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톺아보기 2] '명반', 그 자체.
나는 '사랑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왜 수많은 소재 중에서 '연애'라는 소재가 가사 있는 노래의 90%를 차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몇 년 전에 '하이바이, 마마!'라는 드라마를 매주 정주행한 적이 있다. 49일간 부활한 김태희, 그리고 그에게는 딸 서우와 남편, 그리고 그 남편에게는 새로운 여자친구(였나? 재혼했었나? 잘 기억 안난다)가 있었다. '자신이 있을 자리', 즉 자기를 사랑해줄 사람을 49일 내에 찾으면 계속 부활시켜준다는 신의 제안. 그러나 결국 김태희는 남편과 그 새 아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보고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고 저승으로 다시 돌아간다. 여기서 들었던 의문, 왜 '사랑'을 '연인', 즉 '남녀'간의 사랑으로 제한하는가? 김태희를 계속해서 그리워하던 부모의 '사랑', 그리고 그의 빈자리를 계속해서 느끼던 친구의 '사랑'은 고려해주지 않는가... (실제로 마지막화에는 부모의 비중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라는 생각을 했다. 꼭 '연인간의 사랑', 즉 '연애'만이 사랑은 아닐 텐데.
그러한 나의 의문과 정확하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앨범이 바로 아이유의 'Love poem'이다. '사랑 시'라는 제목부터 사랑을 표방했지만 음반은 의외로, 흔해빠진 자신의 '연인'에게 구애하고, 그 사랑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연애' 노래로 가득차 있지 않다. 작사가 이지은 특유의 솔직하면서도 독특한 표현법으로 그 나름대로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앨범 속에 들어있다. '연인' 간의 사랑을 넘어 '나'에 대한 사랑, 사랑을 시작하는 설렘, 사랑하는 이를 위한 마음,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재회 등 다양한 감정이 나름대로의 멜로디를 통해 음반에 담겼다.
그와 별개로 앨범으로서의 완성도 또한 매우 훌륭하다. 물론 6곡밖에 수록되지 않은 미니 앨범(EP)이긴 하지만, 락, 발라드, 블루스, 팝과 같은 다양한 장르가 아무 위화감 없이 조화롭게 엮여있다.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가사뿐만이 아니라, 멜로디의 통일성 면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티스트' 아이유의 앨범 중에서는 최고의 명반이라고 생각하는데, 유기성은 좋았지만 앨범이 담고 있는 메세지와 더불어 조금 혼란스러웠던 'CHAT-SHIRE', 개별곡으로의 퀄리티는 매우 뛰어나지만 곡들 간 유기성이 아쉬운 '라일락', 정말 잘 만들어졌지만 조금 덜 다듬어진 듯한 느낌이 드는 '팔레트'에 비해, 앨범적으로 다양한 곡을 하나의 메세지로 아름답게 포장해둔 'Love poem'은 그 어떤 아티스트의 앨범에도 꿀리지 않는, 그야말로 '명반'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이유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랑은 어떤 형태인지 한 곡씩 뜯어보기로 하겠다.
1. unlucky: '나'에 대한 사랑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불안해 돌아보면서도
별 큰일 없이 지나온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그래 볼게 음
앨범의 인트로곡. 유기성에 목숨 거는 아이유답게 상큼한 분위기로 앨범을 연다. '기를 쓰고 사랑해야 하는 건 아냐'라는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가사로 시작하지만 'CHAT-SHIRE' 'Palette'에서 계속해서 이어져왔던 '자신'에 대한 갈등의 종지부를 찍는 곡으로, '남들과 같지 않아도 괜찮아. 나만의 속도로 가면 돼'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아이유의 '자아성찰' 시리즈는 라일락에서도, 그 뒤로도 계속 등장하는 노래지만 그 중에서는 가장 통통 튀는 느낌이라 좋아한다.
