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by 짠맛 나는 파도

오래전 가을을 스쳐갔던 두 친구가 있었다.

유달리 균형 감각이 좋았던 H와 그 반대편에 서있는 V.

V라는 별칭에는 기호 그대로의 의미를 담았다.


우리는 그날 은행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고

붉게 물든 청계산을 배경으로 여의천을 산책했다.


여름을 사랑했던 V는 가을이 오는 게 싫다고 했다.

한 해가 소실점을 향해 힘없이 끌려가는 것만 같다고.

싱그러운 초록을 상실해버린 저 산의 풍광이 쓸쓸해 보인다고 말했다.

겨울을 좋아하는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 잠잠히 걷기만 했다.


H는 특정 계절을 편애하지도 핍박하지도 않는 쪽이었는데, 내 식대로 말하자면 자기 주관이 없는 심심한 인물이었다.


다만 V가 던져놓은 말에는 가을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는지, 평소 입버릇처럼 사용하던 ‘그럴 수 있지’ 대신 자신의 언어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슬쩍 H 쪽으로 가까이 붙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H는, 단풍은 식물의 잎이 자신의 원래 색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더이상 광합성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니 엽록소를 분해하며 처음의 색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봄과 여름을 뒤덮은 초록은 사실 그 고유색을 가리는 ‘장막’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자신은 그런 초록도 좋아한다는 배려의 말도 함께.



뾰로통해진 V는 그 단풍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결국 갈색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지 않냐고 물었다. 겨울에는 잎이 없지 않냐고. 말끝이 하강하듯 떨어져서 누구를 향한 물음인지 혼잣말인지 모호했으나 H가 대답을 이어갔다.


H는 나무도 방학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웃으면서 말하고는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한 번 더 웃고는 말았다.



그 뒤 우리 셋은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서 귀여운 오리 가족을 구경하고, 또 백로가 물고기를 낚아채는 장면을 기대하며 한참 동안 지켜보고는 (아쉽지만 그 장면은 안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자리가 3차쯤에 이르면 V는 꼭 풀어진 발음으로 느릿느릿 사자후를 외치곤 했다.


나는~~~~~

세상이 너무 너무 X 같아

그냥 다같이 멸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옆에서 계란말이를 집어 들던 H가 뭐가 그렇게 X 같은데?라고 되물었고

V는 대답 대신 소주를 마시고는 갑자기 멸망과 열망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을 주욱 늘어놓기 시작했다.


멸망의 망은 ‘망할 망‘이, 열망의 망은 ‘바랄 망’이 쓰인다고 말했다. 멸망과 열망은 자음 하나 차이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 말이 될 수 있냐고 물었다. (그건 진짜 혼잣말인 듯했다.)

멸망을 열망하는 자신이 망망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창조해 봤는데 늬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건 진짜 물음이었으나 나는 그럼 망망대해는 무슨 망이 쓰이는 거냐, 망망은 어감이 쫌 귀여운데? 따위의 생각이 들었으므로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는 절망과 희망에 대해서도 아주 친절하게 강의를 해주었다. 각각의 망이 무슨 한자일 것 같냐 묻길래 절망에는 ‘망할 망’이, 희망에는 ‘바랄 망’이 쓰이는 것 아니냐고 의심을 매단 채 대답했다. (참고로 V는 한문학과였다.)


V는 손가락을 까딱까딱 가로저었다.

웃기게도 절망에는 희망과 똑같은 바랄 망이 쓰인다고 했다.

그때의 망은 희망을 의미하는데 절망은 모든 희망이 끊어져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에 가까운 한자어라고,

그러니까 절망은 멸망은 또 아닌데 그래서 더 짜증난다고, 짜증난다고 연거푸 토해내고는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다.



H가 희망에 관해 무어라 말을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V같이 삐죽 튀어나온 부류의 사람들이 보다 취향인 쪽에 가까웠다. V와는 지금도 간간이 연락을 주고 받으며 생일 정도는 챙기는 사이로 남아있으나, 고저가 없던 H와는 시간의 줄무늬를 따라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가끔 이렇게 오래전의 장면이 눈에 밟힐 때가 있는데

H의 속에는 뭐가 들어있었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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