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와의 동거
'로미'와의 동거를 시작한 지 8개월이 돼 간다.
와이프가 사랑하는 '로미'는 똑똑한 로봇청소기다. 10년 전 멍청한 로봇청소기를 사용해 본 후 정말 멍청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후 로봇청소기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최근 로봇청소기가 많이 똑똑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한번 로봇청소기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해외에 살다 보니 가성비 좋은 샤오미 가전제품을 많이 사용 중이다. TV, 저울, 전동칫솔, 온도계, 인터넷 공유기, 선풍기 등 집안 곳곳에 샤오미 제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 회사의 제품들로 통일을 하니 하나의 생태계가 구축되어 가전제품들을 핸드폰 앱으로 손쉽게 제어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한국에 산다면 다른 선택지가 많겠지만 해외의 경우 생소하고 다양한 브랜드 중 어느것이 정답인지 선택이 힘들다. 저렴하면서 성능이 검증된 제품이 바로 샤오미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손쉽게 구매 가능하다 보니 샤오미 제품들과 함께 해외살이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 중 특별히 똑똑하고 애착이 가는 두 녀석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TV에게는 '오미'라는 이름을, 와이프가 가장 사랑하는 청소기에는 '로미'라는 이름을 각각 부여하였다.
필리핀에 거주하게 되면서 10년 해외살이 중 가장 큰 집을 빌릴 수 있었다. 필리핀은 가사도우미가 매우 저렴하기는 하지만 와이프가 다른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것을 꺼려해서 직접 청소하는 것을 선택했다. 바닥 면적이 넓어 청소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무엇보다 창문을 통해 먼지가 많이 들어와 하루만 걸레질을 안 해도 바닥에 먼지가 소복이 쌓였다. 필리핀에는 창문을 하루종일 닫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창문을 열지 않고 사는 것은 상당히 답답하다. 어떻게든 모기장을 구해서 창문에 붙이고 창문을 열게 된다. 마닐라 시내의 차량들이 배출하는 먼지가 상당해서 창문으로 먼지가 많이 들어온다. 손으로 매일 청소하는 것은 너무 많은 노동력 낭비라는 생각에 로봇청소기를 들이기로 결정하였다. 다행히 방마다 문턱도 없고 바닥이 전부 대리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로봇청소기를 작동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이렇게 우리 집에 들어온 '로미'는 이전의 멍청했던 로봇청소기와는 사뭇 달랐다. 스스로 지도를 제작하고, 청소계획을 세우고 먼지를 빨아들이고 바닥을 닦았다. 제일 똑똑한 기능은 걸레를 스스로 빨아서 건조하는 기능이다. 걸레질이 힘든 이유는 무한 반복으로 걸레를 빨아야 하는 것인데, '로미'는 스스로 걸레를 세탁하여 청소했다. 청소를 마친후에는 걸레 건조까지 깔끔하게 알아서 척척이다. 물론 걸레를 빨 때 필요한 물을 채워주고 걸레를 빨고 난 후 오수는 비워줘야 하지만 걸레를 대신 빨아준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돈이 원수어서 최상급 모델을 들이지는 못하였다. 가장 필요한 걸레 자동 세탁 기능이 있는 모델 중 가장 저렴한 모델을 선택하다 보니 완전히 똑똑하지는 않았다. 가끔 전선을 먹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다 멈추는 경우가 있고 장애물을 넘다가 걸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똑똑하다고 할 수 있다.
필리핀은 가사도우미가 저렴하다. 비단 가사도우미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은 대부분 저렴하다. 많은 가정이 가사도우미를 고용한다. '로미'는 우리집 가사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아직까지 가사도우미를 부르지 않고 8개월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와이프가 농담으로 우리 집에서 제일 똑똑한 게 로미라고 자랑한다. 로미가 뽈뽈 거리며 청소를 할 때면 와이프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로미'를 바라본다. 제발 오래오래 아프지 말고 계속 우리 집 청소를 담당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