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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Nov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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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돌아보는 나의 2020년 신앙생활

#2020년그리스도왕대축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성서 주간)이라고 불리는 오늘.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다음 주부턴 대림으로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된다. 한 해의 끝, 성당 시간, 영적 시간 안에 일 년을 돌아본다.



01.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의 프란치스코 교황님 집전 미사

02. 총 11박 일정 중에 3번 교황님을 멀리서 뵀다. 미사에서, 알현식에서, 주일 마사 후 삼종기도에서. 올초를 생각하면, 올 한 해를 돌아보면 가장 놀라웠던 시간이 이탈리아에 있던 2월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씨씨에 계시던 이사님의 도움으로 축일 날 아씨씨에 있을 수도 있었고, 엄마와도 공동으로 아는 분의 형님이 로마에서 유학 중이셔서 그분과도 만났었다. 혼자일 뻔했던 축일 저녁을 함께 먹기도.

3. 성 요셉 대축일에는 아빠에게 바티칸 앞 성물방에서 산 올리브나무로 만든 #잠자는성요셉성인 상을 선물했다. 교황님도 근심 걱정 없이 잠을 자기 위해, 기도하고 청하는 것을 그 성인상 아래 적어두신다고 해서 인기가 더 많아진 성요셉상. 내것은 10유로대 작은 걸로 샀다. 나중에 아빠 돌아가시면 저건 내가 가져야지, 생각하며.

04. 교황님의 기도. 저 텅 빈 광장에 홀로 계신 교황님. 그날의 기도문을 평화방송에서 바로 해석해줬는데 그걸 받아 적으며 봤다. 여전히 코로나가 계속된다는 것 절망스럽기도 하고 •• 이게 벌써 7개월 전의 이야기라니.

05.미사가 중단됐던 시기, 생일에도 미사 드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수도원에서 열리는 미사에 J선생님의 초대로 다녀왔다. 새벽 미사로 시작한 생일날. 엄마의 연미사와 나의 생미사를 올려주신 분들과의 미사.

06. 좋아하는 분의 어머님이 투병 중이실 때 용기 내어 주소를 여쭤보고 책과 (엄마에게 쓰려고 했지만 못 쓴) 카드를 보냈었다. 용기내고 마음을 전하는 일은, 올해도 미루지 않고 즉시 행했다.

07. 엄마의 성가 책에서 발견한 반가운 엄마 글씨. 신부님 강론을 녹음해서 공유하거나, 노트에 펜으로 쓴 문장들이 많았던 엄마. 돌아가신 뒤에 발견하는 문장은 마치 하나하나가 엄마의 유언 같이 반갑다. 08. 오빠의 묘 개장/이장. 엄마 생신날 두 분이 함께 만났다는 것 자체가 올 한 해의 기적 같은 일.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었다.

09. 엄마와 오래 알고 지내는 수녀님의 추천으로 랜선 시편 읽기 모임에 합류했다. 올해는 성경공부나, 미사, 봉사 등을 평소의 평균보다 훨씬 덜 해서, 무언가를 좀 하면서 대림 시기를 맞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공유되는 이들 하나 없는 사람들 안에서 좀 더 자유로이 일상 나눔, 신앙의 이야기를 하고 지낸다. 수녀님의 분별력, 지혜에도 매주 감동하며 오늘이 6주 차.

10. 어제의 미사. 제대 앞의 꽃은 늘 아름답다. 전례의 꽃꽂이는 훗날 나이 들면 꼭 봉사하고픈 부분이다. 노란 꽃이 왕관이라고 수녀님이 말해주셔서 알았다. 미사 해설 봉사였는데 해설지가 없이 간 걸 미사 10분 전에 알았다. 정말 당황하고, 머리가 하얘진 시간. 초반에 큰 실수를 한 번했지만 미사에 맡기고, 매일 미사 앞을 보며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때론 벼랑 끝에 던져야 비로소 알게 되는 일, 행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올해 마지막 미사에서 깨닫게 됐다.

<좋은 지 나쁜 지 누가 아는 가>라는 류시화 작가의 책에선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란 제목의 글에서 '지금 나에게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암소'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안전하고, 그 안에 머물며 나에게 투명한 벽이 된 상황, 그런 것들.. 해설지가 없어도 해설은 할 수 있는 건데 매번 그게 적힌 종이가 없으면 못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비단 해설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일상에서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것이 무언인지 질문을 던진, 올해의 마지막 주일 미사였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949713&memberNo=2021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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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던 대녀가 올 초 취업해 월급 받고 멋진 식당에서 사준 한 끼, 대녀이지만 언니인 이와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며 걷던 가을 산책길, 개장과 이장을 준비할 때 말로, 기도로 방법을 알려주던 분들, 열심히 활동하던 시절의 종교 안 동료들 덕분에 미사가 중단되었을 때도, 무언가를 잃지 않고, 잊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어쩌면 가장 종교가 필요한 시기가 요즘이 아닐까 생각하며••• 반드시 공동체 미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일상 안에서 피어내고, 품어내는 것들의 중요성을 돌아본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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