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개학이 미뤄졌다. 설마설마했는데 방심하던 사이 또다시 코로나의 위험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8살 아이들은 아직도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못해봤다. 온라인 수업의 지루함 속에서 친구들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온전하지 않더라도 이제 곧 시작될 학교생활을 꿈꾸며 말이다.
어제저녁, 아이들에게 개학이 1주일 더 연기된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아이들 얼굴에 실망이 가득 찬다. 왜 다시 연기됐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무어라 대답할지 고민이 됐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오빠와 언니들 때문에?'
'잠시 방심했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긴 연휴를 답답함 속에서도 참아낸 아이들을 보며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말문이 턱 막혔다. 8살 아이들도 놀고 싶다. 그나마 고작 노는 곳이 아파트 놀이터다. 나가더라도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과 너무 모여있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흥에 겨운 젊은이들은 마스크도 없이 어깨가 닿는 밀폐된 공간에서 신나게 놀았다. '나는 젊으니 걸려도 그냥 지나가는 정도일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겠고 '설마 무슨 일 있겠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잠깐의 선택으로 생긴 결과라기에 지금의 모습은 너무도 씁쓸하다. 클럽에 간 손주는 할머니에게 코로나를 전했고 잠깐의 흥을 즐긴 장교는 수많은 군인들이 꿈꿨던 휴가를 빼았었다. 우리는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가 두려워졌고 매일 발표되는 코로나 확진자 수를 숨죽이며 보게 됐다.
'시민의식'같은 그럴싸한 단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신나 하며 장만한 새 책가방과 실내화에 더 이상 먼지가 쌓여가지 않도록 이제라도 '조용한 전파'가 멈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깐의 흥은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제라도 책임 있는 오빠, 언니가 되어 늦기 전에 부디 검사를 받아주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