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밉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싫다.
간지 터지게 써보려고 단어를 고르는 일도 지치고
썼다 지웠다 문장을 뒤집는 일도,
다 쓰고나서 자책하지만 지쳐서 걍 내비두는 일도
나는 왜 나의 뇌와 심장을 스스로 고문하고 있는가
사실 그보다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진지한 얘기니까 이제부턴 좀 진지하게 써볼게요.
근데 진지하게 쓰는 일이 지금은 좀 지쳐서
반진모(=반 진지 모드)로 써볼게요.
‘글’이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를 끄적인 지가 이 년쯤 됐다.
글을 쓴다는 건 뭉뚱그려진 생각들을 한데 모아 언어로 옮기는 작업. 일상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감정의 부유물과 생각의 파편들이, 라벨이 붙어 딱 딱 분류가 된다. 한동안은 차곡차곡 정리되는 걸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고, 내 심장과 뇌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를 이전보다 잘 이해하게 됐달까.
3,000m만 뚫어도 석유는 충분히 쏟아져 나오는데 시추기가 고장이 났나 아주 지구 내핵까지 뚫고 들어갈 기세다. 석유를 캐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심부 유전보다도 깊이 내려가게 되면 시추공(뚫은 구멍)이 싸그리 다 붕괴될 수가 있다. 내가 지금 그런 느낌이라고요. 물론 석유를 캐본 사람들은 없겠지. 나는 캐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독도에 살았었는데 그때 잠깐 엄빠 몰래 구경하러 갔다가 시추기를 조작하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쳐서 체험을 한번 해봤다. 물론 구라다. 쏘리~ 나는 그냥 평생 이런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런 사람에 가까웠던 것 같다.
글을 쓸 때는 무거운 생각, 부정적인 감정을 주로 정리하게 된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행복했던 기억이나 즐거웠던 감정들은 잘 저장해두지 않는다. 기쁨은 늘 스쳐가는 바람인데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긴 싫다 해야되나. 여행지에서 “사진으로 안 담겨~ 눈으로 담아 눈으로” 하는 우리 아빠랑 비슷하다.
문제는 슬픔이다. 나를 서서히 좀먹는 녀석. 내가 사진으로 남기게 되는 녀석. 엑스레이를 찍고, MRI 스캔실에 집어넣고, 해부대 위에 올려서 실체를 뜯어보게 되는 녀석. 글을 쓰다보면 내과 의사에 빙의될 때가 많다. 속을 다루니까 내과고, 아픈 걸 기록하니까 의사다.
왜 그러는 거지.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그건 아닌 것 같고.
나를 힘들게 하는 정체 모를 지명수배범들을 싸그리 붙잡아서 심문해보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그게 요즘 나를 더 힘들게 해.
내가 쓴 글이 나를 잡아먹는다.
소조 전의 생각이 그렇게까지 무거웠던 건 아니다.
갖가지 지점토와 찰흙이 덕지덕지 붙으면서 상상 이상으로 질량이 늘어나고, 최종적으로 뚱뚱한 형태가 빚어진다.
가볍고 싶은데 세상이 무거워서 같이 늘러붙는 기분.
보통 나는 내가 힘들어서 힘든 게 아니라, 세상과 타인이 앓는 열병을 보면서 같이 힘들어 한다. 내가 그렇게 공감 지수가 높은 인간이었나? 아니면 나 어디 문제 있나? 순전히 이유가 궁금하다 나도..
세상을 잠깐 잠깐 들여다보면 가라앉은 사람들의 숨방울이 여기저기서 떠오른다. 잘못도 안 했는데 묘막한 고통의 바다에 던져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 건지. 그게 나를 너무 짜증나게 만든다. 화가 박박 나고 속이 터져. 산에 올라가 조물주를 향해 소리 지르고 싶어. 신의 위치에선 들어본 적 없을 희대의 개쌍욕을..
어쨌거나.. 요즘의 심각한 고민이자 문제는
뭐 해먹고 살아야 할지도 아니고,
사랑 타령이나 인간 관계에 대한 현타도 아니고,
글이(사실은 내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는 것.
잠깐 글이랑 거리두기 할까 싶기도..
그만 무거워지고 싶다.
옛날에 산 바지가 하나도 안 맞아.
비유 말고요 여름 동안 실제로 살 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