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06
남조선에 가고 싶니?
어머니는 비장한 표정으로 내 두 눈을 들여다보며 다시 루챵의 이야기를 하자고 운을 뗐다.
만약 어머니에게 같이 살자고 말한 사람이 루챵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머니는 바로 결심하지 못하고 어쩌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을지도 모른다며, 아주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남조선 드라마에 나오는 낭만적이고 거창한 ‘사랑’이라는 말을 루챵에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한 가지만은 말할 수 있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루챵은 정말 좋은 사람.
그날 밤 우리의 긴 대화 중 단 한 번 등장한 중국어 문장이었다.
“그러니 은주야. 너는, 너 때문에 내가, 살기 싫은 중국 남자와 짓기 싫은 사과 농사를 지으며 억지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절대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욕실로 달려가 세수를 하고 나왔다. 뒤이어 어머니가 들어가 오래도록 세수를 하고 나왔다.
우린 다시 마주 앉았다. 기진맥진한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갔다.
나는 요즘, 내 인생에서 선택으로 보였던 것들이 사실은 이미 다 결정되어 나에게 던져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네 아버지는 처음부터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될 것을 다 알면서도 나에게 이 신분증을 건네준 것인지 모른다.
네 아버지는 내가 곧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날 것을, 오천 위안이나 되는 큰돈을 2년 안에 벌어서 다 갚을 거라는 것을, 무작정 남조선으로 가 북에 남은 가족들을 곤란하게 만들진 않을 거라는 것을, 그러다 결국은 중국 남자와 살면서 너를 학교에 보내고, 아기를 낳고 농사를 지을 거라는 것도, 만나게 될 사람이 루챵이라는 것만 뺀 나머지 모두를, 이미 전부 예측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거 아니?
우리는 우리 같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삶 중에 처지가 가장 좋은 축에 속한다는 것 말이야.
어머니는 잠시 침묵했다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내게 던졌다.
“남조선에 가고 싶니?”
어머니는 짐작하고 있던 것일까?
나는 예전부터 우리, 즉 부모님과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해보았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그 생각은, 어머니와 내가 한국에 귀화해서 ‘탈북민’으로 사는 삶이 중국에서 반쪽짜리 조선족으로 사는 삶과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상상으로 바뀌곤 했다.
그리곤 귀화까지 하진 않더라도 내가 한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 어머니도 한국에서 나와 함께 지내는 것. 어쩌면 이 정도는 실현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다.
모든 경우 죄책감이 찾아왔는데, 오직 다른 점은 그것의 대상이었다.
시간은 새벽으로 깊어지며 어둠과 빛을 더욱 뚜렷이 나누었고, 이 세상엔 어머니와 나, 단 둘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했다.
“어머니가 같이 간다문, 그러문 가고 싶슴다.”
어머니는 다만 나를 다독이며, 내가 ‘루샤오옌’인 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건 송련화가 이미 죽어 퍄오시위가 되어버린 것과는 달리, 북조선의 리은주가 여전히 그 누구도 아닌 그 아이 그대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면서.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내 침대에서 나와 함께 잤다.
싼웬 시장 입구 단칸방 집에서 사과 농장 집으로 이사를 온 이후, 그러니까 내가 만 일곱 살이던 첫 번째 여름 이후, 어머니 품에 안겨 한 이불 속에 잔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을 모르는 채, 어머니 품에서 스르륵 잠이 들면서 나는, 바로 그 느낌이 ‘안온(安穩)’이라는 단어의 뜻이란 걸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후 십수년 세월 동안 나를 따라 다닌 화두 ‘박희옥’. 그 여인의 신분증을 아버지가 어떻게 ‘주웠는지’ 같은 일은 이미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