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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1주의 성당일기

by 이지나

12/3


겨울의, 대림시기의 성전은 성당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보여주는 (대림환, 대림초, 구유 등의 모습) 재미가 있다.


매달 첫 목요일의 성시간을, 2020년엔 12월에 처음으로 다녀왔다. 성시간 내내 올해 다시 본 <미션> 장면이 생각났다. 예수회 가브리엘 신부가 성체를 성광에 담아 총탄이 오가는 중에도 간직하고 있다가 결국 총에 맞는 장면이.


어떤 시간으로 누군가를 기억하고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어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을, 어떤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인지도, 잊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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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엔 반드시 시간을 내서 한 해를 돌아봐야 한다. 나의 시간, 나의 에너지, 달란트 등등을 어디에 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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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며칠 뒤면 두번째 초에 불이 켜진다. 대림시기는 기다림의 시기. - 성광(聖光, 라틴어: Ostensorium)은 로마 가톨릭교회, 구 가톨릭교회, 성공회 등의 기독교에서 성시간, 성체 강복, 성체 거동 때 성체 현시에 사용되는 전례 용구이다. 성체에 관련된 신심과 전례행위들이 생기면서 일반 사람들에게 성체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중세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성체 대신에 성인의 유해나 유골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대체로 성체를 담는 용기로 쓰이는데 그 사용이 제한되어 있다. 성광의 라틴어 명칭 ‘Ostensorium’은 ‘Ostendere(보이다, 보여 주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가톨릭 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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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 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힘을 줍니다.”(시편 23:4)


목요일의 시편 줌 모임에서 읽고 나눈 구절. 신앙 안에서 만난 이들이 나의 막대와 지팡이가 되어주는 경험을 한다. 시편은 총 52주동안 만나는데 어느새 8주차 만남이었다. 다른 주간엔 21~22장, 등으로 하나 이상을 읽는데 이번 주엔 23장 하나였다. ‘그리 길지 않은데, 대체 왜?’ 라는 생각으로 나와 시편 읽기하는 수녀님이 이 스케줄을 만든 수녀님에게 여쭤보니 “23장은 길지 않아도 그 의미가 너무 깊어서, 그리고 하나하나 다 외울만큼 좋아서•• 그래서 한 주에 한 장으로만 구성했어요.” 라고 대답하셨단다. ^^


그러고보면 나도 이 시편이 노래로 만들어진 <주님은 나의 목자> 정말 자주 불렀고, 좋아하는 성가다. 그저 노래인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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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대림 2주, 두번째 초에 불이 켜졌다. 그게 사람이든, 어떤 특별한 날이든 ㅡ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이 좋다. 그 기다림이 저 멀리있는 날에게 미리 받는 선물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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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해설 봉사로 미사드렸는데 미사 후 유독 엄마와 가까이 지낸 분들과 많이 마주쳤다. 다들 나를 보는 걸 엄마 보는 것처럼 반가워하던 분들. 반가움은 사실 억지로 꾸며낼 수 없는 감정이다. 눈이나 몸짓, 행동에 드러난다.


목욕탕을 운영하는, 엄마와는 등산회에서 만나던 분과 마주쳤을 땐 “궁금했어요. 요즘 통 못 봤네요!”, “아, 저도 기억했어요. 요즘•• 시기가 시기라.. 잘 지내세요. 그래도 건강 잘 챙기세요.” 라는 말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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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연탄봉사를 기획하고 구글폼으로 만든 양식을 돌렸다. 그리고 1주일 사이, 원래 1000장을 목표로한 기부금이 약 4000장을 넘길 만큼 왔다. “님 같은 분이 있어서 세상이 아직 살 만하네요.”, “좋은 기회에 동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등등의 말들. 코로나 확산과 여러 염려 속에서도 성탄절 다음 날 자발적으로 돈도 내고, 몸도 쓰려는 연탄 산타들과 잘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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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대림시기라 다행이다. 한 주, 한 주 가는 것을 초에 불이 붙는걸로 알게 되고 시간 감을 촛불의 수로도 알게 되니까! 하나가 더 켜지면 주변이 더욱 환해지는 것처럼 빛의 신비를 알아가는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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