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09
딱 한 번은 용서해 주세요.
다음 하루 동안은 베이징 시내의 쇼핑몰을 다니며 우리의 옷과 싼웬 가족들의 선물을 샀고, 중관춘(中關村) 전자상가에서 내 ‘노트북’ 컴퓨터도 샀다.
숙소로 돌아와 새로 산 물건들을 각자의 가방에 정리했다.
어머니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디에가 “돈 많이 썼으니 집에 가서 또 열심히 일합시다!”라며 힘차게 두 손을 들어보이자, 이내 다가서 손을 마주 잡고 흔들며 결의에 찬 눈빛을 따스하게 교환했다.
웨이가 자기도 손을 잡겠다고 어머니와 디에 사이로 달려들었다. 우린 다 같이 동그랗게 모여들어 손을 붙잡고 흔들며 맘껏 킥킥거렸다.
가방 정리를 마치고 어머니가 웨이를 씻기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을 때, 차탁 앞에 앉아 녹차를 마시던 디에가 나에게 말했다.
“샤오옌, 받고 싶은 선물 하나 말해봐라.”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받아 더 이상 받고 싶은 게 없다고 대답했다. 디에는 나에게 농장의 동쪽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근처의 땅을 내 몫으로 주겠다고 말했다.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눈앞에 고모의 손바닥이 튀어나와 달려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극구 사양했지만, 디에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디에. 땅 말고 부탁이 하나 있어요.”
디에는 반가워하며 그게 뭔지 물었다.
“언젠가 제가 디에를 실망스럽게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딱 한 번은 용서해주세요.”
디에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딱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한 그 말을 용서할게.
이 세상의 아버지는 말이야, 딸을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이 없어.
만약에, 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디에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너를 용서하겠지만, 그건 사실상 상심할 일인거지 용서하고 말고 할 일은 아닌 거야.”
나는 디에에게 다가가 어렸을 때 이후 처음으로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디에, 미안해요.”
디에는 굳은살 박인 뚱뚱한 손가락으로 내 왼쪽 볼을 툭 건드리고는 얼굴 전체에 주름을 가득 지며 웃어 보였다.
*
다음 날은 입학식이자 가족들이 린화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숙소가 있는 무단웬은 학교까지 한 정거장 반 거리라, 우리는 걸어서 학교로 향했다.
이번 입학식은 개교 110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진행하여 특별함이 더했다. 교정 곳곳에서 한국에서 '캐리어'라고 부르는 바퀴 달린 상자가방을 끌고다니는 내 또래 사람들과 그들 곁에 함께 걷는 소박한 옷차림의 시골 부부가 종종 눈에 띄었다.
우리는 멋진 필체로 교훈이 새겨진 비석과 작은 정원 속에 있는 교실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높은 도서관, 반짝이는 체육관, 넓은 운동장을 돌아봤다. 곳곳에 개교 110주년과 신입생의 입학, 새 학기 개강을 축하하는 색색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거대한 위용이 느껴지는 본관 앞에는 광장이 펼쳐져 있었는데, 정면에 분수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광장의 서쪽에는 입학을 축하하는 커다란 진갈색 항아리 수십 동이가 놓여있었는데, 독마다 색색의 연꽃이 피어있었다. 잎은 탐스럽고 꽃은 단아했다.
우리는 기념식 시간을 기다리며 근처를 거닐었다. 연꽃 사이를 걷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련꽃 동무’라고 아버지를 흉내 내어 불러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머릿속에서 불쑥 떠오르는 아버지가 때로는 미웠다.
기념행사장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붐볐다. 우리는 이 ‘혼잡함’을 즐기는 것으로 입학식 기분을 한껏 낸 뒤, 배정받은 기숙사 방에 캐리어를 갖다 놓은 후 무단웬 숙소로 갔다.
가족들의 가방을 찾아 나와 택시를 타고 베이징역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디에가, 나중에 학교까지 혼자 돌아올 것을 걱정해 역까지 배웅하는 것을 말렸지만, 나는 끝까지 따라나섰다.
대기실에서 개찰구로 향하는 줄을 섰을 때, 웨이가 내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고 소리를 내 울어버리는 통에 어머니와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디에도 목 아래가 벌겋게 변하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았다.
“웨이야, 누나가 방학마다 집에 갈 거니까 시도 외우고 축구도 잘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웨이의 통통한 두 볼을 찹찹찹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는 “4년 후 졸업식 때, 다 같이 또 베이징에 오자!”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서로의 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결국 다른 방향을 향해 몸을 돌린 우리는, 그것이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는 것을 몰랐다.