2. 그 사람: 떠나간 '그'에 대한 사랑
오 날 덥게 하던
따뜻한 손 마디마디
애써 밀어내 봐도 떨쳐지지 않아요
떠나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블루스로 담아낸 곡. 개인적으로 블루스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선호하는 트랙은 아니다. 앨범 스트리밍할 때도 건너뛰었던 적이 좀 많아서... 못 만든 곡은 아닌데 상대적으로 앨범의 다른 트랙이 너무 빛나는 것도 있어서 좀 덜 듣게 되지 않나 싶다.
3. Blueming: '새로운 형태'의 사랑
우리의 네모 칸은 bloom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
향기에 취할 것 같아 oh-ooh
오직 둘만의 비밀의 정원
정말 이 곡을 들으면서 느끼지만 이지은의 작사 능력은 정말 미친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사람, 좋아하는 사람, 설레이는 사람과의 '메세지'로 대화할 때의 그 설렘, 두근거림, 떨림과 같은 마음을 정말 부드럽게 잘 표현해냈다. 처음 이 곡이 발표되었을 때는 그냥 예쁜 사랑노래인가 하고 들었었는데, 이런 가사의 뜻을 알고 나서는 가사 하나하나에 공감해가며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이지은 가사의 특징, 다양한 오마주, 일상적인 표현, 이중적 표현 등 다채롭게 해주는 장치들이 정말 세심하게 들어가있다.
4. 시간의 바깥: '한계를 초월'한 사랑
잠결에도 잊을 수 없었던
너의 이름을 불러 줄게
다들 잘 알고 있듯이 '너랑 나'의 배경, 8년 후의 미래에 등장한 '너랑 나'의 후속곡, 재회를 그린 이야기. 솔직히 말해서 앨범의 분위기와 살짝 동떨어져있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데, 뭐 앨범이 하나의 주제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만큼 앨범의 전체적인 '사랑'이라는 메세지에서 나온 '팬서비스' 곡이라는 느낌이 들긴 한다. 근데 그게 뭐 어쨌는가. 시간을 초월해서 드디어 재회한 두 사람의 이야기. 이것만으로도 이미 이 곡의 존재의의는 충분하다고 본다. 저번에 골든아워 콘서트를 극장에서 봤을 때 두 곡의 순서를 바꾸어 '시간의 바깥' -> '너랑 나'로 공연하여, 재회한 두 사람이 부르는, 추억하는 '너랑 나'의 구성은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5. 자장가: '흘러가는 이'에 대한 사랑
My lullaby baby
Sweet good night
무서운 꿈은 없을 거야
너의 끝나지 않는 긴긴 슬픔을
이제는 그만 보내 주렴
아티스트 아이유가 가장 좋아하는 듯한 스타일의 곡. 나도 좋아하지만 우리 누나가 굉장히 좋아하는 곡이다. 힘들 때 위에 인용해둔 저 가사를 듣고 정말 많이 울었다고. 긴 설명이 필요없이 그냥 온몸으로 '느끼며 흘려보내면' 되는 곡이다. 많은 생각을 흘려보냈을 때 찾아오는 잠처럼.
6. Love Poem: '사랑', 그 자체.
너의 긴 밤이 끝나는 그날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곳에 있을게
자장가가 누나를 울린 곡이라면 Love poem은 나를 울린 노래. 그동안 가사를 신경쓰면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좋은 날'이 차이는 내용인지도 고등학교 때 알게 된 사람...)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결론은 결국 Love poem이 그리는 '이러한 모습'이 아닌지, 하고 생각한다.
앨범명을 뻔뻔하게 ‘사랑시’라고 지어 놓고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담은 것들이 전부 진심이기 때문이다.
아이유의 이 문구에 참 공감한다. 세상의 수많은 '사랑' 노래를 뛰어넘어 '사랑'이라는 단어의 재해석, 꼼꼼한 해석을 통해 나온 이 앨범은 작품성과 대중성 그 모든 것을 사로잡은 그야말로 '명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앨범에 긴 설명은 필요없다. 그 자체를 나름대로 느껴준다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