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가득한 生에 대한 탐구
제이는 혼자 있는 시간을 배워가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일부러 약속을 잡거나, 일에 파묻혀 바쁘게 지냈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온전히 혼자서 시간을 견뎌보기로.
그리고 그 시간을 조금 덜 버겁게 만들기 위해 책을 펼쳤다.
『모순』.
‘모순’이라니.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있고, 옳고 그름이 명확해야 한다고 믿었던 어린 날의 제이였다면, 이 단어를 구체적으로는 실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이라면 인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늘 어딘가 모순적이라는 것을.
너무 미운데 보고 싶고, 사랑한다면서 불행을 바라는 마음.
그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떠오를 때마다, 제이는 아팠다.
저는 아픈 게 싫으면서, 그 사람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자신이 한심하고 미웠다.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만 세상(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거라면, ‘에잇, 그냥 다 망해버려라’라고 제이는 체념하곤 했다.
여기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인이 있다.
안진진.
성이 '안'이라 평생을 본인의 이름을 부정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
진진은 김장우와 나영규, 전혀 다른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한 사람은 자유롭고 즉흥적이지만, 불안정했다. 다른 한 사람은 계획적이고 안정적이지만, 너무 단정하달까? (아무튼, 끌림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읽다 보니, 『모순』은 연애소설이 아니었다.
만우절에 쌍둥이로 태어난 진진의 엄마와 이모.
너무나 다른 남편을 둔 덕에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그들과 그들의 가족.
방랑자 아버지를 닮은 듯한 진진의 남동생과 반듯한 이모부를 닮은 듯한 이종사촌 여동생.
어느 날 아침 불현듯,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고,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 진진은, 그들의 삶을 관조하고, 자신과 그들의 관계를 반추하며 이런 결론에 이른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실제의 삶이 이렇게나 한 쌍으로 정확히 이분되어, 옜다 여기 창(矛: 모)이다, 옜다 이쪽은 방패(盾: 순)다,라고 세팅되진 않겠지만, 본질이 아닌 것들을 걷어내면, 실제의 삶에서도 내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의 대척점들을 수없이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진진은 엄마와 이모, 남동생과 이종사촌 여동생, 아버지와 이모부, 김장우와 나영규 사이에서, 마치 인생과 맞짱을 뜨기라도 하는 듯 치열하게 사유한다.
그리고 언젠가 아침에 불현듯 생각했던 결론을 다시 적어 내려 간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라고.
제이는 책을 덮었다. 창밖에 여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진진과 함께 生의 한 단락을 건너온 느낌이었다.
마음 한편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했다.
확신인지 다짐인지 모를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모순 속에 살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알겠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는 내 삶을 조금씩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갈 것이라는 걸.
제이는 진진을 따라 노트에 또박또박 적어보았다.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기에 자기 이해가 시작되기도 한다.
솔직히 무슨 뜻인지 본인도 잘 모르면서도, 일단 적어놓고 보니 꽤 그럴듯해 보였다.
동이 터오는 새벽, 제이의 얼굴에, 곰탱이와의 이별 이후 처음으로 진짜 미소가 떠올랐다.
- 다음 화에서 만나요 ♡ -
이번 주 이야기 : 양귀자, 『모순』
대문 사진 : 쓰다(출판사)의 『모순』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