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실의 천사, 흙으로 영원을 빚다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노실의 천사(~22.05.22)

by 베티

어느덧 찾아온 봄의 항연이 펼쳐지는 요즘. 덕수궁 돌담길에도 붉은 꽃들이 돋아나고 있다. 시립미술관 아담한 길을 따라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깥의 봄은 잠시 잊힌다. 어두운 조명과 고요한 적막이 감도는 실내에선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노실의 천사'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긴 항해를 거쳐 터를 잡다

권진규의 작품들은 규모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1950년도부터 70년도까지의 141점의 작품이 유족에 의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됐다. 이 작품들은 긴 항해를 거쳐왔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작품들을 양도했으나, 미술관 건립은 무산되고 지난한 소송을 거쳤다. 그렇게 권진규의 작품들은 대부업체의 담보로 잡혀있었다. 그가 사랑한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살아생전에도 삶은 만만치 않았을 터였다. 죽음 이후에도 긴 항해를 거친 그의 작품들이 이제는 터를 잡아 더욱 빛나길 바라본다.



불교에 참작하며 수행하듯 예술하다

우연히 불상 제작에 참여한 그는 조각에 입문하게 된다. 불교와 조각은 그에게 운명인 셈이다. 불교 신자였던 작가의 생을 착안하여 이번 전시 또한 입산(入山, 1947-1958, 일본 유학기), 수행(修行,1959-1968, 귀국 후 10년), 피안(彼岸, 1969-1973)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바깥 생활과 단절하며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했다. 예술가가 아닌 수행자로 불리길 바랐다. 실제로 그의 하루는 철저하게 규칙적으로 이루어졌다. 아침(6-8시), 오전(10-13시), 오후(15-18시), 저녁(20-22)으로 하루 일과를 나눠 아침과 밤에는 구상과 드로잉을, 오전과 오후에는 작품을 제작했다. 지난한 수행을 10평 남짓의 아틀리에에서 고독하게 해 나갔다.


손(권진규, 1968)


흙으로 영원을 빚다

권진규는 테라코타의 대가였다. 점토를 빚어 구운 테라코타 상으로 여성 두상, 흉상, 동물상 등이 주를 이룬다. '지원의 얼굴'은 교과서에 실려 유명하다. 지원은 그의 제자이다. 실제 제자들을 주로 그리며 그는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지원의 얼굴(권진규, 1967)

여성상을 포함한 그의 작품의 인물들은 다소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움푹 파인 눈, 둥그런 머리,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눈빛 등 '이상적인 인물상'을 통해 그는 영원을 추구했다.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눈빛의 인물상에 절대 사라지지 않은 영원성을 담았다. 돌이나 브론즈와 다르게 잘 썩지 않은 테라코타와 방부 능력이 뛰어난 건칠로 작품을 만든 이유 또한 그의 작품들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내면의 집요하게 탐구하다

후기엔 자소상을 많이 빚었다. 자신의 형상을 빚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내면을 탐구했을까. 자소상을 빚어내는 과정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아가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가사를 걸친 자소상'에서의 권진규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 그의 노실에서 수행을 통해 빚어낸 수많은 조각들은 그의 예술혼을 보여준다. 오로지 일생을 예술에 불태운 그의 자소상은 모든 것을 초월한 흡사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의 모습 같다.


가사를 걸친 자소상(권진규, 1969-1970)

고독한 아웃사이더

권진규는 소위 비주류 예술가였다. 당시 주를 이루었던 '추상'이 아닌 '구상 조각'에 매진했다. 서양의 미술을 모방하기에 바쁜 당시의 미술계를 비판하며, 주류 미술계와 선을 긋고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그의 작품은 대중에게도 외면 받았다. 당시 한 교회로부터 작품의뢰를 받아 예수상을 조각했으나, 예수의 모습이 기괴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결국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은 그의 작업실 한 켠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건칠을 반복했다. 영원히 살아남을 그의 작품들을 만들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권진규, 1970)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칠을 되풀이하면서 오늘도 봄을 기다린다."-권진규. 그의 노실에서 태어난 천사(=작품)들은 이제 이곳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다. 그가 꿈꿨던 봄은 바로 오늘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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