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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원 Mar 11. 2025

02. 너를 미워하는 내가 한심해

모순 가득한 生에 대한 탐구


제이는 혼자 있는 시간을 배워가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일부러 약속을 잡거나, 일에 파묻혀 바쁘게 지냈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온전히 혼자서 시간을 견뎌보기로.

그리고 그 시간을 조금 덜 버겁게 만들기 위해 책을 펼쳤다.


『모순』.

‘모순’이라니.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있고, 옳고 그름이 명확해야 한다고 믿었던 어린 날의 제이였다면, 이 단어를 구체적으로는 실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이라면 인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늘 어딘가 모순적이라는 것을.


너무 운데 보고 싶고, 사랑한다면서 불행을 바라는 마음.  

그 사람과 함께했던 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떠오를 때마다, 제이는 아팠다.

저는 아픈 게 싫으면서, 그 사람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자신이 한심하고 미웠다.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만 세상(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거라면, ‘에잇, 그냥 다 망해버려라’라고 제이는 체념하곤 했다.

 



여기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인이 있다.

안진진.

성이 '안'이라 평생을 본인의 이름을 부정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


진진은 김장우와 나영규, 전혀 다른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한 사람은 자유롭고 즉흥적이지만, 불안정했다. 다른 한 사람은 계획적이고 안정적이지만, 너무 단정하달까? (아무튼, 끌림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읽다 보니, 『모순』은 연애소설이 아니었다.

만우절에 쌍둥이로 태어난 진진의 엄마와 이모.

너무나 다른 남편을 둔 덕에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그들과 그들의 가족.

방랑자 아버지를 닮은 듯한 진진의 남동생과 반듯한 이모부를 닮은 듯한 이종사촌 여동생.


어느 날 아침 불현듯,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고,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 진진은, 그들의 삶을 관조하고, 자신과 그들의 관계를 반추하며 이런 결론에 이른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실제의 삶이 이렇게나 한 쌍으로 정확히 이분되어, 옜다 여기 창(矛: 모)이다, 옜다 이쪽은 방패(盾: 순)다,라고 세팅되진 않겠지만, 본질이 아닌 것들을 걷어내면, 실제의 삶에서도 내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의 대척점들을 수없이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진진은 엄마와 이모, 남동생과 이종사촌 여동생, 아버지와 이모부, 김장우와 나영규 사이에서, 마치 인생과 맞짱을 뜨기라도 하는 듯 치열하게 사유한다.


그리고 언젠가 아침에 불현듯 생각했던 결론을 다시 적어 내려 간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라고.




제이는 책을 덮었다. 창밖에 여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진진과 함께 生의 한 단락을 건너온 느낌이었다.

마음 한편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했다.

확신인지 다짐인지 모를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모순 속에 살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알겠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는 내 삶을 조금씩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갈 것이라는 걸.


제이는 진진을 따라 노트에 또박또박 적어보았다.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기에 자기 이해가 시작되기다.


솔직히 무슨 뜻인지 본인도 잘 모르면서도, 일단 적어놓고 보니 꽤 그럴듯해 보였다.

동이 터오는 새벽, 제이의 얼굴에, 곰탱이와의 이별 이후 처음으로 진짜 미소가 떠올랐다.  



- 다음 화에서 만나요 ♡ -


이번 주 이야기 : 양귀자, 『모순』
대문 사진 : 쓰다(출판사)의 『모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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