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것도 되고 누구의 것도 아닌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박효빈작가전/~22.06.03

by 베티

새로운 전환점에 선 작가가 낳은 실험 가득한 작품

갤러리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의 작가 지원 방향성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갤러리의 경우 가능성이 있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주로 발굴하는데, 사루비아에선 작품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는 작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 작가인 박효빈 작가는 A, B, C 그룹 중 C 그룹에 속하며, C그룹은 "신진과 중진 사이에서 작업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는 작가"라 한다. 어찌 보면 기존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넘어, 새로운 실험을 담아낸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작가는 어떤 실험을 통해 한 단계 도약을 했을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갤러리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싱그러운 향이 퍼지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여러 시공간이 편집된 풍경화

박효빈 작가의 작품은 처음 보는 지라, 작가의 어떤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는지는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주로 좋아하는 풍경을 사생 방식으로 그려 나간 작가는 관망하는 태도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에 단조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풍경화를 담아낼 대상을 선택하고, 이를 원경의 거리에서 담아내는 시선에 한계를 느낀 것이다.


이번 전시 하이라이트인 <Promenade>만 보아도 작가가 기존의 단조로움을 과감히 벗어던진 것을 알 수 있다. 한 작품이지만, 한 작품처럼 보이지 않은 다양한 풍경과, 구도, 시점들. 관람자는 한 작품 안에서 원경, 중경, 근경을 요리조리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동일한 시점에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풍경, 인물, 사물 등을 이리저리 편집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켜켜이 이어나간 덕분이다.


Promenade, 2022, oil on juta scozia, 220×1000cm


#1. 먼저 좌측 그림을 보면 울창한 침엽수림 입구에 의문의 남자가 서있다. 깊이가 전혀 가늠되지 않은 침엽수림. 하지만 숲에 비해 매우 작게 표현된 남자로 인해, 숲의 이면이 매우 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KakaoTalk_20220516_222359984_13.jpg Promenade, 2022, oil on juta scozia, 220×1000cm


#2. 이전의 침엽수립이 끝을 알 수 없는 느낌이라면, 중앙 그림의 공원은 좀 더 나에게 확대되어 다가왔다. 좌측의 의문의 남자보다, 공원의 사람들은 좀 더 밝고 평화로워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림 앞쪽의 울창한 덤불은 공원 속 사람들과 나 사이에 바운더리를 친다. 곳곳에 그려진 까마귀는 의문스러운 느낌을 준다. '과연 진짜 평화일까?'

KakaoTalk_20220516_222359984_12.jpg Promenade, 2022, oil on juta scozia, 220×1000cm


#3. 마지막 우측 그림을 쫓아갔을 때 드디어 작품 속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덤불이 나에게 거리를 두었다면 두 갈래의 길이 놓인 그 숲은 나를 품으며 초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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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를 바라보며, 내면을 향하다.

박효빈 작가는 풍경을 사랑했다. 사생을 통해 풍경을 그린 이유는 풍경 너머 이면의 것을 보고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빛, 구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에 떠오르는 주관적인 느낌, 감정, 생각 등을 개입하면 더욱 다채로운 풍경이 되었다. 외부(풍경)를 바라보는 동시에 내면을 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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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할 수 없는 우리

그녀는 풍경 이외에도 정물화나 까마귀 그림 또한 많이 그렸다. 까마귀는 작가가 자주 그리는 대상 중 하나다. 사실 까마귀는 '길조' 또는 '흉조'로 이분법적으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깨어나 까마귀의 다채로움을 보았다. 결국 까마귀를 향한 시선은 작가 자신 그리고 우리를 향한 시선이 아니었을까. 우린 누구의 것도 되고, 누구의 것도 아닌처럼.


"헤르만 헤세 소설에서 까마귀는 아웃사이더이기도 하고, 인간 문명 세계로 들어온 인간의 친구이자 동시에 멸시하는 자, 미지의 장소에서 온 전령이자 마술사, 예술가 등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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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까마귀, 2022, oil on canvas, 45.4×52.8cm/ (우) 슬프고 아름다운 것, 2022, oil on canvas, 45.4×52.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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