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생일을 앞두고 말린 미역을 꺼냈다. 미역 한 움큼을 조심조심 집어 냄비에 넣고는 따뜻한 물을 쪼로록 부었다.미역은 서서히 물을 머금어가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원래 모습이 생각 안 날만큼 커진 미역에 소고기를 넣어 달달 볶은 뒤 물을 부었다. 미역국이 보글보글 끓자 온 집안에 온기와 구수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미역국을 좋아하게 된 것은 20대 때 아주 사소한 대화로부터였다. 여느 때처럼 친구와 카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옆으로 커다란 첼로 가방을 둔 여자 두 명이 앉아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라 그녀들의 이야기가 자꾸면 들려왔다.
"요즘 무거운 첼로 들고 다니느라 힘들어 죽겠어."
"그래? 미역국을 먹어봐. 나 매일 미역국을 먹는데, 한결 몸이 가벼워졌어."
"미역국이 영양제도 아니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진짜야! 미역국이 몸에 얼마나 좋다고~안 먹은 날은 다르다니까!"
그녀들의 대화를 듣고 난 뒤 '미역국=건강음식'이라는 희한한 고정관념이 생겼다. 아프거나 기운이 없으면 왠지 미역국을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 뒤로 자주 미역국을 찾게 됐다. 따뜻한 미역국을 한 사발 들이켜고 나면 뱃속이 따뜻하고 든든해지며 힘이 나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미역국 끓여줄게. 딱 일주일만 와있어.
2013년 아이들이 생각보다 빨리 태어나 나만 먼저 퇴원하게 됐다. 산후조리원에 혼자 가기는 그렇고 해서 우선 집에 가기로 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친정집에 와있으라고 했다. 사실 친정집에 가는 것은 무척 고민이었다. 당시 엄마는 말기암 투병 중이었기 때문이다. 내 고민을 아는 엄마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몸조리하는 것을 못 봐줬었어.
그게 서러워서 나는 딸이 아이를 낳으면 꼭 잘 보살펴줘야겠다고 생각했어.
엄마가 몸조리해줄 수 있게 딱 일주일만 와있어. 그 이상은 엄마도 힘들어."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커다란 솥에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매일 아침이면 큰 솥에 있는 미역국을 따뜻하게 데워 식탁에 놓아주셨다. 매일 먹는 미역국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맛이 진해지는 것 같았다. 따뜻한 국물 한 입 머금으면 온 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그 따뜻함을 차곡차곡 쌓고 나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채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가 끓여준 마지막 미역국이 됐다. 지금도 미역국을 담는 엄마의 작은 어깨와 뒷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당시 엄마는 암투병으로 부쩍이나 몸이 쇠약해졌었다. 그럼에도 딸이 혼자 밥을 먹지 않도록 미역국을 싹 비울 때까지 내 앞에 앉아있곤 했다.
누군가에게 소박한 국일 테지만, 나에게 미역국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음식이다. 몸이나 마음이 힘들 때면 습관처럼 미역국을 끓인다. 아이가 아플 때, 생일처럼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미역국을 끓인다. 우리 아이들도 미역국을 끓이는 내 뒷모습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했듯이.
<소고기 미역국 맛있게 끓이는 법>
1. 말린 미역은 따뜻한 물로 불리기!
말린 미역이 물을 머금으면 몸집이 2~3배로 커지니 한웅큼 정도만 불리는 것이 좋아요. 이때, 따뜻한 물을 넣으면 불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요.
2. 소고기는 양지머리로!
국거리는 양지머리가 제일 좋아요. 핏물을 뺀다고 물에 오래 담그지 마세요. 육즙이 날아갈 수 있거든요. 고기를 키친타월에 10분 정도 받춰둔 뒤 살짝 눌러 핏물을 빼주세요.
3. 소고기와 미역 볶을 때는 국간장을!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국간장 1~2스푼을 넣어 소고기에 간을 한 뒤 달달 볶아주세요. 고기가 살짝 익으면 미역을 같이 넣고 볶아주세요. 볶는 것은 10분 정도면 충분해요. 볶을 때는 타지않게 물을 조금씩 넣어주세요.
4. 보글보글 끓으면 마늘 한스푼과 액젓 한 스푼!
미역이 푹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끓여주세요. 이때 마늘을 1스푼 정도 넣으면 미역의 비릿함을 줄일 수 있어요. 액젓 한스푼을 넣으면 깊은 맛이 나요. 여기에 추가 간은 소금으로 해주세요. 간장을 넣으면 국물색이 너무 진해져요.
5. 다음날이 더 맛있어요!
미역국은 끓은 당일보다 다음날 한번 더 끓였을 때가 더 맛있어요. 오래 끓일 수 록 깊은 맛이 우러나와서 그런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