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언어의 온도
가끔 아이들의 카톡을 몰래 본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앞서 가고 있었다. 아이들 세계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카톡으로 친구와 싸웠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은 터라 매우 궁금했다. 카톡은 판도라의 상자였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톡을 열어보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이들의 세계는 내가 아는 아이들 모습과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이런 말을 썼던가?
“요즘 아이들이 이런 것에 관심이 있었던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딸아이와 친구가 싸우며 쓴 내용이었다. 발단은 딸아이가 그 친구를 두고 다른 친구와 게임을 한 것에 있었다. 아이 친구는 자기가 빠진 것을 알고는 딸아이에게 가시돗힌 말을 마구 퍼부었다. 게다가 욕까지 썼다. 우리 집에 자주 오고 늘 수줍게 인사하는 친구이기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이 글은 그 아이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님을 우선, 분명히 밝혀놓는다.)
놀이터에서 욕을 쓰는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우리 아이들이나 그 친구들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인정하지만 고슴도치 엄마의 착각이었다. 우리 아이가 쓴 욕은 아니야. 아이 친구일을 간섭해서는 안돼 하고 슬쩍 넘어가 보려 했지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고민을 하다 육아 멘토인 친구들에게 고민상담을 했다.
“친구 엄마에게 알려주고 욕을 하지 말게 해야 할까?
“그 친구와 거리를 둬야 할까?
이 두 가지 질문에 친구들은 같은 답을 했다. 친구 엄마에게 얘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른들의 감정싸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를 통해 그 친구에게 얘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친구의 조언대로 아이에게 언어의 온도에 대해 설명해주기로 했다.
나: 친구가 욕을 해서 걱정이라고 했지?
딸: 응. 자꾸 나쁜 말을 써..
나: 말에도 온도가 있는 거 알고 있어?
딸: 말에 온도가 있다고?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과 언어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쁜 말은 아주 차가워서 사람들 사이를 차갑게 만들고, 좋은 말은 따뜻해서 사람들 사이를 따뜻하게 한다고. 특히, 욕은 아주 차가운 말이기 때문에 듣는 너희 귀는 물론 말하는 너희 입을 얼려버린다고. 그래서 친구들이 차가운 말을 하면 그렇지 않도록 너희가 잘 얘기해줘야 한다고. 특히, 언어의 온도는 계속 쌓이고 쌓여서 너희들이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내 말의 뜻을 잘 이해해줬다. 가끔 카톡을 훔쳐볼 때면 아이들의 말의 온도는 늘 뜨뜻미지근하다. 친구들이 험한 말을 쓰더라도 쉽게 따라 하지 않고 있다. 가끔 내가 험한 말을 쓸 때면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지적한다. 아이들이 따뜻한 말을 잘하는 편이라 친구들도 아이들을 좋아한다. 얼마 전 선생님과의 상담을 했다. 친구들이 친해지고 싶은 아이로 우리 아이들을 많이 꼽았다고 했다.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많이 하는 친구로도 우리 아이들이 꼽힌다는 것이다.
비단, 아이들의 세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내 주변에도 늘 차가운 말을 내뱉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곁에는 늘 찬 공기가 맴돈다. 사람이 다가기기 힘든 냉기다. 언어의 온도를 높이면 인생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