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05

우리 은주도 이걸 먹었소?

by 유연 은정원


어머니는 끓여서 식힌 미지근한 물을 한 컵 가득 마신 후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얼음강물 앞에서 아버지가 말을 바꿔 어머니에게 ‘나는 가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눈앞이 깜깜해졌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는 혼자 남은 할아버지가 걱정돼 아직은 떠나지 못하겠다며 ‘중국 국적 위조 신분증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모아지면, 그때 뒤따라 가겠다’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이제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당시엔 몹시 화가 났음에도 아버지의 말을 모두 믿었으며, 당분간 따로 고생하며 잘 견딘 후엔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다시 만나는 날엔 따뜻한 흰밥과 국 한 그릇, 머무를 방 한 칸 정도는 있길 바라며 속으론 나름의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고, 어머니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복받쳐 말했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너무 쉽게 틀어졌다.

우리가 옌지에 도착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장만승이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오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오천 위안을 추가로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


당시 느낀 배신감에 대해서 어머니는 ‘바람 부는 낭떠러지 위에 한 발로 서 있는데’라고 표현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식당에 공안이 들이닥쳤고, 그날 밤 장만승이 우리에게 기차표를 내밀었다.

어머니는 배신감도, 고통도, 목숨 앞에선 사치였다고 낮게 읊조렸다.


린화에 도착한 후 장만승에게 거처를 알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간간히 아버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가장 최근에 들은 소식은 아버지가 재혼해서 딸을 낳았다는 것, 그 딸이 웨이와 같은 나이라는 것, 할아버지가 편안히 돌아가셨다는 것.

그보다 전에 들었던 소식은, 어쩌다 쓴 짧은 글 한 편을 옛 군인 동지가 보고 아는 사람에게 소개해 그 글이 신문에 실렸고, 그 덕에 하사품을 조금 받았다는 것.

그보다 더 전에 들었던 소식은 아버지가 중국에 와서 옌지 식당에서 장만승과 둘이 국수를 먹다가 갑자기 꺼이꺼이 울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은주도 이걸 먹었소?’라고 말하곤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는 것.



우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밤이 깊어 등이 켜져 있는 부엌만 환했다.

어둠은 한층 짙고 등불은 홀로 밝았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식당에서 일하며 알게 된 사람 중에 남조선으로 일을 하러 간다는 사람이 있어 나름으로 알아봤는데,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이 남조선에 도착하기 전에 발각이 되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시체를 치워줄 사람이 없다고 했단다.

그 후엔 어떻게든 이곳에서 나를 안전한 신분으로 만들어 학교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어머니의 목표가 되었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너는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내가 학교에 보내달라 했느냐, 신분증을 원했느냐, 따져 묻고 싶을 수도 있다. 만약 지금 그런 심정이라면, 나는 훗날의 너를 생각하며 말하겠다.

어린 너는 판단할 수 없었고, 지금의 너는 날 원망한다 해도, 훗날의 네가 내 결정을 이해해 줄 거라 나는 믿는다. 지금 네 원망의 바탕은 미움이 아닌 미안함일 테니까.


그러나 은주야, 나는 네가 나에게 미안함을 갖지 않길 바란다. 우린 고통을 참고 이곳까지 왔다.

이 넓은 땅에서 훨훨 날 듯 살 수 있는데, 미안함, 죄책감 같은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 갇히지 마라.

네 아버지에게도 그리움, 미움 다 가져도 되지만, 죄책감만은 가질 필요가 없다.


넌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미안한 일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얼음강물을 건널 때도, 장만승의 식당을 나와 기차에 탔을 때도, 그리고 수없이 많은 순간, 넌 내 곁에서 나를 여러 번 살렸다. 네가 없었다면 난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언젠간 밝혀야겠지만, 루챵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직까진 내가 67년에 상하이에서 태어난 조선족 여자라고만 알고 있다.

네가 ‘샤오옌’의 호적을 사용하는 것을 내가 수용해준 것에 무척 고마워했다. 나는 네가 안전한 신분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느냐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때 너에게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한 건 미안해서였다. 너무 미안해서 자꾸 피하게 됐다.


“어린 너를 혼자 견디게 만들었어. 내 너에게 많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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