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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더 이상 날 애칭으로 부르지 마

'인형의 집'을 나온 노라

by 은정원 Mar 04. 2025

                

제이는 남자에게 매달렸지만, 남자는 확고했다.

폭풍 같은 눈물도, 나약함을 드러내는 표정도, 과거를 재생하는 대사도 소용없었다.

너가 이러는 거 정말 이해가 안 돼. 곰탱아 제발 이러지 마, 너가 이러면 우린 어떻게 해.”

제이의 말에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

“이제 곰탱이라고 부르지 마.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이제 우린, 각자 잘 견디는 걸로 하자.”


더 이상 애칭으로 불리길 바라지 않고, ‘우리’의 세계를 떠나간 연인.

제이는 이런 결말이 낯설지 않았다.          




노라는 중산층 은행원의 아내로, 남편과 세 아이를 돌보며 행복하게 지낸다.

남편은 노라를 ‘나의 작은 종달새’라 부르며 귀여워하고 보호하는데, 사실은 그녀를 아이처럼 다루며 순종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 노라는 남편의 입원비가 필요했을 때,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여 비밀리에 돈을 빌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돈을 빌려준 은행 직원이 어떤 일로 해고당할 위기에 처하자, 노라에게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녀의 비밀을 남편에게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노라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을 용기가 없다.

(다름 아닌 남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고, 여성이 아버지나 남편, 아들 등 남성 가족의 보증 없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던 시대에, 나름의 방법을 모색하여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상황인데도, 이 사실을 털어놓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니, 이해가 필요한 대목이었다.)

결국 돈을 빌려준 은행 직원은 노라의 남편에게 편지를 보냈고, 남편은 노라가 한 일을 알게 된다.

남편은 노라를 이해하기는커녕,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졌다며 분노한다.

이후 은행 직원이 편지를 회수하고 문제가 해결됐지만, 노라는 남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이 그저 ‘인형’ 취급을 받아 왔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꾸며진 역할놀이였다는 걸 깨달은 노라는, 문을 ‘쾅’ 닫고 집을 떠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문 닫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었다.

철렁하고 내려앉은 그 느낌이 기억나지만, 솔직히 아주 오랫동안 그 기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선 설핏 아는 것 같은데,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궁금했다.

노라는 어쩌면 조금 더 참고 견딜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남편은 여전히 노라를 ‘나의 작은 종달새’로 여길 것이고, 아이들과 집은 안정적일 것이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던?

서로에게 맞추고, 참고, 기다리는 것, 말이다.

나는 의심해 본 적도 없이 그 말을 믿었다.

엄마가 그렇게 살고 있고, 할머니도 그렇게 살았고, 절에 가면 큰스님이 그렇게 말했고, 교회 가면 노래 가사에도 그렇게 나오고, 학교에선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고, TV에 나오는 예쁜 연예인이나 인기 많은 강사들도 그렇게 말했다.

<사랑이란 나를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 지속되는 관계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수반된다.>

제대로 된 사유 없이 나는 이미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랑이라 믿어온 것들이 사실은 두려움이었다는 걸.

상대가 나를 떠날까 봐, 실망할까 봐, 미움받을까 봐, 혼자가 될까 봐... 이런 온갖 두려움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순응하게 만들고, 감정을 억누르게 만들고, 결국 나 자신을 잃어가게 했다는 걸.  

   

언제부터였을까?

인어공주처럼 내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은.

꽤 오랫동안,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물론, 지금 기분이 좋은지 아닌지조차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 희미한 사람이 되어가면서, '괜찮아'라는 말로 자신마저 속이며 살아왔다.

편치 않은 침묵과 감정의 억제, 내 안의 나는 점점 시들어갔다.

스스로 만들어낸 인형의 집 속에 틀어박힌 채.


인형의 집을 떠나면서 노라는 말했다.

“나는 먼저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해요.”라고.

    

나역시 그 목소리를 들었다.

새벽별의 속삭임처럼 아주 고요하고 선명하게.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야 해.”     


아직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사랑은 ‘서로에게 맞추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내가 모르던 전제가 있다.

세상(=타인)에 맞추고, 참고, 기다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제이는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동안, 제이의 시선은 언제나 노라와 같은 방향이었다.

곰탱이가, 제이와 곰탱이로 만들어진 ‘우리’라는 세계를 떠나는 순간에서야, 제이는 이 이야기 속에 다른 방향의 시선도 있다는걸 절감한다.     


제이는 생각했다.


나는 나만 생각했구나.

그가 나를 위해 한 일들을 이해하기는커녕 아름다운 방식으로 하지 않았다고 윽박지르면서, 영원히 ‘우리’ 안에서 내 말에 따라주는 곰탱이로만 살길 바랐구나.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자기이해가 필요한 사람은 어쩌면 노라보다도 남편일지 모른다.     


제이는 깨닫는다.


곰탱이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각자 잘 견뎌서 서로가 모르는 각각의 미래에 가 있을 거다.


찬 물로 세수를 하고서, 제이는 처음처럼 다시 운다.  



- 다음 주에 만나요 -


이번 주 이야기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A Doll’s House)』
대문 사진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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