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08

가족 모두 멋진 시간을 보냈어!

by 유연 은정원


숨 막히는 속도로 고3이 지나갔다.

8월이 되기 전, 나는 ‘베이징사범대학교’의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고모는 ‘베이징사범대’와 ‘베이징대’는 서로 다른 학교이며, 농촌 특별 전형 입학’임을 강조했지만, 디에는 결혼 오찬을 했을 때처럼 큰 식당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술을 마셨다.

어머니는 무엇보다 ‘사범대’에 입학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렇게 큰 나라에서 제일 좋은 사범대’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다음 날, 디에는 중국인의 ‘평생 숙원’ 중 하나인 만리장성 등반을 할 때가 되었다고 가족들에게 선포했다.


그리하여 내 입학식이 있기 일주일 전, 네 식구가 린화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출발했다.

이번엔 ‘딱딱한 의자’가 아닌, 넷이 마주 보는 침대칸이다. 1층 자리에 네 명이 모여 앉아 ‘강사부(康師傅: 중국 식품 브랜드)’ 사발면에 소시지를 넣어 면발로 돌돌 말아 함께 먹고, 녹차를 마시며 해바라기씨도 까먹었다.

밤이 되자 웨이와 디에가 1층 자리에, 어머니와 나는 2층 자리에 서로 마주 보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 누웠다. 어머니도 ‘그날’ 기차에서의 밤을 떠올리고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를 향해 팔을 뻗었다. 기차 테이블 위 공중에서 내 손과 어머니의 손이 만났다. 꼭 쥐고 있는 손바닥에서 어머니의 따뜻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다음 날 늦은 오전 기차에서 내려, 베이징사범대 근처이면서도 너무 비싼 시내 중심은 아닌 무단웬(牧丹園)에 숙소를 잡고 나자 이미 저녁 시간이 되어 있었다.

짐을 풀고 근처 식당에서 춘장에 볶은 돼지고기를 밀전병에 싸 먹는 징장로쓰(京醬肉絲)와 공심채볶음, 가지튀김, 계란탕, 새우볶음밥을 사 먹고, 베이징 1일 여행 상품들을 비교해 3일치 여행을 예약했다.


우린 새벽부터 일어나 이른 저녁까지 베이징 곳곳을 알차게 누볐다.

천안문광장과 고궁(故宮), 천단(天壇)공원을 시작으로 만리장성과 원명원(圓明園), 이화원(頤和園)을 거쳐, 올림픽 공원과 쉐이리팡(水立方: 올림픽을 치렀던 큐브 수영장), 중앙TV타워, 왕푸징(王府井)까지.

사과농장 사람들은 휘둥그레지는 눈 속에 대륙의 넓이와 대도시의 높이를 모두 집어넣었다.


3일째 저녁, 패키지 여행사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천안문광장 남쪽 대로인 쳰먼따졔(前門大街)였다.

여행 첫날부터 디에가, 이날 저녁 식사는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카오야(烤鴨: 베이징덕) 식당인 췐쥐더(全聚德) 본점에서 하겠다고 누누이 말했기 때문이다.


우린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줄을 서 기다린 후 들어가, 구운 오리를 두 마리나 먹었다. 오리고기를 베이징식 춘장에 콕 찍어 입에 넣으니, 바삭한 껍질이 바스라져 기름기가 번지며 살코기와 어우러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느긋하게 쳰먼따졔의 광활한 거리를 걸으며 디에가 말했다.

“웨이는 누나 덕분에 열 살밖에 안 됐는데, 만리장성과 천안문광장도 와 보고 췐쥐더 본점에서 카오야까지 먹었네. 린화 싼웬에서 최연소일걸?

웨이만이 아니야. 가족 모두 멋진 시간을 보냈어!”


이 장면에서 나는 조심스레, 마치 한여름날 농장 구석에서 다 녹아버렸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주머니에 몰래 넣어둔 초콜릿을 꺼내듯이,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려봤다.

한국의 대학에 진학해 어머니와 한국 생활을 해보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시간 가슴에서 차오르는 일렁임은 디에를 향한 그동안의 ‘고마움’을 넘어선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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