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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Nov 11. 2020

020

엄마의 크리스마스 상자를 열며

엄마는 크리스마스를 무척 좋아했다. 집안 곳곳에 다양한 장식 - 산타, 리스, 포인세티아 등의 오브제는 늘 엄마가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작년에 엄마와 오랜 시간 운동을 같이 다닌 K 아주머니는 "그 크리스마스 빨간 꽃 보니까, 엄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꽃시장에서 집에 두는 거 사고 꼭 나도 챙겨주고 화분에 심어줬거든."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한 집에 오래 살았고, 우린 짐이 많은 가족인데, 특히 엄마의 계절마다 데코 용품도, 이게 한 두해 쌓이니 엄청나게 늘어났다. 보통의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삶, 주택도 완전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대부분 상업 시설 사이의 주택이었기에 엄마는 우리 집 바깥의 벽에도, 담에도 무언가 표시를 해놨다. 그게 큰 리스이기도, 어떤 해에는 줄 타고 내려오는 산타이기도 했다.


지난봄 집의 많은 상자를 정리하다 수많은 크리스마스 용품이 든 상자를 열고, 누군가는 한 숨을 쉬고, 빛바랜 것들은 다 버리자고, 했지만 난 일부를 제외하곤 버릴 수가 없었다.


분명 쓸 수 있는 게 많은데! 겨울이 오면,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잘 쓸 수 있을 텐데 ㅡ일단 한쪽에 두자고 하고 ㅡ 저 상자 열어서 집에 둘 것이든, 누굴 주는 것은 일단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늘 엄마가 하던 행동이다.) 오전에 시간 여유가 있던 오늘, 큰 두 개의 상자를 열고 크리스마스를 느꼈다.


택배 상자 두 개를 옆에 두고 내가 그걸 보며 전달하고픈 이를 생각하며 상자에 담았다.


버리로, 새로 사긴 너무나 쉽지만, 새로운 쓰임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누군가의 생각, 노동, 행동, 택배 (돈) 이 필요하다.


엄마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해서 그즈음 늘 내놓던 산타 쿠션, 눈사람 인형, 빨간 식탁보. 모든 게 추억이고 기억이 되었다.


한 상자에 담긴 리스, 조명, 조화 포인세티아는 단양의 명옥 이모님에게, 또 다른 한 상자는 엄마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수녀님께 보내려고 택배를 싸놨다.


그 수녀님께는 오랜만에 메시지 드리며 "혹시 이런 크리스마스 용품을 보내드려도 될까요?"라는 나의 메시지에 "놀라우신 하느님
기다릴게요. 딱 필요한 거였어요.~~^^
좋아요. 보내주세요.^^"라고 답장이 왔다.


분명 생각하고, 물건을 쟁여뒀다가 다시 나누고, 택배 상자를 찾고, 포장해서 주소 적어 보내는 일은 무척 번거롭지만 기꺼이 나누고, 그걸 나눠 즐거워하는 이를 생각하면 그 번거로움은 기쁨이 된다. 오늘부터 나는 캐럴을 듣기 시작했다.


겨울의 시작, 나눔의 의미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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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음반, 2018년 크리스마스 때 이 공연을 보여줘서 엄마도 같이 봤다. 오늘은 '엄마랑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언제였지?' , '그때 뭘 했지?' 이런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루가 갔다.


https://m.youtube.com/playlist?list=PLE65DC2ABB9E03C35


안내문이나 광고지 예쁜 엽서에 끈을 돌돌 말아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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