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스페이스 K 서울/이근민 개인전/21.03.10-05.18

by 베티


정신적 세계와 장기들의 뒤엉킴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당혹감을 잊지 못한다. 심장과 남근이 엉켜있는 모습. 여기저기 뿜어져 나오는 불그스름한 핏자국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찬찬히 들여다봐야 했다. 보이지 않는 정신적 세계와 인체 내부의 장기가 뒤엉킨 것 같은 모습들. 이 모든 작품엔 작가가 경험한 환각의 세계가 거침없이 담겨있다. 자신을 규정화 한 병리학적 진단에 보란 듯이 저항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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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망상의 배열(2021)
수술(2021)
다친 바보(2021)


정의와 분류의 폭력성

실제 이근민 작가는 수년 전 "경계성 인격장애"를 진단받았다고 한다. 사회가 규정하고, 의사가 진단 내린 '진단명'과, '진단 번호'는 그에게 폭력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정의'와 '분류'는 결국 사회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과연 일방향적으로 개인에게 부여할 권리가 있을까? 병명 진단 후 사회적 시선 또한 작가에겐 폭력이자 억압이었다. 실제로 작가에겐 병리적 진단이 자신에게 '통보' 기능 이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환각의 경험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당시의 경험을 작품에 거침없이 담아냈다. 작품을 그려나가며 그는 스스로를 치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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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의 경험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스케치 해나갔다(환각 다듬기 / 2021)


또 다른 소수자를 대변하는 작가

특히 소수자에겐 사회적 정의가 더욱 폭력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성 소수자, 여성, 어린이 등 여러 사회적 약자가 있지만, 자신과 같은 병리적 진단을 받은 소수자를 대변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핏자국 가득한 그의 작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정돈되지 않고, 거침없고, 즉흥적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아픔을 가능성으로 승화했다. 누가 감히 그를 딱딱한 진단명과 진단 번호로 규정할 수 있을까.


엉켜버린 기억(2021)


나는 패키징 됐으나, 예술로 해체화했다.

사회 속에 속한 한 개인으로서 정의되고 분류되는 것을 당연시했다. 태어나자마자 집단 속 개인으로 살아온 것이 워낙 자연스러웠던지라 오히려 정의되고 분류되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런 내가 나를 스스로 정의하려니 너무 어렵다. 학생, 취준생, 직장인 이런 사회적 정의를 해체하고 나면 나는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작가는 사회적으로 패키징 됐으나, 예술로 해체해 나갔다. 그는 아프지 않았다.


전시 전경 1


전시 전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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