후의 아침(1843) / 북서울미술관


의 인상

원래 인상주의를 좋아하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도 가장 좋았던 섹션이었다. 이번 전시회의 메인 작품인 존 브렛의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이 있는 섹션이다. 19세기 영국 예술가들은 자연으로 나가 빛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을 세세하게 포착하기 시작했고, 빛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면모 또한 작품에 담았다.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에선 바다 위로 내리쬐는 빛과 바다의 물결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국 남서부 해안을 항해하며 매일매일 빛, 바다, 대기를 관찰하며 습작해나갔을 화가가 상상이 되었다.

존 브렛,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1871) / 테이트

영국 화가들의 빛에 대한 실험은 추후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데 여기서 클로드 모네를 빼놓을 수 없다. 모네 작품으로는 보험평가액만 500억 원이 넘는 <옙트 강가의 포플러><포흐빌레의 센강> 두 작품이 고이 모셔져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포흐빌레의 센강이 가장 인상 깊었다. 두텁지만 담백한 붓질로 어떻게 그리 아침 안개가 자욱한 센강의 분위기를 담아낼 수 있을지. 그곳에 마치 서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여행을 가면 꼭 아침 안개 자욱한 센강을 두 눈으로 보리라 다짐했다.

Monet_Poplars_on_the_River_Epte.jpg 클레드 모네, 옙트 강가의 포플러(1891) / 테이트
l-0719-00-000003-hd.jpg 클레드 모네, 포흐빌레의 센강(1894) / National Gallery


'빛'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요?

이외에도 이번 전시에는 거장 43명의 110여 개의 작품이 빛을 발하고 있다. 계몽주의가 싹트던 시절에 되레 자연의 불가측성을 그려낸 존 마틴. 자연의 특질을 연구하며 진실된 빛을 그려내고자 했던 존 컨스터블. 실내의 빛을 카펫에 담아낸(처음에 작품인지 전혀 몰랐다는) 필립 파레노. 20세기에 들어서자 신의 창조물이었던 빛은 이제 인간의 창조물이 된다. 현대 예술가들은 인공조명을 활용하여 예술작품을 재창조했고 그 실험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예술가들이 집요하게 탐구하고, 관찰하고, 그려내려 했던 빛은 지금까지 하나로 정의되지 않았다. 개개인의 작품에 수천 개의 언어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빛은 무슨 의미일까? 뛰어난 걸작들을 통해 너무나 가까이 있어 평범하게 느껴졌던 일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된다. 나에게 빛은 생명이 아닐까. 살아있기 때문에 이 일상의 빛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작품 속 빛을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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